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우리의 오랜 바램이었어~~
1.
사람이란 살면서 성격이 여러 번 뒤집히곤 한다.
한때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좋아하던 나였는데,
지금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론
여러 다양한 인간관계를 누리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고 분주하게 보낼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올시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쉽게 친해지고 즐겁게 교류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잘만 이어지면 최대한 가늘고 길게 가지만,
끊어지는 어느 순간부턴 차갑게 싹둑 끝나버리는지라.
사반세기 인연의 확장과 정리의 무수한 실험을 거쳐
수많은 경험치에서 뽑아진 나만의 결론은
바로 ‘먼저 나대지 말자’였다.
갑작스레 글쓰기 모임을 제안받았을 때에도
사람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이나 기대라는 게
거의 내 마음속에 안 남아있을 즈음이고
한 명 빼고는 완전히 모르는 이들의 그룹에
자연스레 끼어들어간다는 게
나름 결코 쉬웠던 과정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랜 허기나 목마름 같은 갈급함이 있었으니.
2.
1인 독립출판의 길로 들어서긴 했지만
나부터도 책 읽기와 글쓰기 면에서
한참 모자란 초짜 수준임을 인정해야 했고,
상당한 금액과 시간이 요구되는
신간 출간의 과정을 얼렁뚱땅 해치우긴 싫었기에.
요즘의 세대, 완벽한 타인들과 소통하며
다가설 수 있는 주제와 화법과 트렌드를 익힌다는
소정의 최우선적 목표를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2024년 9월의 어느 날,
다섯 명의 멤버는 어느 톡방서 드디어 조우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아이들이나
한국학교 교사나 운동 등으로 평소 만나던 사이였다.
글쓰기 모임을 리드하는 대표가 준비한 주제로
2주 간격으로 각자 편하게 글을 쓰고
구글 문서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면,
온라인 줌 미팅으로 만나 각자의 목소리로
각자의 창작 작품을 낭독하고 공유했다.
중간중간 감정이 흔들리거나 울컥해져 올 때엔
서로의 글들을 대신 읽어주고 공감하는 과정을 거쳤다.
처음엔 물론 직접대면이 아니라 어색했으나
솔직한 삶과 글과 아픔에 서서히 스며들고
오랜 상처를 격려하고 품어주는 과정을 거쳐 가면서
어느덧 서로의 목표와 결심을 뜨겁게 응원하는 사이로,
우리 스스로를 자연스레 ‘문우’로 호칭하게 되었다.
3.
다섯 명 모두 살아온 삶의 방식과 터전도 다르고
각자의 나이, 자녀 연령대 등도 달랐으니
현실에선 산호세 지역에 수십 년을 살아도
우리가 과연 만날 수 있었겠는가 싶게
신기하고 생소한 조합 그 자체이다.
그 조합을 더욱 끈끈하게 묶어준 것이 있다면
3킬포라 부르는, 즉 ’3가지 킬링 포인트’를
각자의 일상 속에서 매일 단어로 잡아내어
톡방에 올려 공유하는, 나름 신선한 방식이었다.
그간 세줄일기 앱을 비롯
하루하루를 간단히 요약하는
일기 습관을 가져보고는 싶었으나
혼자서 꾸준히 이어가진 못했는데.
매일 저녁 하루를 돌아보며
하루를 표현할 세 가지 중요 단어들을 자유롭게 고르고
간단한 설명을 한두 줄 부가하는 형식이다.
5인 5색 각자의 일상은 너무도 다르지만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듯한 시간 속에서
거의 매일 3킬포 공유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지탱하고 격려하게 되는 마법이 현재 진행 중이다.
4.
이번 여름을 나면서
다섯 명 중 두 명이 갑자기
한국서 암 관련 진단과 수술을 받게 되었고
우리의 1년을 자축하는 오프라인 만남은
계속 미뤄지고만 있다.
소중한 문우들이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 씩씩한 삶의 기운을 충전하며
항상 영육간에 강건할 수 있길 기원한다.
그리고 우리의 3킬포는
우리가 언제 어느 곳에 있던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