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꺼낼 수 없던 날

그날, 나는 애도하지 못했다

by 한잎

서울 집엔 혼자 남았다.

막내 동생은 본가로 내려갔다.

엄마를 가장 오래 곁에서 지켜봤던 아빠와 둘째 곁으로.

엄마가 머무르던 거실의 빈자리는,

곁에서 함께한 사람들에게 가장 클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는 게 괜찮다고 말하던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누군가가 있어줬으면 했다.


막내와 함께 살던 시기에도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소리를 내는 것조차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서로 각자의 공간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함께 있다는 감각은 분명히 있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 믿었다.

혼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로웠다.


낮에는 북적이는 대화들 속에서 감정을 붙잡고 있었지만,

적막한 집 안에서는 무너지는데 단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공허한 마음이 밀려와, 나를 덮쳤다.


아무 일도, 아무 이유도 없었다.

메마른 줄 알았던 눈에서, 감정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지 일주일.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그냥 흘려보냈다.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본가로 내려가신 뒤에는 왜 전화 한 통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하루 한 시간은 꼭 연락했던 사이였는데.


엄마가 걱정할까 봐, 말을 삼켰다.

회사에서의 피로는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힘들다는 말조차 꺼내고 싶지 않았다.


복귀 이튿날, 그저 일만 생각했다.

출근은 했지만, 여전히 나는 그날에 멈춰 있었다.

일을 빠르게 마치고 연차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남은 힘이 빠르게 소진되었다.


회의 시간이 다가왔다.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회의였다.

내심, 이번만큼은 제외되기를 바랐다.

아직은 사람을 마주 보며 표정 관리할 여유가 없었다.


“회의 가실 시간입니다.”


그 자리는 당연히 내가 가야 하는 것처럼 주어졌다.


“꼭 제가 가야 하나요?”

“네.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 물었고,

답도 두 번 다 같았다.

이 질문조차 내가 먼저 말해야만 한다는 게, 나를 더 무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표현도 수용되지 않았다.


노트북을 들던 손 끝에 힘이 들어갔다.

마우스가 내동댕이쳐지며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마음도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바닥에 흩어졌다.


화가 났다.

이번 주에 해야 할 서류를 책상 위로 던졌다.

내 감정을, 검열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옆자리 동료가 움찔했다.

내 뒤에는 다른 부서의 윗분도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회의실까지 걷는 내내, 내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 속 얼굴에는, 화가 가득했다,

표정을 숨기로 해도, 얼굴 위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회의실 문을 열자마자, 그 얼굴로 그대로 들어갔다.


회의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내 안에서는 감정들이 터지고 있었다.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감정을 누른 척 고개를 들어보기도 했지만,

눈은 곧바로 노트북 화면으로 다시 내려앉았다.


회의 내내, 여러 사람들의 질문이 오갔는지만, 나는 침묵했다.

입을 열면 떨림이 전해질 것만 같았다. 그저 버티는 중이었다.


“회의 자료 못 받으셨어요?”

대답할 힘도 없었다.

어깨로 이어지는 팔 한쪽을 움켜쥐며 화면만 쳐다봤다.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아니, 마음속 깊은 감정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무작정 회사 밖으로 나왔다.

회의시작 후 두 시간이 지날 즈음, 눈물이 터졌다.

점심시간은 이미 줄어들어 있었고,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부족했다.

하늘만 보며 걸었다.

감정을 멈추고 싶었다.


길가에서 마주친 동료에게 고개만 끄덕였다.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다시 걸었다.


나를 정작 챙겨야 할 우리 팀 동료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잘 마치고 돌아왔냐고,

커피라도 한 잔 같이 하자고,

업무 처리하느라 고생하셨다고,

그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한 달 뒤, 그 사람이 말했다.

“요즘 내가 너무 힘들었어요. “

그날 이후, 나는 그 어떤 말도 귀에 담고 싶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도 일을 챙겨 왔고,

복귀한 지금조차도 밀린 일들에 허덕였다.

제대로 된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애도라는 단어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엄마를 떠올리고 싶어도 회사 안에서는 꺼낼 수 없었다.

회사 밖으로 나가서야 그 슬픔을 꺼낼 수 있었다.


애도해야 할 시기,

나는 그 마음을 꺼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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