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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 Sep 12. 2024

윤동주 시에는 몇 행부터 자아성찰이 시작되나요?

선생님, 윤동주 시에는 자아성찰이 몇 행부터 나오나요?

시험을 일주일 앞둔 국어 시간에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항상 수업에 집중하며 눈을 맞추면서 수업을 열심히 듣는 아이였다.


"선생님, 윤동주의 자화상에서 자아성찰은 몇 행부터 나오나요?"

아이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다. 몇 행부터 자아성찰을 한다니 과연 자아성찰이라는 것이 그렇게 지금부터 준비! 땅! 하면 할 수 있는 것인가. 너무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내게 묻는다. 





"선생님, 성찰이라는 것은 나쁜 짓을 한 사람한테만 사용하는 표현이 아닌가요? 윤동주 시는 성찰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성찰은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잘못을 반성할 때 쓰는 거니까요."

두 번째 질문이었다.


성찰은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행동이라니...

두 시간에 걸쳐 아이들과 윤동주의 자화상을 읽으며 모둠 토론을 하고 새롭게 알게 된 점과 깨달은 점을 함께 이야기 나누었는데 결국 내 수업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나야말로 나쁜 짓을 한 사람처럼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아이들이 내 수업에서 보여줬던 열정적인 시평과 모둠토론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그때 그렇게 열띤 시평을 했었는데 막상 시험기간이 다가오니 자아성찰이 몇 번째 행에서 나오는지 묻고 있다. 또한 자아성찰의 의미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해서 혼란이 가중된 것 같았다.


"00아, 넌 어떻게 생각해? 넌 자아성찰이 어떤 의미라고 여기고 있었어? 먼저 성찰의 의미를 찾아보자."

"선생님, 저도 성찰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생각하는 것 같기는 한데요. 문제집을 풀다 보면 자꾸 어느 부분에 성찰이 드러나는지 물어요. 그래서 저도 자꾸 몇 행 어디부터 그런 것인가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그걸 찾는 게 중요한 일처럼 느껴져요. 그러면 성찰이 드러났다고 한 그 앞부분은 성찰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들고요."

"그랬구나. 그래서 네가 생각한 개념들이 혼란스러워진 거구나."

"제가 윤동주 자화상과 관련된 문제를 100개 정도 풀었거든요. 근데 거기에서 답이 이상한 것도 있고 답이 두 개인 것도 있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애매하게 시험문제 안 내실 거죠? 제가 내일 그 문제 가져오면 풀어주실 거죠?"

"어떤 문제였는지 궁금하네. 우선 선생님이랑 수업시간에 했던 내용들과 학습지 등을 중심으로 공부하렴.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그리고 다음날 그 친구는 쉬는 시간에 학원에서 애매했던 문제들을 조목조목 나에게 물었다.

정말 아이가 문제를 풀면 풀수록 더 혼란이 야기되고 불안만 가중되는 문제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과 혼란은 학교 시험문제로 고스란히 향하게 되고 아니나 다를까 국어 시험이 끝나자마자 많은 아이들이 나에게 찾아왔다.

"선생님, 왜 12번에 답이 2번이에요? 1번은 안 돼요? 선생님 서술형 답을 이렇게 썼는데 맞아요?"

"그 문제에서 묻고 있던 것이 뭐지? 그 개념이 무엇이니? 그것을 알면 2번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수업시간에 우리가 함께 나눴던 말들이잖아. 그렇지?"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문제가 틀렸다고 여기면 그냥 시험이 끝나고 교무실로 막 달려온다. 왜 그게 답이 되었는지 깨달음이 선행되기보다는 자신이 틀린 것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 자신은 100문제를 풀었고 그만큼 열심히 공부했는데 어떻게 틀릴 수 있을까에 대한 분노이다. 그 분노가 선생님들을 향한다.

그 순간 나와 아이는, 그 많은 날들 함께 윤동주의 시에 대해 나눴던 시대적 아픔과 한 시인에 대한 공감이 모두 소멸된다.


그리고 다음날 여지없이 학부모 민원 전화가 온다.

선생님 문학 문제 12번이요. 제가 주변 지인들과 교수들에게 물어봤는데요. 사실 제가 문학 전공이거든요. 그거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아요?

 

그 말에 선생님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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