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들이 있다.
대부분 대학에서 같은 동아리 활동을 했던 친구들이다.
원래 친했던 친구들은 더 많았지만 결혼과 동시에 모두 멀어져 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정에 충실해서 주말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하고 평일은 일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없다.
결혼 전엔 한 달에 한번 이상 만났던 그들은 이제 일 년에 한 번 따로 만나기도 힘들다.
그런 이유로 지금은 나를 포함해서 총 3명이 모임의 멤버다.
우리는 보통 2주에 한번. 스케줄이 안맞아도 한 달에 한번 이상은 만난다.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과 장소도 학창 시절과 크게 다를 게 없다.
1차는 술집(정확히는 안주집) 2차는 피시방.
멤버 모두가 술보다 안주를 더 좋아하는 편이라 배부를 때까지 먹을 뿐, 취할 때까지 마시진 않는다. 술은 우리 모임에선 안주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음료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주종을 기준으로 목적지를 정하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 음식에 따라 마시는 술이 선택된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을 때는 치킨 가게에 간다. 우리는 그냥 닭집이라고 부른다. 닭집에선 당연히 소맥이 기본 세트다.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 그 이상은 잘 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자 셋이서 치킨 세트를 먹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니까. 술은 치킨 먹다가 목이 메이거나, 느끼할 때 목 안을 헹궈주는 윤활유 같은 존재다. 그 옛날 목이 마른 선비에게 어느 한 여인이 물 위에 띄워준 나뭇잎 같은 역할이랄까.
딱 그만큼 마시면 적당히 기분 좋다.
차가웠던 엔진에 시동을 걸면 엔진오일이 순환하면서 엔진의 온도를 올려주는 딱 그만큼의 기분. 엑설레이트를 밟진 않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은 내 기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 술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걸 거부한다.
그런 가벼운 음주임에도 멤버 3명 중 한 명인 A는 얼마전 술을 끊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술을 왜 먹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특별히 맛있는 것도 아니고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진 않는다고. 그래서 금주하겠다길래 먹지 말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분위기를 봐서라도 한 잔만 해'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분위기를 위해 억지로 마시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는 과거의 음주생활에서 충분히 경험했으니깐. 녀석에게 그런 억지 술친구 역할을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마시지 않겠다는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다시 마시겠다고 하면 그 선택 또한 존중할 것이다. '이렇게 마실 거면서 왜 안 마신다고 호들갑 떨었냐!' 과거의 그를 향한 문책성 발언은 없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닭날개를 걸고 맹세할 수 있다.
배가 부르면 피시방에 간다.
피시방은 우리 모임의 오랜 역사다. 우리가 피시방에서 가장 빛났던 시절은 'WOW'(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이 한창 유행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캐릭터를 키우고, 함께 던전에 가기 위해 피시방에서 몇 시간씩 대기하기도 했었다. 그 뒤는 '디아블로' - 지금도 '디아블로'의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면 다 함께 모여서 캐릭터를 키우기도 한다.- 그럴 땐 함께 피시방 가는 게 정말 재미있다.
하지만, 작년에 함께 했던 '디아블로 4'는 모두 만렙을 찍으면서 관심이 시들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의 비수기다. 이젠 피시방에 가면 친구 B는 게임계의 고전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나는 오버워치를 한다. 친구 A는 딱히 흥미를 느끼는 게임이 없어서 컴퓨터를 켜놓고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본다. 그렇다. 피시방에서도 각자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지나면 밖으로 나와 가장 집이 먼 친구부터 지하철역까지 배웅해 준다.
한때는 함께 모이면 '모두 같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다.
술자리에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술을 마셔야 하고 피시방에선 모두가 같은 게임을 해야 했다. 그래야 재미가 있고, 만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다. 그들은 우리에게 '같은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이 술 마시는 것도 아닌데 왜 만나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같은 것을 하면 확실히 더 재미있지. 당연한 말이다.
우리도 예전엔 다 같이 할만한 무언가를 여러번 시도했었다. 보드 게임방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볼링장도 가고, 탁구장도 갔었다. 하지만, 애초에 우리가 진짜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할 무언가를 찾기 위한 행동이라서 그런지 금방 흥미를 잃었다.
그런 와중에 앞서 언급한 친구 A는 자신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흥미를 느끼는 게임도 없다는 고백을 했다. 만약 그 상황에서 '그래도 다 같이 만나는데 분위기를 봐서라도 술 한잔은 들고 부딪히며 '짠'은 해야지!'라고 강요했다면 우리의 모임은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친구 A의 뜬금없는 고백이 모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중요한 건 마음 편한 친구들끼리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거지, 불편을 강요하면서까지 뭔가를 함께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한번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그 뒤로는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게 됐다.
한 번은 친구 B도 몸이 안 좋아서 술을 못 먹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는 나 혼자 맥주 한 병 시켜서 마시고, 다른 두 친구는 안주와 음료수만 마셨다. 다행히도 친구 B는 건강이 회복되자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친구 A는 여전히 금주를 이어가며 음료를 마신다.
그래도 모임의 분위기는 아무 문제없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치킨을 먹으면서 주기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여전히 피시방에서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얼마 전 '눈물의 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배우 김지원의 다른 드라마가 궁금해서 검색해 봤다.
그러다가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발견했고, 1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정주행 했다.
그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느꼈다. 우리 모임도 일종의 해방모임과 닮은 점이 있는 거 같다고.
사실 모임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그 모임에 맞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감 때문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위해 내 주량보다 더 많은 술을 마셔야 하고, 다수가 원하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분위기를 위해 이야기는 끊기지 않아야 하며, 모두가 집에 가고 싶을 때까지 함께 있어야만 한다. 일종의 모임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극이라고 할까.
그런 회식이나 모임에서 나는 언제나 내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고 자부했지만, 사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엔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즐거움보다는 어떤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안도감과 알 수 없는 허무함에 휩싸이기도 했다. 나는 왜 모임을 즐기지 못하고 무슨 행사 진행자처럼 일하고 온 기분이 드는 걸까.
그런 이유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모임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우리 모임에 그런 건 없다.
적어도 이 모임에선 전체 분위기를 위해 하기 싫은 뭔가를 특별히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만나도 부담이 없다. 목적지를 정할 때 한 사람이라도 그 음식이 싫으면 다른 곳으로, 그 다른 곳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의 DNA가 좋아하는 닭집으로 가면 된다. 함께 만나서 얼굴이나 보고, 여전히 학교 다닐 때처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침묵이 우리의 공간을 채워도 어색하지 않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된다. 피곤하면 도중에 집에 가도 되고, 아쉬우면 남은 사람끼리 따로 뭔가를 해도 된다. 언제라도 연락해서 시간 되는 멤버끼리만 만나도 되고, 시간이 안되면 다음에 봐도 된다.
모임의 구성 멤버로서의 가져야만 했던 어떤 의무에서 해방된 모임 같다고 할까.
모임 전체의 분위기를 위한 하나의 선택이 아닌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모임.
알다시피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런 해방을 목적으로 한 모임은 아니었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반드시 함께 뭔가를 해야 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느냐, 계속 모임을 이어가는 것에 중점을 두느냐.
어느 것이 중요한지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의외로 모두가 만족할만한 답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