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답답한 고구마를 견디는 시간>
인생은 미결을 참아내는 것.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을 안고 가는 것도 인생이다.
살면서 직면하는 많은 문제들은 내가 원하는 만큼 명쾌하게 정리하기 힘들고,
매번 속 시원하게 깔끔할 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부분을 내 손에서 어쩌지 못하는 답답한 무게를 견디는 시간이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생길까 하는 우울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얼른 해결해 버려 손에서 털어버리고 시원하게 정리해버리고 싶겠지만 살아있는 한 내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나를 쫓아다닌다.
살면서 생긴 문제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디가 시작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형태로 꼬여있다.
실마리를 하나 찾아 꼬임을 풀다 보면 또 다른 꼬임에 봉착한다. 하나를 해결했다면 또 다른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숨 쉬고 살아있기에 문제가 생기고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는 것이다.
하물며 아테네 신전의 신들도 매일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암투를 벌이다 고통 속에서 죽거나 괴롭게 살아갔다.
산다는 것은 그냥 내손으로 어쩌지 못하는 문제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쩌면 해결할 수도 없고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납득을 이어가는 시간들의 반복이다.
마음의 평화는 해결이 우선이 아니라 받아들임이 가장 중요한 덕목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살아가며 생기는 문제는 해결이 목적이 아닌 경우가 많다.
깔끔하게 털어내지 못하고 숙제처럼 껴안고 가야 한다고 해도 그 불편함 그대로 품고 살아가는 것도 어른의 삶이다.
사실 어릴 때 내 손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들은 크게 많지 않았다. 어린이의 인생이란 단순해서, 내가 열심히 하면 성적이 좋고, 책을 읽거나 공부를 많이 하면 똑똑해졌다. 청결을 신경 쓰고 좋은 옷을 차려입고 말을 똑똑하게 하면 예쁘고 호감 가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린이는 많은 것을 노력한 그대로 보상의 결과로 만들 수 있다.
사회에 나오면 내가 잘한다고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실력 순서대로 보상이 내 손에 쥐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얻고 가지는 것은 다 저마다의 시기가 달리 있을 뿐이다.
멋지게만 꾸민다고 해도 호감을 사기 어렵다. 사치스럽다고 욕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렇게 꾸밀 몸매가 되지 않아 시기질투를 할지도 모른다.
말을 잘하면 나서야 할 때가 많고 불필요한 말을 했다거나 나댄다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한결같이 노력해도 도무지 내 힘으로 좋은 결과를 가지거나 타인에게 호감을 얻을 수도 없다.
어린 시절과 똑같이 노력하는데 아무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 호의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기 힘들다.
별 행동을 안 해도 타인에게 미움을 받고, 노력을 해도 손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아무것도 쥘 수 없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의 삶인 것이다.
일상에서 겪는 일들은 대체로 순조롭기보다,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견뎌야 할 때가 많다. 고민해 봐도 깔끔하게 해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조심하고 미리 걱정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세상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발에 꼬이는 일들이다.
마치 비둘기가 하늘에서만 살면 아무런 잘못 없는 새일 뿐이지만 땅에 내려앉는 순간 미움과 오해를 받게 되는 것과 같다. 비둘기는 88 올림픽 개막식에서 평화를 상징하기 위해 수많은 개체를 날려 보냈다. 그 뒤 자연 속에서 스스로 번식하고 적응하여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서식할 자연은 많이 남지 않았고 도시 여기저기의 쓰레기를 뒤져 생존할 수밖에 없다. 땅에 내려와 먹이를 먹기 위해 쓰레기를 쑤시고 다니면 가늘고 빨간 발에 여러 위험한 장애물들이 걸린다. 그렇게 다치게 되고 발가락이 모두 절단된 채로 살아가는 비둘기들도 많다.
그러나 홀로 고고하게 안전한 하늘만 날수는 없다.
그들은 살기 위해 땅으로 내려와서 사람들과 부딪혀야 한다. 땅에 도달하는 순간 유해동물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거리에서 쓰레기를 뒤져야 산다.
생존의 땅은 그들을 다치게 하는 위협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씩씩하게 살아간다.
인생에 시원사이다가 있을까?
어차피 답답한 인생이다. 자기 연민에 빠져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포장할 필요가 없다.
딱히 잘못한 거 없이 미움을 받고 발까지 잘린 비둘기도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날개가 있으니까.
그저 오늘도 쓰레기통을 뒤지고 먹을 것을 찾는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참고, 답답한 순간을 견디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잘 참았어. 굳이 말 안 하고 가슴에 잘 묻었어. 유별난 척 할거 없어.
살아있는 존재에게 이런 괴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 가슴에도 고구마 한 가득이다.
다들 오해나 미움을 받고도 일일이 해명하지 않으며 그냥 자기 길을 갈 뿐이다.
길바닥에 전날 누군가가 과음으로 인해 구토를 해놨다.
비둘기들이 모여 그걸 쪼아 먹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럽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토를 먹는 것이 더러운 게 아니라 그 토를 한 사람이 더러운 거야. 저들은 저게 생존이라고..."
구토를 쪼아 먹는 비둘기들 발가락이 성한 애가 없다. 발을 보자니 참으로 안쓰럽고 가엽다는 생각이 든다.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얼마나 아픈 시간들이었을까. 그러다가 무언가에 놀라 비둘기들이 푸드덕 하늘로 날아올랐다.
순간 마음이 참 편해졌다.
발 잘린 비둘기에게 날개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