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독학으로 호텔 수영을 하게 되었다
아무도 수영하지 않는 호텔 루프톱 수영장에서 홀로 수경을 쓰고 수영을 한 적이 있다. 선글라스가 아니라 수경이 맞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수영인이 있으므로.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수경을 안 쓰는 사람과 쓰는 사람. 전자가 선글라스나 볼캡을 쓰고 여유롭게 호텔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후자는 수경을 쓰고 머리를 물에 담그며 퍼덕거리다 물 밖에 나왔을 때 머리가 물미역이 되는 사람이다. 여기서 호텔 수영은 머리를 물 밖에 내고하는 헤드업 평영을 말한다. 그리고 나는 후자였다.
나 홀로 수영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년 전 초여름 저녁 9시 초급반 수영강습을 받던 시절이었다. 호텔 수영도 못하면서 호텔 갈 일이 생기면 수영장이 있는 호텔을 찾는 호텔 수영병 말기에 걸린 상태였다. 가진 것은 자주색 나이키 원피스 수영복과 검정 아레나 스판 수모, 브랜드도 따지지 않고 산검정 수경 밖에 없었다.
때 마침 부산 출장이 생겼다. 출장 간 김에 부산 호텔에 묵으며 수영, 서울로 돌아오는 길 대구에 들러 친구도 보고 호텔 수영을 또 하는 여행을 계획을 짰다. 부산 롯데호텔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강연한 다음 날 남들이 조식 먹을 때 한적한 수영장에서 자유형, 배영, 평영을 연습하니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이제 대프리카의 쨍한 햇살을 맞으며 루프톱 수영장에서 평영과 배영을 하면 완벽한 원정 수영여행이 될 것 같았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달려간 수성 호텔 루프톱 수영장, 나를 맞이한 건 햇살이 아니라 세찬 바람이었다. 바람 부는 루프톱 수영장에는 풀 메이컵에 화려한 비키니를 입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순간 드레스코드도 모르고 파티에 온 불청객이 된 기분에 안그래도 좁은 어깨가 더 쪼그라들었다. 그 사이를 헤치고 얼른 물로 뛰어들며 생각했다. 다들 호텔 수영을 할 줄 아는 건가? 풀메이크업 하고 얼굴이 물에 젖지 않으려면 헤드업 평영을 해야 할 텐데.
하지만 풀 메이컵을 한 채 인생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비키니 부대는 수영장에 발가락 하나 담그지 않았다. 그 덕에 나는 아무도 수영을 하지 않는 호텔 루프톱 수영장에서 홀로 수경을 쓰고 수영을 했다. 여유로웠다.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수영을 하면 할수록 이게 뭔가 싶었다. 루프톱 수영장에 왔는데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수영을 하고 있으니 전망을 즐길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내 평영 실력은 곧 물에 빠져 죽을 사람처럼 살려줘 평영. 힘겹게 수영장 끝까지 가 전망 한 번 보고 숨 고른 후 다시 평영을 했다. 수경을 쓴 채 호텔 수영 슬쩍 시도해 보았지만, 머리를 들고 하려니 온몸에 힘들 들어가 앞으로 나가가질 않았다.
그 후로 나는 호텔 수영장에 갈 때 늘 수경과 선글라스를 함께 챙겼다. 풀장에 들어갈 땐 수경을 쓰고, 나와서는 잽싸게 선글라스를 썼다. 여유롭게 호텔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경을 쓰고 퍼덕이는 게 죄는 아니지만, 어쩐지 부끄러웠다.
하와이에서도 세부에서도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늘 수경을 쓰고 평영이나 배영을 했다. 그럴 때마다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호텔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매번 혼자 호텔 수영을 해보겠다고 시도했지만, 고개를 내밀면 몸이 가라앉는 게 두려웠다. 몸이 가라앉으면 팔과 발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더욱 가라앉거나 스트로크와 킥이 빨라져 금세 지쳤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헤엄을 치는 게 아니라 가라앉지 않기 위해 버둥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내가 수영하는 곳이 그 어떤 멋진 여행지의 수영장이라도 수경을 쓰는 수밖에.
"선생님, 저 호텔 수영 하고 싶어요."
"호텔 수영이요?"
"네 헤드업 평영이요."
"호텔에서 평영을 제대로 하는 게 더 멋지죠."
칸쿤 여행을 앞두고는 수영 강사님에 슬며시 호텔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슬며시 한 적이 있다. 선수 출신 강사님은 나의 평영을 팔동작을 교정해주려고 했지만 헤드업 평영을 가르쳐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내가 수업을 듣는 수영장은 초급반에서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순으로 진도를 나간다. 초급반 평영 수업에 헤드업 평영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수영장 프로그램은 그렇게 짜여 있지, 초급반 회원들은 평영도 제대로 못하지, 그 상황에서 수영 강사가 헤드업 평영을 가르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아쉬웠다.
결국 칸쿤에서도 호텔수영을 하지 못했다. 풀 바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아쉬워했다. 수영강습 시간에 헤드업 평영을 배웠더라면 머리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유유히 호텔 수영을 즐기다 맥주를 마시고 있었을 텐데. 모두가 상급반까지 가서 대회에 나가려고 수영장에 다니는 건 아니지 않을까. 수영을 좀 배워서 휴가를 떠나려는 사람도 있을 텐데. 한국의 수영장 커리큘럼이 너무 입시 아니, 선수 양성 위주로 구성된 것은 아닐까. 상급반에 가서 수영실력을 쌓은 뒤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딸 때쯤에야 인명 구조용 헤드업 평영을 배우는 게 과연 효율적인가. 속으로 투덜대며.
"눈 뜨고 수영할 수 있어?"
"응? 아니. 수경 쓰고 해야지."
"다행이다 파타야 갔을 때 수경 쓰고 수영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창피했는데."
한동안 호텔 수영을 잊고 살 던 내게 함께 태국 여행을 떠나는 친구가 말했다. 둘이 수경 세트로 쓰고 있으면 덜 창피할 것 같다고. 친구와 나는 방콕과 후아힌 수영장에서 수경을 쓰고 고개를 담그며 수영을 했다. 다정한 두 쌍의 물미역처럼 나란히. 다행히 두 곳 다 수영장이 길고 넓어서 접배평자를 해도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후아힌에서 친구와 헤어져 치앙마이로 온 나는 혼자만의 호텔 수영장을 즐기기로 했다. 호텔 수영은 못해도 호텔 수영장은 포기할 수 없으니까. 기대했던 사원뷰 호텔 수영장에서 처음 수영을 하는 날, 콧노래를 부르며 선베드에 자리를 잡았다. 곧 저녁이라 그런가 아무도 없는 수영장은 한적했다. 풍덩 신나게 뛰어들었다가 수영장 물이 탁해서 깜짝 놀랐다. 여기서 수영을 해도 괜찮은 걸까. 수영하고 씻으면 돼지. 그래도 고개는 다시 넣고 싶지 않은 탁도였다. 헤드업 평영이 시급했다.
다음날 아침 수경 대신 선글라스를 쓰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고 몸을 사선으로 세운 채 팔과 다리를 천천히 저었다. 몸이 앞으로 나가가는 게 아닌가. 이게 되네? 이게 왜 되지? 느린 평영 킥과 머리를 물속에 담그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흐느적거리는 팔 스트로크가 우연히 만나 이루어낸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얼떨결에 난생처음 여유롭게 호텔 수영을 즐겼다. 호텔 옆 사원을 바라보며.
막상 고개를 들고 평영을 하며 수영장을 왔다 갔다 하고 나니, 나는 왜 그렇게 몸이 가라앉는 걸 두려웠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몸이 좀 가라앉으면 다시 몸을 뛰어서 자유형을 해도 되고, 일어섰다가 다시 수영을 시작해도 되는데. 잘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겠다는 게으른 완벽주의자 마인드가 문제였을까. 에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해. 뭐든 배우지 않으면 못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 탓인가. 세상에는 독학이란 것도 있는데.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느닷없는 호텔수영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다가, 예전보다 평영을 편하게 하게 되어서 헤드업 평영도 하게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꾸준히 계속 쭉 수영을 해온 시간이 쌓여 평영을 편하게 하게 된 거겠지. 그러니 앞으로 살면서 호텔수영보다 훨씬 불가능한 일을 맞닥뜨려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쭉 막 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되는 날이 올 테니.
나는 또 뭘 잘하게 될까? 그게 뭐든 기분이 벌써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