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圓形)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살펴본 히치콕 영화 속 남성들
그 태동을 상기해보자면, 시네마는 본질적으로 ‘움직이는 시각 이미지’이며, 시네마의 근본적인 의미 생산은 시각 이미지를 ‘본다’라는 동사로부터 비롯된다. 시네마가 문학 및 연극과 친연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격된 채, 이른바 ‘제7의 예술’의 지위를 획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서스펜스의 대가로도 알려진 알프레드 히치콕은 이와 같은 시네마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의 영화들은 현재까지도 뜨거운 찬사를 받고 있다. 그는 트뤼포에게 “시나리오를 쓸 때 시각적 요소와 대사를 명확히 구분하고, 가능하다면 대사보다는 시각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필수적”이라며, “직사각형의 스크린은 감정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하자면, 그에게 시각 이미지는 시네마의 필요충분조건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히치콕 영화들을 볼 때에는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다루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며, 그의 작품세계를 더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 (Strangers on a Train)>과 <현기증 (Vertigo)>를 ‘원형(圓形)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원형 이미지’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회전하는 운동성’은 두 영화의 남성 주인공('브루노'와 '스카티')들과 겹쳐지게 되는데, 그 과정과 기능에 대해서 탐구하고자 한다.
회전목마와 기차: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움직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담지 않은 채 ‘발’만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시작한다. 이는 곧 기차(철로)에 대한 이미지로 이어진다. 달리는 기차 안에는 두 인물, 정계진출을 꿈꾸는 '가이'와 돈 많은 사이코 '브루노'가 마주보고 앉아있는데, 그들의 발이 우연히 부딪히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이때, 브루노는 가이에게 그의 아내(미리암)를 죽여주는 대신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해달라고 요청하는 ‘교환살인’을 제안한다. 가이는 이를 거절하지만, 브루노는 미리암을 교살함으로써 실행에 옮기고 만다. 그리고는 가이에게 누명을 씌울 것이라고 협박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 교환살인을 이행하기를 요구한다. 난처한 상황에 빠진 가이는 결국 경찰들로부터 아내 살해범으로 의심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가이와 경찰들이 누명을 씌울 증거를 심으려는 브루노의 덜미를 살인 현장에서 잡으면서 오해는 풀리게 된다. 도주하는 브루노가 탄 회전목마가 폭발하면서 그는 숨을 거두게 되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속에서 ‘회전목마’의 이미지는 브루노의 살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브루노에게 살인을 하는 것은 ‘회전목마를 타는 것’과 동일시되는데, 예컨대 미리암을 목 졸라 살해하는 장면에서 회전목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배경음으로 사용되고 있다. 파티장에서 귀부인의 목을 조르고 졸도하고 말았을 때, 그는 가이에게 “분명 회전목마를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졌어” 라고 고백한다. 이렇듯, 회전목마의 이미지는 영화 곳곳에서 브루노의 이미지와 겹쳐지고 있다.
회전목마는 순수한 브루노의 캐릭터적 특성을 나타낸다. 그가 ‘순수’하다는 것은 깨끗하다는 것과는 다른 맥락이며, ‘성장하지 못한 - 미성숙함’의 맥락과 더 가깝다. 그가 아이의 정신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예측컨대, 가부장적인 ‘아버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브루노의 어머니도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정상은 아닌데, 브루노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는 시퀀스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브루노와 그의 어머니 모두, 아버지에게 저항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굴복적인 태도를 취하며, 브루노는 이에 대해 그녀가 “아버지에게 굽실굽실 대는 모습이 질리다”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것은, 살인에 대해 무감각한 브루노가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브루노는 가이에게 ‘교환살인’을 제안하게 되는데, 이 기이한 살인방식의 형태에는 원형의 운동성을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브루노가 존재하고 있다.
한편, 기차에서 모든 사건이 시작되었고, 제목에서부터 ‘기차’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을 상기해보자면, 회전목마와 기차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기차와 회전목마 모두 운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운동성의 성격이 다른데, 기차의 운동성은 선형적이고 회전목마는 원형의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 즉, 기차는 서로 다른 두 공간을 잇는, 이를테면 ‘목적지’라는 것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회전목마는 같은 공간을 무한하게 순환하며 그 어떠한 목적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기차가 인적-물적 자본을 수송하여 산업적인 생산 활동이 가능하다면, 회전목마는 생산 기능이 부재하며 오로지 ‘유희’라는 목적에만 충실한 장치이다. 즉, ‘회전목마’는 그 어떠한 곳으로 향하지도 않으며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유희만을 갈구하는 브루노의 정신세계를 시각화 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영화의 결말처럼 통제를 잃은 회전목마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급제동을 하는 방법 밖에 없으며, 불꽃과 함께 반파된 회전목마는 브루노의 파멸적 최후를 암시하고 있다.
병리학적 발현: 영화 <현기증>
영화 <현기증>은 아방가르드 영화를 연상케 하는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한다. 이후, 높은 건물을 넘나들며 범인을 추격하는 형사 스카티와 동료 경찰의 모습이 이어지는데, 추격을 하는 도중에 미끄러진 스카티는 지붕 끝에 힘겹게 매달린 채 죽을 위기에 처한다. 동료 경찰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그 과정에서 동료는 추락사를 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스카티는 형사를 은퇴했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현기증을 느끼는 고소공포증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스카티는 마침 친구의 아내(매들린)을 미행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고, 그 의뢰를 수행하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의 환생이라고 믿고 있던 그녀는 결국 교회 종탑에서 투신하고 마는데, 고소공포증 때문에 종탑을 오르지 못하고 있는 스카티는 이를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의에 빠진 스카티 앞에 매들린이 환생한 듯한 주디가 나타나게 된다. 그는 주디를 매들린처럼 만들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디가 매들린과 동일인물이라는 추악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내 스카티는 주디를 교회 종탑으로 끌고 가 자신을 옥죄고 있던 현기증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주디가 (실제로) 종탑에서 추락사하자 그의 탈출은 좌절되며 영화가 끝난다.
<현기증>에서도 원형 이미지는 계속되는데,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원형 이미지들을 나열한다. 마치 현기증을 재현하는 듯한 이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은 동공의 클로즈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회전하는 나선들은 현기증이 지니는 ‘원형의 운동성’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 원형의 운동성은 매들린을 미행하는 스카티에 의해 물리적으로 구현된다. 스카티는 매들린의 차를 미행하면서 계속해서 방향을 바꾸는데, 그가 나선형으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스카티는 ‘방황하는 것이 자기 일’이라며 뭐하고 있었냐는 매들린의 질문에 그저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답한다. 정은경이 지적한 것과 같이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은 어지럽게 회전하는 모양을 연상” 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스카티의 이미지가 그의 방황하는 캐릭터적 특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편, 영화 <현기증>에서 중요한 공간인 교회 종탑에서도 원형의 이미지는 계속해서 제시되고 있다. 스카티의 현기증은 표면적으로 고소공포증으로부터 유래하고 있지만, 그 기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추락사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죽음’이다. 그는 동료 경찰관이 자신을 구하다가 건물에서 추락사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고소공포증을 가지게 되고, 매들린의 추락사를 목격하는 과정에서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이때, 교회 종탑에서의 현기증은 ‘나선형’ 계단을 ‘트랙아웃-줌인’으로 담으면서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스카티는 주디와 함께 교회 종탑에서 범죄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현기증으로부터 탈출하는데 성공하지만, 주디가 추락사하자 그 탈출은 좌절되고 만다. 스카티가 지니고 있는 현기증의 궤적은 순환하는, 나선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현기증은 원형 이미지의 병리학적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맺음말
이처럼 두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과 <현기증>에서의 남성들은 히치콕이 구현하는 ‘원형 이미지’와 겹쳐진다. 브루노의 ‘방황하는 유아적’ 정신세계는 원형으로 회전하는 ‘회전목마’와 연결 지어지고, 스카티의 방황하는 행동적 특성과 현기증은 다양한 나선 이미지과 연결된다. 즉, 히치콕은 원형 이미지들과 인물을 포개어 놓음으로써 영화 속 인물들에게 캐릭터적 특성들을 부여했고, 이를 시각화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시각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히치콕의 연출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