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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지경 Apr 04. 2024

롱핀이냐 숏핀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보다 문제는 이기고 싶은 마음

롱핀을 가져갈까? 숏핀을 가져갈까? 매주 월~화요일 오리발 데이를 맞이할 때마다 고민한다. 롱핀을 신으면 숏핀보다 힘은 덜 들면서 속도가 빨라지고, 숏핀을 신으면 운동은 되지만 속도가 롱핀에 비해 느려진다. 한동안은 잠영 연습을 하려고 일부러 롱핀을 챙겨 가기도 했지만,  대게는 컨디션이 안 좋거나 힘이 들 것 같은 날은 롱핀을 챙긴다. 수업을 듣기 전에 힘들지 어떻게 아냐면, 수영강습은 일주일에 한 가지 영법을 집중 훈련하며 훈련 순서는 접배평자 순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3월에 월수금을 낮 12시 오후 수영으로 바꾸고 상급반 레인에 발을 담그게 됐다. 발이 아니라 온몸을 담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상급반이 된 후 월요일 아침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롱핀을 가져갈까? 숏핀을 가져갈까?

용의 꼬리를 하리라 맹렬히 다짐했는데, 숏핀을 신고 수영을 하다 보니 1번에게 꼬리를 잡히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수영 강습에선 각자의 속도를 유지하며 멈추지 않고 레인을 도는 게 중요한데, 마지막에 출발한 사람이 너무 느려서 1번에게 잡히면 모두 제 속도로 수영을 못하는 정체 현장이 나타난다.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다. 그 핑계로 월요일엔 롱핀을 챙겼다.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롱핀을 신고 수영을 하다 보니 속도 조절을 못해 앞사람을 바짝 따라가게 됐다. 심지어 내 앞사람은 배가 꽤 나온 임산부였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따라잡으면 흡사 추격당하는 기분이 들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데, 내가 홀몸도 아닌 임산부 회원님에게 압박감을 준 것 같아 미안했다. 이 또한 민폐 아닌가. 이번엔 좀 더 간격을 두고 출발해야지 생각하며 숨을 고르는 데, 그분이 물속에 고개를 넣고 내 오리발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롱핀이면 먼저 가세요."


네.라고 순순히 대답하며 앞으로 가는데 시험을 볼 때 커닝하다 들킨 학생처럼  부끄러웠다. 용의 꼬리가 숏핀으로는 용의 머리는 물론이고 몸통 다리를 따라잡기 힘드니 롱핀이라는 치트키를 쓴 기분이랄까. 실력과 체력의 갭을 오직 롱핀으로 매우려다 들켜서 그랬던 걸까. 반칙은 아니지만 반칙한 기분마저 들었다.


"자, 오늘은 기록을 잴 거예요. 어서 몸 푸세요."

그 주 수요일 일 핑계로 강습을 빠지고 금요일에 나갔더니, 상급반 수영 선생님이 IM(접배평자) 기록을 잰다고 했다. 접배평자를 쉬지 않고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오리발도 없이 맨발로 기록 측정을 한다고? 소름이 끼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지 않고 심박수가 마구 올라가긴 그때가 처음이었다.


상급반 레인은 2개. 각 레인별 한 명씩 출발했다. 물 밖에서 보기에 그들은 그리 빨라 보이지 않았다. 저 정도 속도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들 배치기를 할지언정 물 밖에서 물속으로 뛰어들며 스타트를 하는데, 나만 스타트를 할 줄 모르는 게 걸리긴 했다. 수영 강사님에게 스타트를 배운 적이 없다고 했더니, 물속에서 출발하면 된다고 했다. 강사님은 나를 배려한다는 표정으로 임산부 회원님과 나란히 기록을 쟤라고 했다.


아뿔싸. 긴장한 탓인지 한 박자 늦게 출발했다. 자유형, 평영, 배영, 접영 중 그나마 잘한다고 소리를 듣는 영법이 접영이거늘 시작부터 이게 아닌데 싶었다. 기록이 뭐라고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아점으로 만두를 먹고 와서 그런가. 아르기닌도 마셨는데? 그딴 생각 그만하고 물을 잡자. 물을 잡으며 출수 킥을 있는 힘껏 했다. 배영은 접영보다 편할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음파음파 호흡을 해야 하는데 킥을 하는 다리와 스트로크를 하는 팔과 호흡하는 내가 다 따로 노는 기분. 호흡이 무너지니 배영도 너무 힘들었다.


겨우 턴을 하고 평영을 시작했더니 팔이 돌이 되어 딱딱해지는 저주에 걸린 것 마냥 딱딱하게 느껴졌다. 그때 옆 레인을 보니 임산부 회원님은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나에 비하면 호텔수영처럼 여유로운 자세로. 순간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고 지는 경기가 아니라 개인 기록을 쟤는 건데 패배감이 느껴졌다. 내가 힘겹게 평영을 끝냈을 때 옆 레인 회원님은 이미 출발선에 도착했다. 이번엔 탈락한 기분마저 느껴졌다. 에라 모르겠다. 기록이고 뭐고 포기하고 싶었다. 수경을 벗고 가만히 서서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자유형만 하면 돼요. 어서 출발해요!"

반대편에서 수영 강사님이 외쳤다. 강사님은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나는 못 가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20초쯤 실랑이를 벌였을까. 결국 나는 자유형으로 다시 출발해 우스운 기록으로 마무리했다. 부끄러웠다. 기록이 느린 게 아니라, 중간에 포기하려 한 것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꾸만  생각났다. 평영을 하다 왜 그리 멈추고 싶었을까. 턴을 했더라면 느려도 자유형을 할 수는 있었을 텐데. 왜? 대체 왜? 힘들어서 멈췄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이기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구를? 옆 레인에서 헤엄치는 임산부 회원님을. 수력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내가 느린 게 당연한 일이며, IM기록 측정이 팔씨름도 아니고 닭싸움도 아닌데 이기고 싶었을까. 그보다 심각한 건 졌다고 생각한 순간 더 해봐야 의미 없겠다며 마음을 내려놓은 것이다. 2인 배틀이 아니라 개인 기록 측정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비교 대상이 있으면 상대가 어떤 능력과 경력을 쌓았든 간에 내가 조금 더 잘하고 싶었다. 그게 둘 중 한 명이 선택되는 경쟁이라면 더욱더. 오랜 시간 합격, 불합격 혹은 승진, 승진 누락 혹은 채택, 불채택이 있는 세계에서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노력은 다 물거품처럼 느꼈던 것 같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어떻게든 이겨먹고자 하는 버릇을 취미까지 이어온 건가. 취미 생활을 할 땐 우월감 아니면 패배감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기어이 이겨먹으려는 버릇은 어쩌면 졌지만 잘했다는 칭찬을 못 받고 살아서 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비록 포기할 뻔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1년 전만 해도 양팔접영으로 25m도 못 가던 수린이가 쉬지 않고 접배평자를 시도하다니 장하다. 1년째 쉬지 않고 매일 수영을 하는 것만으로도 장해. 노력하는 만큼 성장하고 있어.


오후수영 상급반에선 다음 달에도 IM기록을 잰다고 한다. 그땐 옆에 누가 있든 쉬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게 목표다. 그 목표를 위해 자유수영을 할 때 접영-배영, 평영-자유형을 연속으로 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리라.  자화자찬의 끝, 빵을 한가득 사들고 집에 돌아와 맛있게 먹으며 다짐했다.  


에필로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핀은 포기 못했다. 이번주 월요일엔 롱핀을 신고 내 발로 먼저 임산부 회원님 앞으로 가서 섰다. 대시로 2바퀴! 하라는 강사님 외침에 미친 발차기를 시전 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도 같은 고민을 하겠지. 롱핀 가져갈까? 숏핀 가져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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