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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괜찮아. 굴욕 없는 삶은 없어.

<왕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거듭나는 거야.>

by 전인미D

세월이 지나면 괴로운 시간들도 미화가 될 테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하루가 참 피곤하다.

오늘이 참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 별로 못 봤다.

다들 이 시절 빨리 끝나서 편해지고 싶다고 한다. 편해질 길은 죽음 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은 건 아니다.

오늘이 숙제같고 짐처럼 느껴진다. 사는 건 참 버겁고 무겁다.


사회에서 발생한 부당한 일들에 매 순간 날카롭게 반응했다.

일일이 해명한들 해결될 일도 아닌데. 아무도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걸 잊고 억울하기만 해서 해명하고 반박하려고 오히려 일을 더 키웠다.

타인의 냉소적인 표정과 무심한 시선속에 내 해명은 힘이 빠진다.

그냥 참는 순간의 연속이 인생이다 생각하며 조금 더 무던해질걸.


집에 돌아와 혼자 자책을 하게 된다.

고결하고 멋지게 살려고 했는데, 그런 미숙한 행동을 해버린 것에 대해.

순간 욱한 감정을 멈출 수 없었고, 함께 분노를 내보였다가 홀로 남았을 때 비로소 부끄러웠다.

나는 남다르다 생각했는데 결국 저급하다고 여겼던 짓을 그대로 해버렸다.


살아가며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멋진 모습만 남기고 잘못과 후회는 다 없애버리고 싶다. 나를 그렇게 멋지게 기록하고 싶었다.

과거의 흑역사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참 쓰리다.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지만 내 가슴이 참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막말로 흑역사 없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평생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뻔뻔하고 슬픈 인생도 있다.

적어도 굴욕의 순간을 기억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흑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이 흑역사를 극복하는 방법은 새로운 역사를 덧씌우는 수 밖에 없다.


실수를 했고 잘못된 길도 갔고 넘어지고 돌아가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을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의식을 할 수 있게 됐다.

좋은 순간, 좋은 사람인척 연기하는 건 쉽다.

그러나 극한 순간에야 말로 본성이 나온다.

그 본성을 여러 번 마주하다 보면 자신의 민낯을 보게 된다. 이때 비로소 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이 된다.

순조롭고 평안하기만 해서는 고민하지 않았을 모습들은 괴로운 시기를 반성하고 이겨나가며 고쳐갔다.


굴욕을 수십 개 겪으면서 조금씩 정제되어 가고 조금더 나은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아직은 부족하고 가끔씩 스스로가 부끄럽지만, 이 수많은 굴욕의 역사를 채워가면서 나중에 슬기롭고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랬다.


못난 나를 하나씩 고쳐가면서, 나중에 나이 들어서는 정말 멋진 모습만 남아 흑역사는 귀여운 올챙이 시절을 떠올리는 추억거리가 되길 바라며.

굴욕의 시간들을 돌아볼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지만 그렇게 앞으로는 더욱 빛나는 모습이 될 수 있는 준비과정으로 쓸수 밖에 없다.


어제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킹 무파사'를 봤다.

고아가 된 무파사의 어린 시절부터 왕이 될 때까지의 험난한 여정이 담긴 흑역사 한편이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를 떠돌이, 혈통 없는 부랑아로 여기며 매일을 힘겹게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자조적이고 저평가를 한다. 자신의 눈에는 실패와 굴욕만 가득 찬 삶이다. 그러나 그런 힘든 시간을 거듭하며 스스로 왕이 될 존재로 점점 성장하게 된다. 어려운 시간들을 통해 더욱 탁월하고 현명해지는 힘을 키워준다.

결국 왕좌의 기회가 왔고, 무파사 자신은 왕의 자격을 부인했지만 힘든 여정을 함께했던 현자 원숭이 라피키가 말한다.

왕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는 거라고...


처음부터 완성형인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못난 모습을 마주하고 부딪히고 깎이고 스스로 다듬어 가며 마침내 자기가 생각했던 모습으로 성장해갈 수 있다.

결국 어려운 고난들이 우리를 더욱 빛나고 멋있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걸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는 내내 현실에서 구르느라 힘들기만 했다. 그러나 결국 반짝반짝 동글동글 조약돌이 되어가는 과정인 거다. 굴욕의 시간은 나를 예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된다.

중요한 건 남과 세상을 저주하느라 그 괴로운 시간을 쓰지 말고, 내가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다.


구르는 순간은 너무 괴롭고 벗어나고 싶지만, 구르다 멈춰 돌아보면 또 한 단계 성장해 있다.

10년 전보다, 1년 전보다, 어제보다 조금씩 달라지고 멋져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굴욕이 없이는 단단하고 멋져질 방법이 없다.

흑역사가 쌓여가면서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우고 싶다. 과거의 오류들.

처음부터 멋있었던 척하고 싶지만 말도 안 되는 망상이다.

처음이 멋지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멋져질걸 목표로 하는 수밖에.


중1 때 라이온킹 애니메이션을 처음 봤는데, 30년이 지나 중년이 되어서도 심바 아버지 무파사 얘기를 보면서 감동하고 배움을 얻고 있다. 참 세월이 지나도 명작이다.

중학생이었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굴욕 없는 모습일까 궁금하다. 사실 지금도 굴욕을 업그레이드하는 중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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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03화99. 익히 들어 알고 있겠지만 비결은 이게 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