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졌던 마음을, 다시 켜보려 했다
출근길 버스.
창밖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서서 가는 버스 안, 흔들리지 않으려 손잡이를 쥐었지만
쏟아지는 후회들이 손끝까지 무겁게 내려앉았다.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과 마주쳐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고개만 끄덕일 뿐, 시선을 맞추는 일조차 버거웠다.
가볍게 건네는 인사도 피했고, 목소리는 자꾸 안으로 숨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화면은 켜졌지만, 내 마음은 아직 켜지지 않은 상태였다.
할 일은 가득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복귀 후, 팀장님은 말이 없으셨다.
보고서에도, 업무 분배에서도
내 이름은 빠져 있었다.
필요한 업무 요청도 오지 않았다.
말 없는 배려였다.
그 배려에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힘이 없었다.
감사하다는 눈인사도,
메신저에 문장을 적어 내릴 기운도 없었다.
몸도 마음도, 고장 나 있었다.
메일을 쓰려다 커서만 오래 바라봤다.
몇 줄을 써보다가 지웠고, 다시 쓰려다 또 멈췄다.
생각이 정지되었다.
결국, 잘못된 내용을 보낸 뒤에야, 알아차렸다.
정정 메일을 썼다. 팀장님과 팀원들이 모두 참조된 메일이었다.
내 상태를 숨길 수 없었다.
그날, 노트북이 꺼졌다.
자동 복구 준비 중
복귀 이후, 이상하게 자주 멈췄다.
처음엔 열 때문이라 생각했다.
무거운 작업 탓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열이 나지 않아도 꺼졌고,
작은 파일 하나를 열어도 멈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꺼졌다.
그 모습이, 꼭 나 같았다.
문제가 없다는데도,
기능하지 않았다.
버티려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노트북을 덮고,
열이 나는 부위에 손을 올렸다.
숨길 수 없는 한숨이 나왔다.
정작 중요한 일들을 처리할 때마다 꺼졌다.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느꼈을까.
다시 켜질 것 같다가도 꺼지고,
괜찮은 듯하다가도 꺼지고,
한 번 꺼지면, 복구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도 그랬다.
행사 상품을 결정해야 하는 날.
데이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판단은 흐려졌다.
결정은 했지만, 확신은 할 수 없었다.
그냥, 마감 시간에 맞춰 넘겼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며칠 뒤, 팀장님이 말했다.
“이 상품, 경쟁력이 약한 것 같은데...”
사실이었고, 나도 더 보태지 않았다.
사온 커피의 산뜻함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나온 질문.
“네 마음은… 반반이야?”
“… 잘 모르겠어요.”
무엇이 힘든 건지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내가 뭘 느끼고 있는지도,
이젠 잘 모르겠다.
덮고 지나가다 보니,
생각이 굳어져버린 것 같았다.
“예전에 나도 회사 때문에 그만뒀는데,
그 뒤로는 누구 하고도 말하기 싫더라고.”
팀장님의 말이었다.
퇴사가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 말마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지금의 일상을 더 유지하고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루를 함께 보내며 일상을 회복하고 싶었지만,
그 하루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회의가 끝난 후,
화장실로 향했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옥상으로 향했다.
밖을 나가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났다.
거리엔 사람들, 소리, 움직임이 있었지만, 나는 그저 멈춰있었다.
그게 들키는 게 싫어서, 더 높은 곳으로 숨었다.
옥상에선, 멀리 있는 것들만 바라봤다.
가까운 것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의 일상이,
과연 나를 지탱해 줄 수 있을까.
조금만 더 빨리 회사를 내려놨더라면,
엄마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까.
후회는 덜했을까.
왜 포기하지 못했을까.
현실이 무서워서였을까.
아니면 그 이후의 공백이 두려워서였을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생각할 힘이 없었다.
판단은, 기능이 정상일 때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의 나는, 판단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사람들 속에서는
일하고 있는 척, 지나가는 감정인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노트북처럼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문제는,
그 노트북도, 나도
이제는 켜지지 않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노트북을 켰다.
메일을 작성했고, 보고서를 열었다.
엉망이었고, 오류투성이었지만
그래도 움직이려 했다.
아직 괜찮지 않았지만,
나는 고장 난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