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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지경 Mar 28. 2024

봄맞이 수영복 쇼핑을 하며 든 생각

 

"수영복은 동복 하복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여보, 나 봄이라 화사한 수영복 하나 샀어."

"..."

"아니, 상급반도 되고 해서..."

상급반이라도 가게 되면 모를까 수영복은 이제 그만 사자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월, 수, 금요일을 새벽 수영(7시)에서 오후수영(12시)으로 바꾸고 나니 덜컥 상급반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상급반 실력은 아니지만 상급반이 된 기쁨의 세리머니는 아무래도 수영복 쇼핑일 것 같아 초록에 딸기 우유빛깔 한 스푼 얹은 화사한 수영복을 주문하고 말았다. 봄이 뭐길래. 상급반이 뭐길래. 봄날에 상급반이 되었다는 핑계로 나는 수영복을 11개나 가진 수영인이 되었다.


고백하자면 이번에 산 키치피치 메이릴리 더블 크로스백 그린 수영복(수영복 이름은 대체 왜 이리 긴 걸까.)은 핑크 후그 긴 머리 수모에 맞춰 샀다. 수영복 어깨끈이 핑크색이라 수모와 깔맞춤을 위한 선택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보다 잘하는 게 깔맞춤인 것 같다. 이 수영복을 처음 개시 한 날, 아이워치 줄도 연 핑크로 차고, 킥판도 초록으로 잡아 깔맞춤이란 무엇인가 수친들에게 시연하기도 했다.


꼭, 수영복이 아니어도 봄이 되면 봄에 어울리는 색과 패턴의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그렇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봄이라서, 여름이라서, 가을이라서, 겨울이라서 그 계절에 맞는 색의 옷을 입고 싶어 진다. 수영을 하기 전에는 그게 육지옷이었다면, 수영을 하고 나서는 물옷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11개의 수영복을 가진 수영인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수영복 리뷰를 쓴 적이 없다. 수영복을 구매한 사이트에서는 사진 첨부한 리뷰를 쓰면 적립금을 준다고 유혹했지만 나는 늘 고개를 저었다. 내가 주로 수영 복을 사는 사이트에선 리뷰를 쓰려면 키와 몸무게와 사이즈를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체중의 사람들이 후기를 보고 수영복을 구입하는데 참고하라는 의도에서 일 것이다.


라지 사이즈를 입는 게 부끄럽지는 않다. 세상에는 엑스스몰, 스몰, 미디엄, 라지, 엑스라지 사이즈를 입는 사람이 존재하니까. 다만 숫자로 내 몸무게를 쓰는 게 부끄러웠다.


단지, 이렇게 수영복을 많이 샀는데 리뷰를 한 번도 쓰지 않아 적립금을 받지 못했다고 하니 어쩐지 억울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리뷰를 쓰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할 겸 리뷰에 올릴 겸 수영복 사진을 정성껏 찍고 리뷰를 썼다.


몸무게란에 몸무게를 쓰면 그 몸무게 그대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00kg~00kg 구간 몸무게로 표시한다는 말에 혹해 몸무게도 입력했다. 그렇다면 내 몸무게 보다 적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리뷰를 쓰고 나서 보니 내 몸무게는 60~62kg, 내가 기대한 구간(58~60kg)이 아니었다.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왔다. 적립금이고 뭐고 리뷰를 지워버릴까 하다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했다. 몸무게 앞자리가 6이라는 걸 슬퍼하거나 노여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자. 남들은 미디엄, 스몰 사이즈 수영복 입는데 나는 라지 사이즈 입는다고 비교하지도 말자. 수영복을 하나둘 살 때마다 내 몸을 사랑하자고 했던 다짐을 잊지 말자고.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내 몸으로 수영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니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못 쓴 수영복 리뷰나 실컷 써보자. 그 적립금을 모아 뭘 사지? 이번엔 수영복 말고 핑크톤 수경을 사볼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잠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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