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고 싶다는 마음

그 감정에는, 분명한 이름이 있었다

by 한잎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창밖만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지난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 한 문장을 말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늘 입던 바지가 헐렁해졌다.

식사 대신 걷기를 선택했던 지난 한 달이었다.


그날은, 오랜만의 약속이었다.

친구가 아닌 선배였다.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비슷한 경험을 가진,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늘, 선배를 만났다.


역에서 만나, 잘 지냈냐는 인사를 주고받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어느 브랜드 옷이냐고,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고.

그러다 익숙한 질문이 나왔다.


“부모님은 괜찮으시니?”


순간 놀랐다. 답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선배가 묻는 안부에 ‘뭐 똑같이 지내시죠 ‘라고 말하던 나는,

오늘은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저녁은 우연히 발견한 카츠 가게에서 먹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창밖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난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정확히 어떤 문장으로 이야기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처음 입에 담는 순간은 너무 낯설었다.

한 달 가까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왜 부고 문자 안 보냈어?

네가 편하자고 안 돌린 거야. 위로받아야 해.”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나는 위로받고 싶었던 거구나.

지금까지 위로받고 싶다는 마음을 인식한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힘들거나 이별을 겪었을 때조차도.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 감정에는 분명한 이름이 있었다.

나는 단지, 그 이름을 몰랐을 뿐이었다.


‘위로받고 싶다’는 마음.


처음으로 감정에 이름표를 붙일 수 있었다.


선배는, 진작 이야기했으면 더 빨리 만났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보통은 선배가 먼저 연락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내가 먼저 만났다.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그게 이상했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는 괜찮지 않았다.

늦게 겪었으면 좋았을 감정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지금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어쩌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녁을 마치고, 선배가 말했다.


“케이크 먹어야 해.”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고,

케이크는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케이크가 내게 다른 의미로 남기 시작한 게.


커피와 케이크를 앞에 두고,

복귀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회사에 복귀했는데 일이 더 늘었다고.

어느 정도 조정되었다면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인력 배치가 바뀌면서, 익숙했던 환경도 함께 사라졌다고.

익숙한 루틴에 기대면서 버텨보고 싶었는데,

그게 어렵다고 말했다.


선배는 말했다.


“그만두고, 한 달은 쉬어.

바로 일 구할 자신 없으면, 무급휴직 해.

안 해준다고 하면 퇴사하고.

한 달은 쉬어야 해.”


늘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던 선배의 입에서,

쉬라는 말이 나왔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이번에도 ‘경기 안 좋으니까 다녀야지’ 하는 답을 들을 줄 알았다.

그 말은 내게 쉼을 허락하는 것 같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회사를 버티고, 경제적인 계산을 하고,

그 사이 이직을 계획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회복의 시기를 놓치기 전에 나를 챙길 시간.

선배의 말은 조언이 아니었다.


내가 여태 미뤄왔던 결정을

나 자신에게 허락하게 만든 문장이었다.


“무급휴가 얘기하려면,

퇴사를 걸어야 하는 거네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선배는 자기도 그때 쉬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절대로 그런 말 하지 않을 사람인데, 쉼을 말한다.

그 말을 기다렸던 것 같다.

망설이고 있던 결심이, 움직였다.


“운동해. 나도 그때 크로스핏 했어.

마음이 힘든데, 몸이 힘드니까 좀 낫더라고.”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예전에 선배가 만날 때마다

온몸이 아프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까지 힘든 운동을 왜 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안다.


선배도,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때 그렇게 힘들었는지,

나는 몰랐다. 그저 한 번의 말로 지나쳤다.

상실의 고통을 모르던 시기였다.


“잊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

3년이 지나도 생각나더라고.

가족 드라마는 아직도 못 봐.

명절이나 제사 땐 더 많이 생각나.”


한 달이면 감정이 정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그대로였다.

슬퍼해도 된다는 말.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

지금 슬퍼도 괜찮다는 말이 그날,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위로받고 싶었다.

그 마음을 인정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누군가의 위로를 기다리는 대신,

내 삶을 내가 위로하고 싶었다.


일상에 돌아온 척했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단지 전보다 흐르지 않을 뿐.


아직 괜찮지 않았지만,

나도 이제는, 괜찮아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결심했다.

keyword
이전 04화내 마음은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