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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레순 Jun 30. 2021

월급날의 EATFLIX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월급날이 왔기에, 오늘도 거침없이 EATFLIX!


월급날은 좋은 날

구십 년대 생. 여자. 삼 년 차 회사원의 EATFLIX.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고 싶은 게 넘쳐난다. 잠결에 실수로 산 예쁘고 비싼 운동화에 맞춰 신기 위해서 귀여운 반팔 티셔츠도 사야 하고, 거기에 받쳐 입을만한 한여름에도 시원하게 입을 수 있되 핏까지 딱 떨어지는 통풍이 잘 되는 바지도 사야 한다. 이렇게 소비욕이 넘쳐날 때마다 나는 나를 부여잡고 말한다. “진정해, 월급날 곧 올 거야.”


한창 취업 준비로 힘들 때 친구와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햇수로 4년째에 접어들었을 때, 친구는 편지에 “좋은 날 언젠가 오겠지”라고 썼다. 그 한마디 말로 나는 언젠가 올 좋은 날을 기다리면서 외로운 길을 씩씩하게 걸었었다.

지지난주에 연애에 실패한 친구를 위로해주기 위해서, 친구들과 함께 소주 한잔을 했다. 우리 중에 가장 위로를 잘하는 친구가 연신 말했다. “좋은 날 곧 올 거야”라고. 그날 우리는 그 애의 눈물자국을 지우기 위해 오만가지 재롱을 부리고, 뒤로 넘어갈 때까지 웃었다.


월급날도 좋은 날도 정말 언젠가 온다.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고 얼마 안 있어 우리는 직장인이 되었고, 소주로 눈물을 닦았던 친구는 지금 새로운 사람과 썸을 타고 있다. 안 올 것 같던 월급날이 매달 오는 것처럼, 좋은 날은 반드시 온다.

하지만 그만큼 좋은 날도, 월급 날도 빨리 가버린다. 언제 입금이 됐는가 싶을 정도로 월급은 통장을 스치고, 그렇게 되고 싶었던 직장인의 좋은 날도 취업을 했던 그 순간에서 멀어질수록 닳고 헤진다.


우리는 늘 언젠가 올 그날을 기다리며 사느라 진짜 좋은 것이 왔을 때 흠뻑 좋지 못한 채로 보내기 바쁘다. 사실 좋은 날은 월급처럼 오는 게 아니라 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다가오는 월급 날도, 좋은 날도 이번엔 정말로 도망가기 전에 와락 껴안아 만끽해보자고, 다짐을 한다.


언젠가 올 ‘그날’을 기다리며-

코로나가 끝날 그날을 기대하며 그라운드 시소 서촌에서 열리는 <요시고 사진전 : 따뜻한 휴일의 기록>

꿈을 이루는 그날을 향해 사는 이들을 위한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언젠가 올 ‘내 차례’를 기다릴 가치가 있는 줄 서 먹는 식당

애매한 시간에 가도 줄을 서는 경복궁 ‘칸다소바’

사장님이 매일 손님 없다고 울지만 .. 을지로 ‘7.8막걸리’

뙤약볕에서도 기다려 먹을 수 있는 약수 ‘금돼지식당’




귀여운 사람들의

작지만 소중한 날

팔십 년대 생. 남자. 십일 년 차 회사원의 EATFLIX.


우리의 월급은 대부분 모두 같다. 월급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잠시 스치고 지나간다는 점에서. 내가 번 건데 제대로 맛볼 수 없다는 점에서. 월급을 받기 위해 월급의 대부분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 일한 양과 쏟아낸 감정에 비해 너무 야박하다는 점에서. 이 회사 평균 월급에 내 월급은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내가 쓴 건 맥주 몇 캔에 치킨 몇 마리 같은데, 그것이 월급의 전부가 된다는 점에서. 내 고생의 대가인데 국가적 차원에서 일부를 가져가 버린다는 점에서. 받기도 전에 일부 써버렸다는 점에서. 그 악순환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아무튼 이 모양, 이 꼴, 이 따위로 받아선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 (아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많다…)


매월 25일. 아주 야박하고 가끔은 가혹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작고 소중한 월급날. 회사를 나가는 대부분의 날이 전생에 지은 죄를 갚는 날인데, 이 날 하루만큼은 휴가를 얻은 것 같은 날. 잠시긴 하지만 훈훈한 통장잔고를 맛보는 날. 그리하여 관대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날. 퇴근 후엔 맥주도 사 먹고, 치킨도 한 마리 시켜먹고, 다음 달 월급과 힘을 합쳐 옷도 한 벌 사면서 기분 좀 내는 날. 이 기분이 월급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있는 거 같지만 그래도 작고 소중한 월급에 기뻐할 줄 아는, 크기는 모두 다르지만 귀여운 사람들.


매일 하는 일인데, 매번 새롭게 죽을 거 같은 이 출근을 버텨내게 하는 힘은 이 하루에 있는지도 모른다. 전쟁 같은 사랑과 인생이 행복하고 즐거웠던 며칠로부터 계속 이어지듯, 하루 종일 힘든 애보기도 스치듯 지나치는 애교에 싹 씻겨나가듯. 당장이라도 그만두겠다 먹었던 마음도 맛있는 안주와 마시는 맥주 한 모금에 잠시 사라지듯. 수많은 날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이렇게 작지만 소중한 하루 덕분일 것이다. 이런 날이 계속되고, 더 많아져서 귀여운 사람들의 인생이 조금 더 귀여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일단 먹고 보자!



월급명세서가 우리를 속일지라도 힘낼 수 있게.

<힘내세요, 병헌씨> 유명 감독이 된 병헌씨의 페이크 다큐. 영화 끝나고 나오는 단편영화 ‘냄새는 난다’가 사실 메인

<나기의 휴식> 일과 사랑에 지친 어른들을 선발해, 잠시 방학을 주는 법이 52시간보다 먼저 생겼어야…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 일을 하는 목표가 단순해지면, 쉽게 행복해질지도. 다 맛있는 거 사 먹을 돈 버는 거지 뭐…



월급이 지나간 자리, 헛헛한 마음 빵빵해질 수 있게

<르타오 치즈케이크> 꾸덕하고 진하고 뭐 그런 치즈케이크를 먹자. 월급날이니까 사치를 부려보자

<외계인방앗간 귀족올리브빵> 올리브를 좋아한다면 이 빵을 꼭 먹어보자. 월급에 또 다른 이유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이버 앙버터> 버터를 들으며 앙버터를 먹으며 헛헛한 마음을 빵빵하게 채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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