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도 수린이도 씻수, 즐수, 행수 합시다!
어느 운동이나 그 세계에서만 통하는 언어가 있다. 수영도 마찬가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도 있고, 한국 수영인들 끼리 줄여 부르는 약어도 있고, 기가 막히게 잘 만든 은어도 있다. 수영인들은 수영장 밖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그 언어를 쓰며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더 끈끈해지는 것 같다. 그 예로 나와 수친(수영 친구)들이 나눈 카톡의 일부를 발췌해 옮기면 이렇다.
"오늘도 열수 했어?"
"아유. 오늘 빡수 했어."
"바사로 킥도 힘들었는데, 트러젠은 정말 힘들었어."
"아무튼, 오수완!"
혹시, 열수, 빡수, 오수완 같은 줄임말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수영인이 틀림없다. 열수를 사전에서 찾으면 '마그마가 식어서 여러 가지 광물 성분을 석출 한 뒤에 남는 수용액.'이라 쓰여 있지만, 수영인들 사이에서 열수는 '열심히 수영한다.'로 통한다. 빡수는 열수보다 한 단계 위 힘든 '빡세게 수영한다.'의 줄임말이다. 오수완은 오운완의 뜻을 아는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오늘 수영 완료'라는 뜻이다. 헬스인들이 SNS에 #오운완을 기록할 때 수영인들은 #오수완을 쓴다.
한편, 바사로 킥(vassallo kick)과 트러젠(Trudgen)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수영 용어다. 바사로 킥은 주로 배영 스타트 때 하는 동작으로 물속에 누운 채 양다리를 모으고 가슴부터 위아래로 움직이며 발등으로 물을 차면서 나아가는 발차기를 말한다. 접영킥을 누워서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트러젠은 구조 수영에 쓰이며 머리를 물 밖으로 내민 채 자유형 팔에 평영 발차기를 하는 영법을 말하는데, 수영 강습에선 훈련을 위해 연습하기도 한다.
사실, 나도 수영 용어가 이리 어려운 것이었나 뜨악했다. 초급반에서 자유형을 팔 동작을 배우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수영강사에게 이런 설명을 들었을 때, 내 팔을 잡고 설명해 줘서 망정이지 말로만 들어서는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회원님, 캐치할 때 손이 왜 물 밖에 나와요. 물속으로 들어가야죠. 캐치 동작에서 힘을 주지 말고 풀 푸시할 때 세게 피니시까지 물을 쭉 밀어요."
수영에서는 팔 동작을 '스트로크(Stroke)', 발차기를 '킥(kick)'이라고 한다. 스트로크와 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유형, 평영, 배영, 평영, 접영 네 가지 영법으로 나뉜다.
수영 초보들이 처음 배우게 되는 자유형의 경우 스트로크 동작만 손이 물에 들어가는 '엔트리(Entry)', 손바닥으로 물을 긁어모으는 '캐치(Catch)', 팔을 굽히며 물을 당기는 '풀(Pull)', 물을 당긴 후 밀어내는 '푸시(Push off)', 엄지손가락이 허벅지를 스치는 느낌으로 수심 10~15cm 밀어내기를 끝내는 '피니시(Finish)'를 말한다. 자유형뿐 아니라 모든 영법에서 피니시 다음 팔이 물 밖으로 나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기까지 동작은 '리커버리(Recovery)'라 부른다.
다시 자유형으로 돌아가보자. 자유형 스트로크는 결국 팔로 물 잡기인데, 물을 잡기 시작하는 캐치부터 힘을 주지 말고, 풀 동작부터 힘을 주어 추친력을 얻은 다음 물을 끝까지 밀어주는 것이 중요하단 말씀. 그러려면 팔의 안쪽면 전체로 물을 잡도록 팔꿈치를 높이 유지하는 '하이 엘보(High elbow)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배우게 된다. 수영 용법을 몇 개 설명하지도 못했는데 글이 이렇게나 길어졌다. 부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도망가지 마시고 끝까지 읽어주시길.
접영까지 배운 후에야 모든 영법의 스트로크 원리는 같다는 걸 깨달았다. 자유형을 배울 때부터 용어를 몸으로 이해하고 연습해야 실력이 복리이자 쌓이듯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도. 하지만 이론은 모르는 나 같은 무근본 수영인에게는 수영 강사의 체계적인 설명은 체득하는 것은 수포자가 미적분을 공부하는 것처럼 어려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몸은 초등학교 때 배운 수영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발차기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영. 팔은 거들뿐 발로 수영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내게 충격을 안겨준 수영 용어는 비트 킥(Bit kick)이었다.
비트킥이란 양팔 동작을 하는 동안 양다리로 물을 차는 횟수를 말하며 2비트(좌우 1번), 4비트(좌우 2번), 6비트(좌우 3번)가 있다. 2비트와 4비트는 장거리, 6비트는 단거리에 적합하다.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상당 부분 팔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도 2 비트킥을 할 땐 캐치, 풀, 푸시, 리커버리를 생각하며 스트로크를 하는 수밖에.
간혹 수영 강사님에게 '대시하라'는 말에 누군가에게 하트 시그널을 보낼 생각을 한다면 난감하다. 수영에서 대시는 단거리를 전속력으로 맹렬히 질주하라는 뜻이다. 수영 용어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수영 실력이 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나마 '글라이딩(Gliding)'이라는 용어는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글라이딩은 영어 단어 그대로 물속에서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동작을 말한다. 강습 시간에 '출발, 글라이딩을 길게!'라는 외침을 자주 듣는데, 모든 영법에서 글라이딩이 길 수록 체력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글라이딩과 함께 해야 하는 동작은 '롤링(Rolling)'이다. 롤링은 자유형과 배영에서 스트로크를 할 때 몸이 회전하는 동작으로, 어깨와 광배근을 써야 제대로 된다.
그런데 실력보다 빨리 느는 건 수영 약어나 은어를 쓰는 횟수인 것 같다. 2 비트킥으로 쉬지 않고 자유형 뺑뺑이(장거리 자유형)를 잘하는 사람을 '해파리'라 부른다. 자유형 뺑뺑이를 할 때 빠져나와 수영장 끝에 붙어 헥헥거리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다슬기'라 부른다. 누가 만든 은어인지 몰라도 다슬기가 되어 해파리를 바라볼 때마다 생각한다. 참 잘도 만들었다.
"수력이 어떻게 돼요?"
"시력이요? 제가 눈이 좀 많이 좋아요."
"아니, 수력이요."
"???"
처음엔 수력이 무슨 뜻인지 몰라 동문서답을 한 적이 있다. 수영경력의 줄임말이란 걸 파악하고 나서도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까 눈알을 굴렸다. 수영을 배운 지 햇수로 2년 차, 실제 강습 시간은 다해도 1년이 안되었는데... 2년 차 라고 하면 2년이나 했는데 그것밖에 못하냐고 할지는 않을까 눈치가 보여, 수영을 하다 말다 해서 아직 10개월이 안 됐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질문한 분이 고인물 같아서 주눅이 들었던 걸까. 여기서 '고인물'이란 수영을 오오~래 한 수영인을 뜻한다. 고인 물의 반대말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뉴비'나 '수린이' 쯤 되겠다. 수력으로 따지면 몇 년부터 고인물이며 언제까지 수린이인 걸까. 아직 그 정확한 기준은 파악하지 못했다.
고인 물이든 수린이든 '셩장(수영장)'에 와 '셩복(수영복)'을 입기 전에 꼭 기억해야 할 말은 '씻수'라고 생각한다. 씻수란 씻으러 수영 간다는 뜻으로 통하지만, '씻고 수영'이 순서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수력이 얼마든 간에 셩복을 입고 셩장에 들어가기 전 씻어야 매너 있는 수영인이므로.
롤링도 2비트 킥의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 답답하지만, 샤워는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수영가방을 싼다. #SOTD(Swimmwear of the day)를 궁리하며.
여러분, 우리 모두, 씻수, 즐수, 행수 합시다! 즐수 행수는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