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을 하며 여자가 된다.

#전환점 #갱년기

by 여름나무

거울을 보았다. 사막 위로 황량한 사풍(모래바람)이 불어 지나는듯했다. 분명 한때는 푸른 초원이었을 모습을 언뜻언뜻 내비치기도 하건만, 사막화 현상은 좀처럼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노화현상이라며 감각도 뭉그러질만도 하건만, 탄력을 잃은 투박한 모습은 이렇게 거울 앞에 앉아 마주칠 때마다 훅하고 가슴을 후려쳐 오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무엇을 놓지 못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모처럼의 바깥나들이를 위해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변질되는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라도 하려는 듯 색을 입히기 시작하자 복사꽃은 아니어도 그런대로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은 약간의 긴장과 설렘으로 이어지며 가라앉는 기분을 올려놓기에 그런대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화장을 하자 다시 여자가 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린날엔 지금의 나이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현실감의 결여는 나와는 별개의 것이라 생각을 하게 한 것 같다. 상상해 보거나 대비할 틈도 없이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순식간의 일처럼,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던 거 같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문득, 추수를 끝낸 허허벌판에 떨어진 쭉정이가 돼버린 그런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후폭풍이 불어왔다. 평범한 일상이 무기력해지며 공허함이 의지를 꺾어내린다.


젊은 나이엔 이 나이가 이렇게 쉽게 가까이 올 줄 생각하지 못하였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에 우선 급한 것을 처리하며 천천히 여유를 갖고 계획을 세워가자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한숨 돌리고 보니, 젊음의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이는 중요하지 안다한다. 어떻게 사느냐의 방식에 따라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며 위로를 준다. 하지만 추스르지 못하는 마음을 위해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알고 있다. 떠난 것을 아파하다 지금의 시간을놓칠 수도, 언젠간 그 나이만 됐어도 하며 아쉬워 뒤채길, 그런 날임을, 그러니 어쩌지 못해 허탈하게 빼앗기고 있는 오늘을 살펴보려 한다.


누구나 개성에 따라 삶의 대처방법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둔감하게 매사를 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구태여 느끼지 않아도 될 것에 민감한 사람이 있다. 누구의 탓도 아닌 만들어진 성격이니, 성장시키지 않고는 변할 수 없던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 이 전환점을 만나지 않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흔히들 갱년기가 와서 그렇다 한다. 사실 유무를 떠나 무엇이라도 잡고 늘어지고 싶어 얼른 갱년기에 숟가락 하나를 얹는다. 인정하긴 싫지만, 몇 가지의 증상은 갱년기 장애가 분명했다. 하지만 마음은 아직도 철이 없어 강하게 거부하고 있어 보였다.


일상의 어느 순간이, 쫓기듯이 급급하거나 때론 늘어질 대로 늘어져 자빠지기 부지기 수였다. 그럼에도 노화되는 나와 상관없이 오늘은 무심히 계속되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답을 찾는다. 흑백논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녀를 만난 건 어느 모임에 서다. 매사에 정확한, 도전적인 말투로 그녀는 많은 것을 주제 삼아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들 몇이 모이면 그렇 듯, 탄력을 잃어가는 삶 과 신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 젊은 그녀는 누구나 끄집어내기 꺼려하던 성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 주었다.


학자에 따라 인간 행동의 원동력을 성욕으로 보거나 정신적 의지에 따른 변화로 보았다. 어느 것에도 맞설 줄 모른다. 오히려 인간의 성을, 대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본질적인 신성한 힘으로 여겼던 고대농경시대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녀를 통해 내면에 가두어 두었던 근본적인 갈등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 급급한 이유는 싹틔울 밭의 기능상실에 절망하며, 더 이상 씨앗을 뿌리고 거두지 못해 황폐화될, 버려질 땅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던 거였다. 그것은 곧 젊음을 잃는다는 의미였고, 힘의 상실이었던 것이다.


그냥 지나 칠 것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민감하거나 나약한 자들 의문제다. 상실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한다. 본능소망은 그래서 사랑을 갈망하거나 또 다른 대상을 추구하려 드는 것이다. 어찌됐든 그 모든 행위는 젊음에 대한 마지막 대항이 되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사계절만큼 우리의 인생사를 비유할만한 것은 없는 거 같다. 자각은 이제 추수를 끝내고 겨울의 어귀에 선 나를 마주하게 한다.


살아오는 동안이 그랬다. 아름다운 봄날에 꽃피어, 뜨거운 햇빛 아래 성장했고, 가을이 되어 여물었다. 그리고 또다시 피어날 꽃을 위해 영양분이 될 시간을 가져야 했다. 삶의 길흉화복 또한 별 다를 게 없었다. 한없을 것 같은 여름도 예고 없이 겨울이 찾아왔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도 반드시 때가 되면 봄날이 되어 꽃을 피웠다.

어느새 거리에 봄이 내려앉고 있었다. 바람도 한기를 빼고 달려든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거웠다. 보편성과는 다른 따뜻한 위로다.


가끔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일까 하는 물음을 갖는다. 맞서지 못하는 것을 만날 땐 신을 찾기도 한다. 그러니 이 전환의 시기는 반드시 겪고 가야 할 신의 뜻으로, 또는 대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임이 옳을 것이다.


총체적으로 볼 때 나의 삶에서 봄과 여름, 그리고 또 하나의 계절은 지나갔다. 그러나 그 남은 계절 중 하나 겨울엔, 단정 짓지 못할 만큼의 사계절이 오고지 날것을 안다.


다행 이 겨울은 새로운 틔움을 위해 내면으로 들어가 숨 쉬는 계절이다. 거친 계절을 보내며 힘겹던 것들을 내려놓아도 괜찮다. 평화는 추수를 거 둔, 버려질 땅을 가진 자들의 것이 될 것이다.


머지않아 봄나들이에 다시 화장을 할 것이다. 이렇게 마주선 마음을 정리하며 오늘을 전후 로조 금 더 성장하고자 한다.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신다” 하지 않았던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날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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