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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Jun 09. 2024

우유부단 한 당신에게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선택은 미지의 영역을 밝히는 손전등이다.

유난히 선택을 못하는 사람 우유부단 사람이라고 한다.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누구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우유부단한 사람들 대부분은 사사롭고 가벼운 선택조차 오랜 시간 주저하며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그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타인 혹은 자신이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평소에 그런 의심을 한 적이 있다면, 좀 더 정확성을 위해 아래의 프로스트의 우유부단 측정법(Frost Indecisiveness Scale)을 참조하길 바란다. 

   

    결정을 미룰 수 있으면 되도록 미루려고 한다  

    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잘못된 결정을 할까 봐 자주 고민을 하곤 한다  

    가장 사소한 결정을 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위의 리스트를 보고 용한 역술인을 만났을 때처럼 '어머! 이건 내 이야기야!' 하며 주머니에서 복채를 꺼내고 있다면 당신은 우유부단한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강도가 높을수록 심리학자들은 완벽주의적 성향에 의해 결정을 못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만약 내가 잘못된 결정을 할 경우 받게 될 망신이나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자신의 선택이 완벽하다는 생각에 들 때까지 계속해서 선택을 미룬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기한을 넘겨도 아무런 선택을 하지 못하거나, 급한 마음에 애초에 고민의 선택지에도 없던 엉뚱한 결정을 하고 후회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당신의 묘비는 유명한 '버나드 쇼의 묘비명'과 같은 문구로 쓰일 것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이제 다시 무덤을 박차고 일어나 살아생전으로 돌아와 보자.

그럼 어떻게 하면 '그래도 뭐라도 해보고 묻혀서 다행이야'라고 묘비명을 바꿀 수 있을까?

선택을 미루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가들의 수많은 조언이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혼자 하는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혼자 하는 여행만큼 선택을 연습하기 좋은 경험은 없다.

이왕이면 대중교통만을 이용한 혼자 여행.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다.

이왕이면 마음에 맞는 친구랑 가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보다 많은 선택의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선 혼자 떠나야 한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떠나게 된다면, 대부분의 경우 구성원 중 가장 추진력이 있는 한 사람의 선택에 따라 나머지 친구들이 끌려다니다가 끝이 난다. 

물론 자발적 끌려다님이다. 

선택권을 위임받은 리더에 의한 여행. 흔히들 버스 탄다는 표현을 쓴다. 

여행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누군가가 운전하는 버스에 탄 승객처럼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일정은 금방 끝이 나고, 훗날 그날을 되돌아봤을 땐 어디 가서 뭘 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지고 그저 이번 여행 '재미있었다.' '재미없었다'는 느낌만 남는다.

그러므로 철저히 혼자 계획하고 선택하는 여행을 추천한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온전한 나 혼자만의 선택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그런 여행 말이다.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추천하는 이유 또한 정해진 시간 동안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자동차를 운전하면 사실상 스스로 선택할 기회란 '마트에서 뭘 살까?', '어디서 잘까?' 밖에 없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면 몰라도, 요즘의 운전이란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내비게이션'의 선택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느냐의 수동적 움직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되도록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난이도가 낮은 국내 여행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서울에서 부산의 해운대로 여행을 간다면 당장 비행기, 기차, 버스 중애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비행기가 가장 빠를 거 같지만, 집에서 출발해서 소요되는 전체시간을 계산하면 비행기가 꼭 최고의 선택은 아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국내선 기준으로 출발 한 시간 반 전에는 김포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김포공항까지 가는데 한 시간, 김포공항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대기 하고, 김해공항까지 비행시간이 한 시간, 다시 김해공항에서 해운대 해수욕장까지 1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총 4시간 30분에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기차는 어떨까? 김포까지 한 시간이었다면 서울역까지는 30분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예약한 기차 시간에 맞춰 역에 도착했다면 기다림 없이 바로 기차에 탑승할 수 있다.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KTX는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도착 후 부산역에서 해운대 해수욕장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전체 시간은 총 4시간에서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가고자 하는 위치가 부산의 시외버스 터미널과 가까운 곳이고 거주지 또한 버스 터미널과 가까운 곳이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시외버스가 더 편리하고 빠를 수도 있다.

이렇게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면 전체적인 여행 일정과 비용을 고려해서 계획하게 되고, 그렇게 스스로 만든 선택지에서 우리는 가장 최적의 선택을 하게 된다.

 

교통편을 선택했다면 부산에서 이동할 땐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유명한 돼지국밥을 먹을 건지, 시원한 밀면을 먹을 건지, 씨앗호떡을 먹을 건지, 유명한 떡볶이 집을 갈 건지, 메뉴를 정했다면 어떤 식당을 갈 건지, 잠은 어디서 잘 것인지, 정해진 여행의 기간 동안 어떤 장소들을 갈 건지. 1박 2일의 여행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선택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했다 하더라도 여행에는 항상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당신이 완벽주의자형 우유부단함이라면 나는 그런 상황을 적극 즐기라고 조언하고 싶다. 내가 한 선택이 예상했던 결과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하늘이 무너지거나 엄청난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저 훗날 안주거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선택의 순간 앞에 망설임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오히려 그런 실패의 경험은 훗날 닥칠 수 있는 유사한 상황을 극복하는 노하우가 된다.

 

내가 동남아의 한 도시를 여행할 때 예약했던 숙소가 오버부킹 된 적이 있었다.

분명히 유명한 호텔 예약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완료했고, 예약 당시 객실의 숫자도 충분했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려는데 여유 객실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원한다면 근처의 다른 호텔로 안내하겠다고.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따라 다른 호텔로 순순히 따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고, 그런 경우 더 좋은 호텔로 데려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내가 결제한 금액은 3성급 호텔인데 2성급 호텔에서 잘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강력하게 환불을 요구했고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물론 새로운 호텔을 다시 예약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만약 호텔로부터 다시 배정받은 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내 성격상 즉시 항의하지 못하고 환불을 요구하지 않았던 나를 향해 밤새도록 이불 킥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난 경험을 통해 그럴 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환불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그러니까 지난날의 실패 경험이 그날의 내가 빠르게 선택하고 밀어붙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실패를 하지 않는 것보다 실패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선택이라 하더라도 항상 예상과 다른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닥쳤을 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재빨리 차선책을 찾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경험을 하기 전엔 나도 우유부단의 대명사였다. 친구들과 음식점을 가더라도, 안 가본 음식점이면 '저기 갔는데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맛없으면 다음부터 안 가면 되지 혹은 그럼 조금만 시켜보고 맛없으면 다른데 가자.' 이런 생각으로 일단 경험을 해보는 편이다.

일단 들어가서 맛있으면 맛집을 하나 더 확보할 수 있는 거고, 맛없으면 '맛없집' 하나를 확보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만약 결과가 두려워서 선택하지 않으면 그 집은 맛을 알 수 없는 영원한 미지의 존재로 남았을 것이다.


선택은 미지의 영역을 밝히는 손전등과 같다.

스타크래프트나 문명, 디아블로 같은 게임을 시작하면 처음엔 온통 까만 배경바탕 속에 자신이 서있는 곳만 밝게 제대로 보인다. 게임이 시작되면 내가 왼쪽으로 갈 건지, 오른쪽으로 갈 건지, 위로 갈 건지, 아래로 갈 건지 빠르게 선택해야 하고 내가 움직이는 방향만큼 어둠은 걷히고 지도의 본모습이 제모습을 드러난다. 

하지만, 만약 '저리로 갔는데 적이 있으면 어떡하지? 이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 고민만 하고 있다면 전체 지도에서 점 하나만큼의 형체만 확인하고 게임은 끝나버릴 수 있다. 그런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선택하자.

선택에 자신이 없다고 피하지만 말고 선택력을 기를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 보자. 

앞서 소개한 혼자만의 여행도 좋고, 심리학 전문가가 추천하는 다른 방법들도 좋다. 방법은 달라도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같다. 선택을 많이 경험해 보라. 

지도는 넓고 인생도 넓다.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가 볼 수 있는 삶의 지도는 더 넓어진다.

일단 선택의 손전등을 손에 들자.

자주 사용할수록 건전지는 더 빵빵해지고 손전등은 더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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