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맨해튼의 수직혁명, 제1기 마천루 시대

by 박성기

1. 물결 위의 천국, 레나페족의 '마나하탄'시대

2. 항해시대의 확장과 북미대륙 속의 '마나하탄' 시대

3. 영국령 뉴욕 속의 '맨해튼' 시대

4. 미국의 초대 수도와 상업 수도의 '맨해튼' 시대

5. 격자계획으로 도약하는 '맨해튼' 시대

6. 센트럴 파크와 함께 하는 맨해튼 발전의 전환시대



7. 맨해튼의 수직혁명, 제1기 마천루 시대



센트럴 파크가 19세기 중반 맨해튼에 수평적, 공간 혁명으로 삶의 질을 재정립했다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은 건축기술을 통한 수직적, 경제적 혁명이 도시의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는 건축사에서 '제1기 마천루 시대(First Skyscraper Era)'로 불리며, 뉴욕을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금융 및 상업 중심지로 끌어올렸습니다.




맨해튼의 고층 빌딩 경쟁은 두 가지 핵심 기술의 상업적 성공에 기반합니다. 강철 골조(Steel Skeleton) 기술이 도입되면서 건물의 무게를 외벽이 아닌 내부 골조가 지탱하게 되어 높이 한계를 돌파했으며, 안전 엘리베이터의 상업화는 고층부의 실질적인 사용을 가능하게 하여 좁은 맨해튼 섬의 토지 가치를 수직으로 극대화했습니다.




19세기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이어진 제1기 마천루 시대는 높이 경쟁이 격화되었던 시기입니다. 1890년에는 뉴욕 월드 빌딩(New York World Building)이 뉴욕에서 최초로 교회의 첨탑 높이를 능가하며 스카이라인의 전환을 알렸고, 1899년에는 파크 로우 빌딩(Park Row Building)이 잠시 세계 최고층 오피스 빌딩 기록을 보유하며 뉴욕이 고층 건축의 선두 주자임을 상징했습니다. 1902년에는 플랫아이언 빌딩(Flatiron Building)이 강철 구조 기반의 미학적 상징으로 미드타운의 상업 중심지 부상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뉴욕은 본격적인 세계 최고층 타이틀 경쟁을 펼쳤습니다. 싱어 빌딩(Singer Building, 1908)이 잠시 동안 최고층 기록을 차지했고, 곧바로 메트로폴리탄 타워(Metropolitan Life Insurance Tower, 1909)가 기록을 경신하며 경쟁적인 마천루 시대를 이어갔습니다. 울워스 빌딩(Woolworth Building, 1913)은 '상업의 대성당(Cathedral of Commerce)'이라 불리며 신고딕 양식과 철골 구조를 결합해 17년 동안 최고층 기록을 지켰습니다. 이러한 경쟁은 1930년대 아르 데코 양식의 걸작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 1931)의 완공으로 이어져, 세계 최초로 100층을 돌파하고 40여 년간 최고층 자리를 유지하며 제1기 마천루 시대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마천루가 상업적 밀도를 수직으로 높이는 동안, 도시의 폭발적인 인구를 효율적으로 수송하기 위한 지하 대중교통 시스템이 완성되어 도시의 기능을 확장했습니다. 1904년 뉴욕 지하철(Subway) 개통은 맨해튼과 외곽 지역과의 접근성을 혁신적으로 개선하여 뉴욕 광역 도시권(Metropolitan Area) 성장을 가속화했으며, 1913년 완공된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은 도시 교통 네트워크 완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마천루 경쟁 심화로 도시 환경의 질이 위협받자, 뉴욕시는 이에 대응하여 1916년 구역 설정법(Zoning Resolution)을 도입했습니다. 이 법은 미국 최초의 대규모 도시 계획법으로, 건물의 높이와 형태를 규제했습니다. 이 법에 따라 고층 건물이 일정 높이 이상 올라갈 경우 외벽을 안쪽으로 후퇴(Setback)시키도록 규정하여 채광과 공기 통로를 확보하게 했으며, 이는 아르 데코 마천루의 독특한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를 탄생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제1기 마천루 시대는 맨해튼의 수직적, 네트워크적 확장을 통해 이 도시를 현대적인 국제 도시로 탈바꿈시킨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제1기 마천루 시대의 절정이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1)의 완공 직후, 뉴욕은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이와 이어지는 제2차 세계대전은 뉴욕의 건축적 성장을 장기간 침체시켰지만, 동시에 도시 재건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태동하는 시기였습니다




1920년대에 광풍처럼 불었던 건설 붐은 대공황과 함께 완전히 멈춰 섰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엠티 스테이트 빌딩(Empty State Building, 텅 빈 빌딩)'이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공실률이 높았으며, 최고층 건물의 타이틀을 40여 년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후 새로운 마천루가 건설될 자금이 고갈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제 침체로 인해 지하철, 도로 등의 기존 도시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지연되면서 노후화가 심화되었고, 이는 향후 도시 재건의 필요성을 증대시키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침체된 경제 속에서 뉴욕은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도시의 형태와 기능에 급진적인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도시 계획가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가 있었습니다.




모제스는 수많은 고속도로(Expressways), 교량, 터널 및 공원(Parks)을 건설하며 뉴욕의 지상 교통 체계를 혁명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모제스의 프로젝트는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했기에, 종종 기존 주거 지역과 소외 계층 커뮤니티(특히 브롱스, 퀸즈 등)를 대규모로 철거하고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이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진 도시 개발의 논란이 되는 역사적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시기는 건축 디자인의 주류가 고전적인 장식과 신고딕 양식(울워스 빌딩)에서 벗어나 기능주의와 단순미를 강조하는 국제 양식(International Style, 모더니즘 건축)으로 바뀌는 과도기였습니다. 민간자본으로 대공황기에 건설된 록펠러 센터(Rockefeller Center, 1930s)는 아르 데코 양식의 마지막 걸작이면서도, 복합 시설 개념과 대규모 공개 공간(Plaza)을 도입하여 현대 도시 개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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