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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옥을짓다 Mar 09. 2021

한옥의 담,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고..

타인 능해

신윤복의 그림 "무녀신무" /  낮은 담 너머 집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훤히 보인다 (출처 : 민속박물관)


아무나 열고 가져가라고 "타인능해"라 써놓은 쌀독

 전남 구례에는 운조루라는 유명한 고택이 있다.  배고픈 사람 누구든 뒤주를 열어서 쌀을 퍼 갈 수 있도록 한 류이주 선생(조선 영조), 쌀을 가져가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집안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뒤주를 두었다.  고마움에 쌀을 가져가는 이도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생각해 욕심내지 않아 뒤주가 비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가장 많이 놀라는 것 중에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곳에 물건을 놓고 자리를 비워도 훔쳐 가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게 뭐 놀랄 일이라고...  "신뢰자본", 사회 구성원의 신뢰에 따라 소비되는 패턴과 행동들로 인한 자본의 움직임, 신뢰가 없는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돈이 우리에게는 남의 일이라는..  거리에 물건을 두어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  


담, 경계를 삼지 않는다.

 한국의 담은 높기도, 낮기도, 어중간하기도 하지만 자연에 앞서 벽을 만들지는 않는다.  왕의 권위와 위엄을 중시하는 궁궐에서는 높고 두터운 담을 올려 왕이 사는 공간임을.. 유교적 사상에 심취한 양반들이 남녀의 구별을 이유로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 짖는 경계로, 길 따라 만들어진 민초들의 나지막한 울타리는 담이라 하기에는 모양을 낸 테두리 같다.  대문을 나서지 않아도 낯익은 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지나치지 않을 만큼의 오지랖이 오가는 장소였다.  담은 험악한 이들이 나를 해하지 않게 방어하는 의미가 깊지만 우리의 담은 그것을 신경이나 쓰는지, 대청에 앉은 주인장 마음 따라 자연을 바라볼 수 있으면 담의 높고 낮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사시사철 푸르른 대나무나 탱자나무, 측백나무, 사철나무 등을 심어 울타리를 세워 뭔가 부족하다 싶으면 병풍을 두르듯 네모난 틀을 짜, 연한 가지를 구부려 만든 주합루 어수문 옆 취병같이 담 아래 화단을 꾸려 푸른 배경에 계절 따라 변하는 꽃의 향기와 색을 즐기기도 했다.  

 동물이나 식물, 액운을 막아주는 문양 등을 새겨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궁궐의 꽃담처럼 흙과 돌, 기와, 벽돌 등을 적절히 섞어 활용하기도 하고 각각의 재료를 따로 사용하기도 했다.  형편에 맞춰 식물이나 돌을 쌓아 지붕을 두지 않는 담도, 깔끔한 마무리와 비로 인한 붕괴를 우려해 지붕을 올리기도 했다.  

다양한 재료를 얻지 못하는 산골에서는 얇은 돌을 이용하는가 하면 일반 평민들은 볕 짚과 같은 식물을 이용해 지붕을 이었다.  물론 궁궐이나 상류층에서는 기와를 사용했겠지만.. 

 

창덕궁 어수문 취병(사진출처:박상문)  /   소쇄원 대나무와 바지울 길
독락당 살창 (사진출처 : 홍덕선)   /   소쇄원 오곡문


 사람마다 좋아하는 환경이 같을 수는 없다.  어느 이는 개울 따라 이어진 담 아래 작은 살창을 내어 여러 이들과 자연을 즐기자는 독락당을 짓기도 하고 개울을 건너 멈춘 소쇄원의 오곡문에서 담장 아래 길을 내어 자연과 벽을 두지 않으려 했다.  한옥을 짓는 과정에서 집과 마당 전체를 담으로 두룬다는 것은 비용면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마당이 작은 도심과 넓은 마당을 가지는 건물터, 담의 높이와 두께, 쓰이는 재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요즘은 콘크리트 타설 후 담쟁이 넝굴로 감싸거나 파벽으로 마무리하기도 하고 큐 벽돌이나 담 중간중간에 나무를 심어 놓기도 하는데 자연재료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그 성과를 얻을 수 있고 재료 선택시 주위와 어울리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궁궐의 담을 나무 울타리나 흙담으로 만든다면 어떨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한옥은 건물 자체도 중요하지만 주위와 어울릴 수 있는지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

도산서당 앞 유정문 옆에는 아직 연결되지 못한 담이 남아 있다.  이어지지 않은 담 사이로 추운 겨울을 이겨낸 매화꽃을 바라보는 늙은 학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훗날 사람들은 퇴계 이황과 두향이 건네준 매화나무 이야기에 가슴 아파했다.  


퇴계 이황은 매화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인물이다.  매화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것에는 두향이라는 여인이 있다.  조실부모한 두향은  관기가 되어 마을에 부임해온 퇴계 이황을 만나게 된다.  두향의 나이 18세 학자의 나이는 48세.. 만나자 이별이라 했던가, 10개월의 짧은 만남이 어떤 만남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  이황 선생이 임종 전 두향에게서 받은 매화나무에 물을 잘 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뿐.. 한 사람이 죽고서야 만날 수 있었던 두 사람, 두향은 20년의 세월 동안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퇴계와 노닐었던 강선대 아래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곡기를 끊어 죽음을 선택한 그녀의 무덤은 퇴계의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도산서당과 매화나무를 심어 놓은 절우사 사이, 담이 처져 있어야 할 곳에 정우당이란 작은 연못을 두어 연꽃을 심었다.  사람들은 연꽃이 선비의 정신을 말한다지만 연꽃의 꽃말은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이다.  정우당 건너 절우사에는 아직도 매화꽃이 핀다.   


도산서당(A)  /  정우당 - 연못(B)  /  절우사 - 매화나무를 심어 놓은 화단(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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