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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pr 12. 2024

12.힘들고 괴로울 땐 빡세게 꾸며라.의욕이 없겠지만.

<주말, 빈사무실로 출근하면서 멋지게 차려입으면 외도를 오해하기 쉽다.>


우울증이 올 때나 정신적으로 무척 괴로운 시간을 보낼 때 사람들은 자신을 돌보는 것을 소홀하기 쉽다.

가장 최적으로 멋진 모습을 연출하기는커녕, 기본적인 개인위생조차 챙기기 어렵다. 

한마디로 못 생기고 더러워 보인다. ㅠㅠ


역설적이지만 괴롭고 우울할수록 멋지게 꾸미는 것이 중요하다. 이 방법은 괴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 제일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럴 힘이 어디 있냐고? 

그래도 힘을 내야 한다. 무엇이든 벗어나려면 한 번은 변주가 필요하다.

아주 약간만 힘을 내서 나를 가꾸는 것은 괴로움과 우울함에서 아주 조금씩 걸어 나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된다.

나를 꾸미는 것은 우울의 관성에 아주 작은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못생기고 후줄근한 모습을 지속하게 되면 그 우울의 감정에서 도무지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우울에서 벗어날 아주 작은 꿈틀거림이 필요한데 그게 겉모습의 관리와 자기 만족감으로 시작될 수 있다.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조건을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 감정이나 생각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이다.

우울에 빠져 관리와 치장이 삶에서 배제되면 나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생기기는커녕 삶이 더욱 한심하고 우중충해진다.

못생긴 것을 보고 행복한 사람은 없다. 인간의 몸에 새겨진 유전자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름다운 것은 희망하고 선함을 느끼도록 프로그래밍되어있다.


불과 7년 전, 나는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겪으며 며칠씩 같은 옷을 입기도 했다. 머리도 안 감고 당연히 화장도 안 했다.

옷은 모두 무채색이었다. 유니클로와 무인양품, 폴로의 콜라보였다. 지금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평범하고 관리안 된 모습이다.


그 때 나는 매일 우울한 모습으로, 억울한 마음으로 일과 싸우고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도 나에게 많은 배움과 한 단계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순조롭게 얻은 일 보다 지옥 같은 고통에서 어떤 것을 해낼 때 더욱 탁월해진다.


괴로워서 울면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모두 휴직을 갔고 채용 텀을 공석으로 남긴 채 혼자서 모든 일을 하려니 힘들었다. 마케터 13명과 디자이너는 오직 나 혼자서 팀을 이뤘다.(매일 13:1로 싸우던 시절. 지옥이 따로 없었지. 아련...ㅠㅠ)

당시 나는 마케터가 퇴근할 때까지 화장실도, 점심도, 저녁도,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먹기 일쑤였다. 몸무게는 30킬로대로 떨어지고 그때 내 머리는 백발에 가깝게 하얘졌다. 그리고 내가 자처한 왕따가 되었다. 동료들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빚 독촉 온 추심원으로 보였다.


낮에는 외근을 가고 밤에 사무실 모니터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디자인을 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하니 업무가 쉽게 줄지 않았다.

억울해도 일을 했고 화가 나도 내 손으로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했다. 내겐 믿고 기댈 디자이너 동료가 없었다. 믿을 건 내 손에서 만들어지는 일들 뿐이었다. 그렇게 정신이 아무리 파괴되어도 일에 몸을 던지던 집념의 시간을 거치며 나는 아주 약간 여유로운 인간이 되었다. (업무에 있어서만)


그 시절을 통과하며 어떤 어려운 일도 다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아무리 무책임하고 개념 없는 동료도 무시하고 해내야 할 일에 집중하는 정신력이 키워졌다.

어차피 아무도 없던 시절도 혼자 버텨낸 나인데, 어떤 일이든 못할까? 그 어떤 것도 끝이 있으며 내가 해낼 거라는 건강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 다시 업무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요즘은 다르다. 나는 우울하게 못생기지 않았다.

주말에 아무도 없는 회사로 출근할 때도 누구보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출근을 한다. 남편은 나에게 혼자 어디 좋은데 놀러 가냐고 물을 정도다.

내 성격을 모르는 배우자였다면 이 정도 치장은 거의 바람피우러 나가는 부인의 모습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가장 멋지게 그 어떤 순간도 굴욕 없는 모습으로 나를 꾸미고 회사로 간다.

회사에는 아무도 없지만.


그렇게 주말아침, 나는 멋지고 프로페셔널하게 꾸민 모습으로 출근해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누구 보여줄 데도 없는데 뭐 하러 치장하냐고 할 수 있다.

이 멋진 모습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내가 나를 보며 내 기분이 달라지고, 내 생각이 달라진다. 내 행동과 모습은 내 생각과 감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나는 멋진 모습으로 일하고 싶다. 그리고 건강하게 극복하고 싶다.


외모관리에 대한 태도가 바뀌면 생활과 일에 대한 태도도 바뀌게 된다. 외모에 대한 관점은 인생을 대하는 기준과 많은 부분에서 연결되어 있다. 

자신을 잘 관리하는 것도 상당히 부지런해야 가능한 일이다. 삶을 대충 대해서는 멋있어 보이기 쉽지 않다. 대부분 귀찮고 피곤한 상황에도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억제해야할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내 겉모습도, 내 안의 능력도 사실은 나를 만들어가는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요소이다. 이 두 가지가 따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모지상주의에 반기를 드는 의견이 많지만, 사실 이 세상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하다못해 나조차 멋진 자신의 외관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옷차림이 후줄근할 때도 열심히 일을 하긴 했지만, 나를 아끼는 마음이 부족했고 일에 있어서도 우울하고 방어적인 마음을 일부 깔고 있었다. 늘 자기 연민 속에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본격적으로 각 잡고 일 좀 해볼까 싶은 의지에 앞서 빡세게 꾸미고 멋진 내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는다. 나는 슈퍼당당하게 모든 것을 대하고 있다.

'오케이 이렇게 멋진 모습에 누가 되지 않도록 조금 더 힘을 내자.'는 생각으로 이겨내고 있다. 이 힘든 일들을 혼자만 겪어서 외롭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 경험으로 또 나는 성장하고 더욱 유능해지겠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실제로 늘 이런 어려움과 위기는 나를 성장시켰다.


외모가 업무력이나 인생관 혹은 타인의 배려와 무슨 상관이냐라고 반기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멋지게 꾸며진 외모의 혜택을 누려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잘 꾸며진 외모 덕을 보는 것은 남이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다. 

사실 조금 더 멋진 외모는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배려와 기회를 얻으며 살 수 있다.

그리고 멋진 외모는 공짜가 아니다. 그것도 역시 노력과 시간, 돈의 투자로 얻은 것이다.



나는 어제도 야근했고, 주말에도 출근했고, 공유일에도 일했다. 워낙 건강체질이라 육체적으로 피로함은 없지만 마음이 약간 지쳐있다. 그러나 나를 멋지게 꾸미는 즐거움으로 극복하려고 마음 먹고 있다.

오늘 새벽에도 화장을 예쁘게 하고 멋진 옷을 고르며, 이른 아침 외근을 나갔다. 

그래, 어릴 때 내가 상상했던 디자이너의 모습이 이거야. 세상 가장 멋지게 차려입고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1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찾아와도 나는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성실한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어린시절의 나와 조우해도 오늘의 모습은 굴욕이 없다.


인생에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도 내 모습을 잘 가꾸며 언젠가 이 일들도 잘 마무리될 거라고 희망해 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괴롭고 많은 일들은 내 맘대로 되지 않겠지만, 이거 하나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프로페셔널하고 멋지게 나를 꾸미고, 건강한 생각을 얻는 것!

그래서 그 어떤 어려운 순간에 있다고 해도 우리는 자신을 관리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이건 마치 '시각적인 에너지 충전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날이라 해도 예쁘게 꾸민것 하나는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말 성수동에 못생기게 걸으면 상당히 우울하다.

우리 회사는 성수동 핫플 한 가운데 있다. 주말에 일 하는 것도 서러운데 우중충한 모습이면 얼마나 더 억울할까? 

젊은 청춘들이 멋지게 꾸며서 놀러가는 틈을 헤치고 나는 프로페셔널하게 성공한 사람이라고 정신승리했다.

성수동에 누가 되지 않는 최대로 멋진 모습으로 주말 근무를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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