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제3기 마천루시대

by 박성기

1. 물결 위의 천국, 레나페족의 '마나하탄'시대

2. 항해시대의 확장과 북미대륙 속의 '마나하탄' 시대

3. 영국령 뉴욕속의 '맨해튼' 시대

4. 미국의 초대 수도와 상업 수도의 '맨해튼' 시대

5. 격자계획으로 도약하는 '맨해튼' 시대

6. 센트럴 파크와 함께 하는 맨해튼 발전의 전환시대

7. 맨해튼의 수직혁명, 제1기 마천루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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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2기, 제3기 마천루 시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수십 년간 멈춰섰던 뉴욕의 건축 활동은 195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동력을 얻으며 재개되었습니다. 이 시기, 유럽에서 건너온 모더니즘 건축(Modern Architecture)의 물결이 뉴욕을 지배하면서, 도시의 모습은 제1기 마천루 시대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형태(아르 데코, 신고딕)와는 완전히 다른 단순하고 기능적인 박스형 건물로 바뀌었습니다. 이 시기를 '제2기 마천루 시대'라고 부릅니다.




유럽의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에서 시작된 국제 양식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건축물의 장식을 모두 배제하고, 효율성과 기능성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건물의 외벽은 석재나 벽돌 대신 유리, 강철, 알루미늄과 같은 공업 재료로 된 커튼월(Curtain Wall)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는 건물이 마치 유리 상자처럼 보이게 했으며, 건물 내부로 햇빛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 시대의 건물들은 뉴욕 미드타운과 로어 맨해튼에 대거 들어서며, 뉴욕을 '글로벌 자본과 기업의 중심지'라는 현대적 이미지로 굳혔습니다. 리버 하우스 (Lever House, 1952) & 시그램 빌딩 (Seagram Building, 1958) 건물은 뉴욕에 국제 양식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대표작입니다. 특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시그램 빌딩은 청동과 검은색 커튼월을 사용하여 고급스러우면서도 엄격한 모더니즘의 미학을 완성했습니다. 이 건물들은 토지 전체를 사용하지 않고 전면에 넓은 공개 광장(Plaza)을 두어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했는데, 이는 1916년 구역 설정법에 이어 공공 공간 확보를 위한 도시 디자인 기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뉴욕은 다시 한번 시카고와 세계 최고층 빌딩 타이틀 경쟁을 벌였습니다. 세계 무역 센터 (World Trade Center, WTC, 1973)는 미노루 야마사키가 설계한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은 당시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현재 윌리스 타워)와 세계 최고층 타이틀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WTC는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의 금융 중심지 지위를 강화하고, 뉴욕을 상징하는 거대한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중앙 코어에 집중된 하중 대신 외벽 전체가 하중을 분산하는 튜브 구조(Tube Structure)를 사용하여 효율적이고 개방적인 사무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1970년대 오일 쇼크와 경기 침체를 겪은 뉴욕은 1980년대부터 금융 및 정보 산업을 기반으로 다시 도약했습니다. 이 시기의 건축적 흐름은 건축사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건축이 등장한 '제3기 마천루 시대'의 시작으로 간주됩니다.



1980년대 건축가들은 국제 양식의 획일성, 비인간성, 역사 부정에 반대하며 장식, 색상, 그리고 유머를 다시 건물에 도입했습니다. 건물들은 고전적인 요소(아치, 기둥, 첨탑)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사용하여, 주변 환경이나 도시의 역사와 다시 소통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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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뉴욕의 건축은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급성장과 맞물려 금융 자본의 힘을 과시하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AT&T 빌딩 (현재 소니 타워, 1984)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설계한 이 건물은 고전 가구장의 페디먼트(박공) 모양을 본뜬 독특한 꼭대기와 아치형 입구로 유명합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적인 선언이기도 합니다. 월드 파이낸셜 센터 (World Financial Center, 1980s)는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 매립지에 조성된 이 복합 단지는 뉴욕 금융 중심지를 확장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무실뿐만 아니라 상업 시설과 공공 공간을 통합한 대규모 도시 복합 단지 개발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1980년대는 금융 규제 완화와 정보 기술의 발달로 뉴욕이 글로벌 금융의 허브로 기능이 강화된 시기입니다. 이로 인해 로어 맨해튼과 미드타운의 오피스 수요는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로버트 모제스 시대의 무자비한 도시 재개발 방식에 대한 반성도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시민의 삶의 질을 고려한 공공 공간(Public Space)확보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뉴욕시는 용적률 인센티브 등을 통해 건물주들이 광장, 아트리움 등을 조성하도록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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