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냄새를 지우던 그날에 멈춰 있었다
향수를 꺼냈다.
계셨던 자리의 냄새가,
그날따라 더 역하게 느껴졌다.
그 자리를 지우고 싶었다.
지우지 않으면 제대로 쉬질 못할 것 같았다.
수십 번을 뿌렸다.
냉장고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며칠 전, 엄마가 여행길에 몇 입 베어 둔 빵이 작은 상자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상태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엄마가 자기 입맛이 아니라며 말했는데.
차라리 좋아하시던 카스테라나 생크림 케이크로 사다 드릴 걸.
그러면 남기지 않았을 텐데.
빵 하나일 뿐인데,
내 무심함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그 시기,
회사도 힘들었지만,
집마저도 버거웠다.
엄마는 일주일 전까지 서울집에 계셨다.
몸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셔서
밤이면 거실에서 지린내가 풍기곤 했다.
엄마가 내려가신 직후,
아무리 걸레질을 하고 환기를 해도
침대 파레트에 벤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결국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아,
향수를 꺼내 수십 번을 뿌렸다.
그때는, 빨리 치우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이미 지쳐 있었고,
청소하면서 더 빠르게 지쳐갔다.
냄새는 원래도 싫었지만, 그날은 더 역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향수를 꺼냈다.
평소에는 청소기만 사용하던 내가,
그날은 파레트를 한 켠으로 옮기며,
문 틈 사이까지 물걸레를 밀어 넣었다.
바닥 구석구석을 손으로 걸레질하며,
온 집 안을 그렇게 닦아냈다.
동생에게는 대청소를 매번 해야 해서
귀찮고, 짜증 난다고,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본가로 내려가신 당일,
이상하게도 자꾸만 치우고 싶었다.
자주 앉으시던 자리에 있던 각종 이불 패드와 베갯잇을 세탁하며,
마치 엄마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지워댔다.
향도, 누워계시던 자리도.
하나씩 치우고 나니,
그 자리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할아버지에게서 나는 것만 같던,
그 싫은 향이 그리워졌다.
체향도, 누린내도,
엄마마저도,
모두 사라지고 나니,
내 눈앞에 남은 건, 향수뿐이었다.
가장 먼저 지워버린 건,
어디에도 남지 않은 그 냄새였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는 그 모든 흔적을,
가장 먼저 치워버린 건 나였다는 걸.
엄마가 있던 매트 근처에서
숨을 들이쉬어봐도 더는 향이 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잠을 청해봐도 남은 건 없었다.
꿈에서도 그 향을 맡을 순 없었다.
사람들이 그랬다.
누군가 떠나면 그렇게 청소를 하게 된다고.
나는 엄마가 떠나기도 전에, 그렇게 모든 흔적을 없앴다.
돌아가신 직후 그 며칠은, 자꾸 뭔가를 닦아냈다.
엄마가 매번 하시던,
청소하라는 잔소리가 너무 그리워서,
다시 오실 것만 같아서,
그렇게 그 자리들을 다른 마음으로 지워내고 있었다.
월요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이라도 다시 시작하면,
지금 마음이 조금은 가시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뒤덮인 향수 냄새로 가득했다.
체향을 떠올려봐도 잔향이 사라지지 않았다.
더는 기억할 수 없었다.
그제야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에 늘 듣던 음악이 사라졌다.
재즈가 섞인 그 노래만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
그날은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모든 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졌다.
몸이 무거웠다.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는데도, 준비는 늦어졌다.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을 피하고 싶었다. 눈빛도, 숨소리도.
무언가 닿는 감각 자체가 버거웠다.
버스 안은 조용했고, 이어폰 너머로 음악이 새어 나왔다.
창밖을 보며, 평소보다 소리를 더 키웠다.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회사 가서 슬픈 척해야 하는 거 아니야?”
출근 전날, 친한 동생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때까진 나도 괜찮은 줄 알았다.
본가에 있을 땐 가족들과 함께 웃었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밖에 나가기도 했다.
사람들과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도 했다.
하지만 그날 아침, 창밖을 바라보는데 문득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복귀 첫날이었다.
출근길에 평소 좋아하던 팀 선배를 마주쳤다.
원래 같으면 웃으며 인사했을 텐데, 그날은 인사마저 피하고 싶었다.
선배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쉬는 동안 연락 많이 받았어요? 보통 그 시기에는 조심하던데…”
나는 그냥, “신경 안 썼어요”라고 답했다.
복귀 전, 장례식장에서도 회사 동료로부터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이벤트 준비부터 문의까지, 옆자리 사람에게 물어도 될 질문들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10분 안에 답장을 반복했다.
신경을 끄고 싶다가도, 계속 폰을 들여다봤다.
별다른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감정적으로 크게 다가오진 않았다.
그날도 익숙한 일상처럼 지나갔다.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매일 앉던 의자, 매일 보던 모니터.
메일함을 열자 쏟아지는 메일들.
마우스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숨을 내쉬며, 한숨도 같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타 부서 동료가 내 자리로 다가왔다.
“커피 한잔 괜찮아요?”
그 말 한마디에 조금 안심이 됐다.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종종 커피를 마시던 팀원과 함께 근처 카페로 향했다.
“이렇게 빨리 복귀할 줄 몰랐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도 좀 더 쉬다 올 걸 그랬다.
사실 나도 연차를 붙여 쓴다는 생각을 못 했고,
일이 쌓여 있어서 바로 쉴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이,
처음으로 숨을 쉴 수 있게 해 줬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조금은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아침부터 이미 마음은 가라앉고 있었다.
노트북을 켜고, 메일을 확인하고, 문서를 열었다 닫았다.
기획안을 열었지만 손이 따라가지 않았다.
디자인 요청 문구를 쓰다 결국 기존 문서로 대체했다.
이전에 결과물을 조금씩 바꾸는 정도로 하루를 버텼다.
그날도 그렇게, 회사에 복귀한 나는 여전히 모니터 앞에 있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치고 있었지만, 마음은 어딘가 비어 있었다.
며칠 전,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상 중에도 문의를 처리했고,
복귀 후엔 밀린 업무가 더 쌓여 있었다.
예전부터 퇴사를 고민했던 회사였지만,
그런 회사라도 있어야 내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가시기 전과 같은 삶을 살고 싶었으니까.
일이라도 있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루를 버텨내기엔, 그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복귀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내 몸 하나뿐이었다.
메일함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냄새를 지우던 그 순간에 정지되어 있었다.
복귀는 몸만의 일이 아니었다.
마음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그 자리에 남은 건, 향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