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운동은 내 기억 속에 이렇게 자리 잡았기에 운동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 하는 것 중 하나라고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고, 하기 싫은 것 중 하나였다.
"나는 운동이 싫어"
체력장 시간만 되면 방송실에 숨어 있기도 했고, 달리기는 늘 왜 1등, 2등, 3등 도장만 찍어주는 건지…. 그 도장이 뭐라고 팔목에 늘 그 도장 한번 받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던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중학교 때 발야구 시간이 되면 같은 반 여자 친구들은 공도 멀리 차서 친구들의 환호를 얻는데, 내 차례만 되면 움츠러들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그 마음. 공 잘 차는 친구들이 왜 이리도 승리자 같고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운동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제일 못하는 것 중 하나였는데 커서도마찬가지였다. 여름이 되면 서핑에 겨울이 되면 스키나 보드를 타는 이들이 참 많은데 마음은 굴뚝같지만 늘 못하는 걸 알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남들은 플라잉 요가, 핫 요가, 필라테스, 댄스, 수영도 배우는데 전혀 하고 싶지 않았고 해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도 다음 생애 다시 태어난다면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은 춤 잘 추는 사람, 운동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워낙 마른 체질이었고 많이 먹어도 찌지 않았기에 미용을 위해서도 운동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사람들이 왜 운동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나이가 드니 정말 체질이 바뀌었는지 살이 갑자기 찌기 시작했고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어떤 일을 하든지 원동력이 되어줄 텐데 체력이 안 되니 모든 일에 의욕이 사라졌기에 더더욱 필요했다. 게다가 가끔 허리가 아플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그 강도가 심했다. 바닥에 있는 물건을 주우려고 해도 허리만 아픈 게 아니라 다리까지 통증이 생겼고 세수를 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것조차 안 되니 내 모습이 한심했고 모든 것들에 대한 의욕이 사라졌다.
매번 한 달 지나면 괜찮아지기에 참다가 이번엔 정말 고쳐야지 싶어서 정형외과에 갔다. 의사선생님이 엄청 아팠을 텐데 왜 이제야 왔냐며 치료하자고 하셨다. 하루는 무통주사, 또 하루는 고주파치료. 인터넷후기를 찾아보고 갔어야했다. 무통 주사는 주사를 맞기도 전에 휴지를 챙겨주셨을때 눈치챘어야했다. 고주파 치료는 전기고문받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너무 아팠다. 마지막은 도수치료던데, 결국은 코어 힘을 기르는 운동만이 살길임을 알았고 끝까지 치료받지 않고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운동을 하면 좋지? 하던 와중에 친구가 계속 만보 걷기를 하고 인스타에 인증을 하고 있었다. ‘만보 걷기쯤이야’라며 만보 걷기를 우습게 보고 시작한 그 날. 그날은 허리 대신 다리가 너무 아팠고, 허리가 아픈 것도 잊고 잠을 잤다. 고통을 고통으로 잊게 만드는 그런 운동이 만보 걷기랄까?
그날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만보 걷기를 하였다. 장마라고 비가 와서 하루 쉬어볼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어김없이 운동 갈 시간에는 비가 그쳤고, 마치 운동하라는 계시처럼 내 몸을 이끌었다.
내가 늘 운동하는 코스는 정해져 있다. 그 길에서 느끼는 것 모든 것들이 좋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이 라는 노래의 제목처럼 그렇게 모든 순간이 날 설레게 했다. 한동안 나는 만나는 모든 것들이 다 짜증 날 정도로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크게 통화하지? 지만 있어?”
또각또각 구두 소리, 질질 끄는 슬리퍼 소리 하나하나 짜증 났고깔깔대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뭐가 저리 좋을까?” 나는 이렇게 짜증이 나는데 라며 짜증을 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나는 이렇게 상황이 안 좋은데 라는 생각이 부정적인 나를 만들었고 그 우울함은 정말 끝이 없을 거 같아서 나를 더 무기력하고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반년을 보냈다.
“마음속의 생각이 그대를 만들고 미래의 모습을 만들고 기쁨을 만들기도 슬픔을 만들기도 한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해도 현실로 나타난다. 이 세상은 그대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제임스 앨런-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부정적인 생각만 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상황만을 만들었고 부정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보니 너무 지쳐서 내 감정에 이끌려 다니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나를 들여다보고 또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갖게 되니 나아졌고 운동을 하다 보니 활기가 생겼고 목표가 생겼다. 좋은 생각만 하니 모든 것들이 다 좋아 보이고 설렜다.
밤에 공원을 걷다 보니 낮에는 온통 무슨 색인지, 무슨 나무지? 어떻게 생겼지? 라며 시각적으로 눈이 바쁘다면, 밤에는 향기를 느끼며 길을 걷는다. 태어날 때부터 후각이 예민하다 보니 다른 이에 비해 조금 더 냄새에 예민한 편이다.
자귀나무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를 지나 하얀색 나무껍질이 예쁜 아주 큰 자작나무길을 지나면 가장 좋아하는 길이 나온다. 팔이 늘어진 것 같은 모양의 독일가문비나무 옆에 하트 잎으로 올망졸망 가득한 계수나무가 또 한편에 있는 그 길을 가장 좋아한다. 계수나무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은 어떤 향수로도 만들 수 없지 않을까 싶게 달콤하다. 향수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그 자연의 향기가 퇴색되지 않을까? 더 오래 머물고 싶지만 그렇게 6바퀴를 도는 코스이기 때문에 지나친다. 보라색 맥문동이 피어있는 길을 지나면 가장 뛰기 좋은 길이 있다. 내리막길인데 이 길에선 시원한 바람과 풀 내음을 가득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여름밤에 듣는 귀뚜라미 소리는 조금 더 특별하다. 그래서 일부러 이 길에서는 걷지 않고 뛴다.
뛰다 보면 숨이 가빠오는데 그마저도 기분이 좋다.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그 사람보다 잘돼야 한다는 미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뛰기도 하고, 누군가를 이제 떠올리기 싫은데 그 기억이 아파서 뛰면 어느새 잡념들은 사라지고 오직 숨을 헉헉대는 나만 남아있고 머릿속이 상쾌해진다.
요즘 너무나도 핫한 mbti성격 유형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나의 유형은 E유형이다. 외부로 관심과 에너지가 향해있기 때문에 나에 대해 놓치고 산 부분들이 참 많다. 게다가 배려하고 타인의 기분과 감정에 예민한 사람이기에 나를 조금 더 의식적으로 챙기지 않았고 관계에 예민하고 사람에 예민했기에 내게 요 며칠 사이 벌어진 일들이 나는 조금 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제 나는 무기력하거나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다. 또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그런 감정 역시 부정적인 감정이기보다는 내가 느끼는 또 하나의 감정이기에 나를 조금 더 들여다봐 주고 그 감정이 흘러 지나갈 수 있도록 나는 또 뛸 것이다. 그런 순간순간에 나를 만나는 운동이 나는 참 좋고 그렇게 싫어하던 운동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내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