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호와 김석준

관계주의자가 되자

by plannista

ㅣ좋은 기획자가 되는 연습


나는 매 학기마다 광고기획론 수업을 진행하면서 반드시 하는 연습이 있다. 바로 '기존 광고의 문제점을 빠르게 찾아내기'이다. 실제 집행된 광고들은 지금 하나씩 다루는 수많은 과정을 충실히 거쳐 나온 결과물들이다. 이미 완성된 광고에서 광고 목표와 타겟, 특히 문제점을 역으로 찾아내는 이 연습은 광고 기획자에게는 필수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꽤나 힘든 시간이다. 30개 정도의 광고 영상을 빠르게 틀어주고, 단번에 문제점을 파악해서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이 이 연습의 규칙이다. 광고 기획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해보기 바란다. 나는 이 연습을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첫 번째는 최근 3개월 이내에 집행된 국내 광고 30개, 두 번째는 같은 기간에 집행된 해외 광고 30개를 보여주고 문제점을 찾아보게 한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흥미롭게도 국내 광고의 문제점을 찾는 응답률이 해외 광고의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브랜드 친숙도와 기존 지식 때문이다.




ㅣ아는 것이, 알고 있는 것이 힘이다.


모르는 브랜드의 광고를 처음 보고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브랜드가 처한 상황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과 무관한 영역의 브랜드일수록 더 어렵다. 해외 광고를 접하면 이런 어려움은 더 극대화된다. 언어까지 낯설어지면 문제점 찾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예전에 진행된 '맥도널드 대파버거' 광고의 경우, 국내 학생들은 맥도널드가 한국 시장에서 상생 이미지를 만들고자 이 제품을 출시했다는 배경을 비교적 쉽게 파악한다. 하지만 같은 시기의 일본 맥도널드의 '사무라이 버거' 광고는 광고만 보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어른들의 버거'라는 슬로건에서 간신히 힌트를 얻는 정도다.


그래서 나는 기존 광고를 보며 문제점을 찾는 연습을 강력히 추천한다. 국내 광고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 과정에서 본인이 가진 브랜드에 대한 사전 지식을 점검할 수 있다. 국내 광고,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임에도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브랜드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가 부족한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과 브랜드를 깊이 있게 아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학생들과 후배들이 자주 묻는다. "좋은 기획자가 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요?" 나는 언제나 이렇게 답한다. "첫 번째 능력은 바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입니다."




ㅣ조세호와 김석준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학생들에게 개그맨 '조세호' 씨의 사진과 디지털 대행사 대표인 '김석준' 대표의 사진을 각각 보여준다. 조세호 씨는 유명한 개그맨으로 결혼 여부, 진행 프로그램, 명품 애호가라는 것까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만약 내일 어느 모임에서 그를 만나게 된다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유퀴즈 잘 보고 있어요.", "결혼 생활은 재미있으시죠?", "남창희 씨도 잘 지내고 있나요?"


반면 김석준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내일 비즈니스로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상상해 보라. 여기저기 정보를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모름은 불안함을 같이 가져온다. 하지만 나에게 그는 지극히 친숙하다. 00기획 출신, O형으로 조금은 급한 성격, 아재개그를 즐겨하고, 보수적이며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 현대계열 광고주와 오랜 협력 관계라는 사실까지 상세히 알고 있다.


'조세호'는 친숙한 브랜드, '김석준'은 생소한 브랜드이다. 이처럼 친숙한 브랜드와 생소한 브랜드의 차이는 명확하다. 만약 친숙한 브랜드라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광고가 왜 집행되고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아는 게 많으면 훨씬 많은 부분이 보인다. 우린 그걸 ‘관계’라고 부른다. ‘관계’, '관련성'은 그만큼 중요하다. 마치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처럼.




ㅣ'관계주의자'가 되자


브랜드를 이해하고 좋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는 광고 기획자의 필수 덕목이다. 광고는 결국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를 형성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예전 광고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유명한 카피나 2021년 '도망가자'라는 노래와 함께 짐을 싸 혼자 떠나는 주부의 모습을 보여준 여행 브랜드의 캠페인은 모두 복잡한 관계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다. 얼마나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에 이런 카피가 나왔고, 우리는 공감을 하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광고 기획은 ‘관계주의자’여야 한다. 많이 만나서 술을 마시고, 어울려 놀라는 것이 아니고, 브랜드와 나 사이에 수많은 관계의 끈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브랜드와 나 사이에는 광고주, 기존 광고, 경쟁사, 소비자, 잠재고객 등 셀 수 없이 많은 관계 맺을 것들이 널려 있다.


연애를 할 때에 상대에 푹 빠지게 되면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브랜드의 커피를 언제 마시는 걸 좋아하는지, 어떤 날씨를 좋아하는지, 여행은 가는지, 어디를 좋아하는지, 소주는 ‘처음처럼’을 마시는지 ‘세로’를 마시는지.. 좋아하면 알고 싶어지고, 알게 되면 더 많이 알고 싶은 게 생긴다. 광고는 연애편지와 똑같은 역할을 한다. 무조건 "좋아한다"라고 말한다고 상대의 마음이 움직이는 게 아니고, 상대가 프러포즈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때론 담담한 문장이, 화려함을 이길 수도 있고, 긴 편지보단 강렬한 한 단어가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알아야 한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좋다고 말한다고 상대가 움직이지 않는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수많은 노력과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궁금’해 하는 것이다. 연애도 결국 자꾸 궁금해지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ㅣ브랜드 오타쿠


훌륭한 광고 기획자는 결국 브랜드에 미쳐 있는 사람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관심 있는 것을 자발적으로 찾아보는 '오타쿠적' 특성이 광고 기획에도 필요하다. 광고하고자 하는 브랜드에 푹 빠져 있으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역사, 특성, 경쟁 환경, 미래의 가능성까지 찾아보고 분석하게 된다. 이것이 문제점을 명확히 파악하는 힘이 된다.


광고 기획자가 되는 첫걸음은 바로 내가 맡은 브랜드에 미치는 것이다. 누구보다 더 관심 있게 브랜드와 관계를 늘리고 분석하고 문제점을 설정하는 사람이 좋은 기획자가 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이제부터 브랜드의 문제점을 찾는 능력을 길러라. 그것이 진짜 광고 기획의 시작이다.




"Consumers don't buy your products; they buy your relationships."
"소비자는 당신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신과의 관계를 구매한다."
- Howard Go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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