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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레순 Aug 02. 2021

격리된 EATFLIX

문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될지라도, 7월에도 꾸준히 EATFLIX-


떨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구십 년대 생. 여자. 삼 년 차 회사원의 EATFLIX.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나는 애써 무시했다. 확진자 수가 네 자릿수를 돌파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어도, 같은 사무실의 확진자 소식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순간일 줄 알았던 역병에 시대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하면서 생긴, "나는 아닐 테지"하던 안일한 태도였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도 나한테.

낮에도 전등을 켜지 않으면 어두컴컴한 작은 객실에 격리되었다. 말 그대로 '격리'였다. 바이러스가 내 몸에서 죽어 나갈 때까지 방 바깥의 그 어떤 것과도 접촉할 수 없었다. 처음엔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물리적으로도 격리되었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가 사회로부터 동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름휴가를 계획했던 다음 달은커녕, 당장 내일도 내게 주어지지 않을 것 듯한 두려움에 온종일 내내 침울했다. 그런 내게 아빠가 했던 '공식적으로 생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하자'는 말을 위로 삼으려 애썼다.

하지만 터닝포인트로 삼기에는 날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졌다. 39.7도까지 올랐던 열이 며칠을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료진의 전화를 제외한 그 어떤 외부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침조차 삼키기 어려운 인후통과 온몸의 안팎을 두들겨 맞는 것 듯한 통증은 그래도 참을만했다. 내가 참기 어려웠던 것은 이 재난의 상황 자체를 나 홀로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평화와 안정을 주던 고요함은 온 데 간데없고, 무거운 생각으로 나를 짓누르고 내 목을 조여 오는 고요한 공기가 베개와 천장 사이에 부유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입맛 없음'을 경험하고 없이는 못 사는 유튜브를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것이다"라는 영화 <메기>의 대사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은 축축한 고요함에 겁을 먹고, 거울 속의 슬픈 나만 바라볼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있는 힘껏 음식을 먹고, 재미있고 좋은 것을 보며 웃으며 지독한 고요함을 부수는 것이었다. 목이 아프고 입맛이 없을지언정 아무 일도 없었을 때처럼 열심히 먹고,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울지언정 자다가도 생각이 나서 웃음이 실실 나오던 날처럼 열심히 보며 웃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놀랍게도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먹고, 또 보느라 바빴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세상으로부터의 단절로 인해 깨달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앞으로 어딘가로부터 격리된 외톨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는, 일단 열심히 먹고 보자고!


격리된 나를 세상에 다시 붙여준 접착제 같은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도망갔다가,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던 소띠 언니의 노래는 도망가려던 내 정신을 다시 돌아오게 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GOS6C2jXTa8

Youtube 채널 <jinu montage> 장면과 음악의 조합만으로도 새로운 맥락과 메시지가 만들어질 수 있고 그것 자체가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격리가 되지 않았다면 모른 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오디오 비주얼 필름 크리틱'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당신에게도 흥미롭기를 바라며.. : https://www.youtube.com/channel/UC1XIiysSqgauVj_yYmbQseQ/featured

이진호 감독의 <액션 히어로> 양성 판정을 받기도 한참 전이었던 때부터 손꼽아 기다려왔던 영화! 격리 해제가 후 처음으로 맞는 일요일을 통쾌하게 웃으며 즐기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시원하게 할 수 있는 기분을 만들어준 건 200% 이 영화 덕분이다! 영화를 꿈꾸는 나와 내 친구가 생각이 나서 흐뭇하게 간지럽기까지 했다


입맛이 없어도 격리된 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엄마의 김치전 하도 노래를 불러서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딱 맞춰 엄마가 두장이나 부쳐준 김치전 맛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무덤까지 갖고 가고 싶은 맛

맥도날드 1955버거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나랑드 사이다 증상인 건지 센터에 있는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헛구역질과 위산까지 토해내었는데 그때마다 사이다 생각이 절실해져.. 결국 가급적 자제해달라던 택배를 시키고야 말았다! 나를 살린 생명수!



**코로나를 겪고 나서 친한 친구들이 지겨워할 정도로 나의 생각을 반복해 말했고(말하는 스스로도 지겨워짐), 또 내가 쓰는 SNS 이곳저곳에 나의 병상일지(?)를 기록해두었다. 사실 생각의 정리가 완벽히 되지 않아 똥을 덜 닦은 기분이지만, 뭔가 (언제나처럼) 별 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굳이 정리를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로나 호들갑은 이 글을 마지막으로 깔끔히 보내버리기로 다짐했다! (과연..)





별일 없이 산다는 것

팔십 년대 생. 남자. 십일 년 차 회사원의 EATFLIX.


완벽하고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지킨 것은 아니었지만. 마스크도 잘하고, 하지 말라는 건 가급적 하지 않으며 1년을 넘게 살았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나의 일이라는 생각은 잘하지 않았다. 이 시절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지키는 규칙 정도에 불과했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에도 나와 내 주변 모두가 이 바이러스로부터 무사했기 때문이다. 이 시국에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어진 사람들을 걱정하는 마음보다, 그냥 이 시절이 빨리 지나가 마스크를 쓰지 않는 날을 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다 회사에 처음 확진자가 나왔다.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으며 나의 일이라 여기지 않았던 것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주말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후배의 전화를 받고 코로나19는 완전한 나의 일이 되었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함께 녹음실에 있었다는 이유로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괜히 목이 아픈 것 같았고,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빼면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꽤 오래전 청파동 원룸에 혼자 살던 젊은 내가 된 거 같은 기분도 들었다. 밖에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시간이 되면 일어나서 씻고, 밥을 챙겨 먹고, 티비도 보고, 책을 보고, 일도 했다(쓸데없이 좀 바빴다. 재택의 완성은 '일 없음'인데...) 시간이 되면 정성껏 밥을 챙겨 먹고, 몸에 미안하지 않게 운동도 조금 하고, 차와 커피를 내려 마시고, 여기저기서 보내준 과일도 많이 먹었다. 가급적 눕지 않고 바르게 앉으려 노력했고, 이틀에 한번 청소를 하고, 청소가 끝나면 좁은 욕조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주말엔 낮부터 냉동실을 털어 맥주를 마시고, 낮잠을 잤다. 보고 싶었지만 놓쳐버린 영화랑 드마라도 보고, 늦지 않게 잠에 들어 잘 수 있을 만큼 늦게까지 잠을 잤다. 되돌아보니 짧지 않은 이 시간을 평양냉면보다 슴슴하게 아니 맹물에 가깝게 보내버린 거 같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 별 거 아닌 것들에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쏟으며 보냈다는 것이.


열몇 살 어린 시절엔 별게 다 별일이었다. 날씨가, 누군가의 말과 눈빛이, 닫힌 싸이월드가, 지난 술자리에서 오고 간 대화들이, 취했던 밤과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마음들까지. 하여간 많은 것이 호들갑스럽게 일상을 채웠다. 그런 별일에는 늘 상당한 수고가 필요했고, 그런 날이 지나고 나면 괜히 쓸쓸해지는 날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하루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늘 몸과 마음이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그와 비교해 요 몇 년 간의 삶은 아주 평온하고 잔잔했다. 특히 격리된 2주의 시간은 더욱 그랬다. 별일 없이 사는 것의 기쁨과 조금은 지루해 보이는 이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이런 일상을 깨뜨리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감사할 따름이었다.


후배는 건강을 회복했고, 나는 무사히 격리에서 해제되었다. 모두가 힘든 지금도, 앞으로 다가올 또 어떤 시절에도 별일 없이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저 먹는 것과 보는 것이 인생 최대의 별일이어도 좋겠다.


잔잔한 당신을 응원하는 이야기

<거북이는 의외로 빠르게 헤엄친다 >

스스로가 대수롭지 않다고 느껴질 때마다 꺼내보는 내가 일곱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

< 패터슨 >

패터슨시에 사는, 패터슨씨에 대한 이야기. 언젠가 패터슨씨처럼 살고 싶다. 아니 살 수 있다.

< 인생 후르츠 >

이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 인생 좌우명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가 되었다. 여전히 빠르게 걷고 빠른 포기 맨으로 살고 있지만.


잔잔한 당신을 위한 한 끼

라멘

거북이는 의외로 빠르게 헤엄친다에서 고독한 미식가 고노상은 최선을 다해 이도 저도 아닌 기억되지 않을 평범한 라멘을 만든다. 그러다 정말 맛있는 인생 라멘을 만드는데. 일단 열라면이라도 끓이고 보자.

도넛츠

패터슨의 아내 로라가 만드는 도넛이 나오는데, 로라의 행적을 보면 그닥 맛있을 거 같진 않지만... 그래도 크리스피든 던킨이든 잘 나가는 노티드든 먹고 보자(우리 동네 근처 도넛드로잉도 추천)

생선구이와 고로케

인생 후르츠 히데코 할머니는 별별 요리를 다 해내는데, 특히 생선구이랑 고로케가 너무 맛있어 보인다. 잘할 수 없다면 비비고 생선구이라도 먹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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