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말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제는 더는 미루지 않기로 했다

by 한잎

복귀하고도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멈추지 못하는 열차였다.

선로를 따라 관성으로, 앞으로만 달려갔다.

의지를 넣어도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질 못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집중은 흐트러졌고,

능률은 오르지 않았다.

정상 상태에서도 연료가 떨어져 있던 내가,

이제는 그마저도 바닥나 있었다.

복귀 이후의 나는, 이미 선로에서 이탈한 열차였다.


그날도 겨우 출근한 아침이었다.

노트북을 켜고, 잠깐 커피 한잔 사러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선임은 나를 멈춰 세우며 말을 걸었다.


“데이터 작성해 주세요.”


복귀 이후 반복되던 요청이었다.

전에 했던 일도 아니었고, 본래 내 업무도 아니었다.

평소라면 죄송하다고 넘겼을 일인데,

그날은 달랐다.


“복귀 전에도 안 했던 일을

왜 지시하시는 거예요?”


지난날 연료가 없어 말하지 못했던,

마음속 떨림이 입 밖으로 나왔다.

이 부탁을 받아들이면,

앞으로도 모든 걸 수락해야 할 것 같았다.


모두가 착석해 있는 자리,

조용한 사무실에 내 목소리만 울렸다.


“쉬운 일이면, 직접 하시면 되잖아요,”

7년이 넘는 회사 생활동안,

내가 꺼내본 적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그동안 버티며 눌러왔던 감정이,

그 순간 완전히 무너졌다.

그 요청 하나가 마지막 선을 건드린 일이었고,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내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결국 아무 의미 없는 숫자들을 입력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무급휴가와 퇴사 사이를 오갔다.


일주일이라는 기간도 기다려주지 못했던 시간을 떠올리자,

무급휴가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내가 잠깐 쉬면, 남겨진 일은 오롯이 나에게 돌아왔다.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복귀 후 몰아쳐야 했던 일들,

줄지 않고 쌓여가는 책임들,

바뀌지 않는 환경들.

그 모든 게 무급휴가 이후를 더 막막하게 만들었다.


그날, 오랜만에 이전 회사 팀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결국, 회사를 그만둘 것 같다고 말을 꺼냈다.


“우리 회사 오려면 언제든 이야기해”


그 한마디에, 무너졌다.

나는 나를 못 믿겠는데,

누군가는 여전히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 믿어주었다.

내가 받고 싶어 했던 위로였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요한 결정 전에는 꼭 엄마에게 먼저 알렸는데, 이번엔 달랐다.

엄마가 없는 자리에서,

스스로 결정한 순간이었다.


“나 회사, 못 다닐 것 같아. 그만둘게.”

예전이라면 반대했을 아빠가,

이번에는 듣고만 계셨다.


“회사에는 일찍 말하는 게 좋겠다.”

더 묻지 않으셨다.

그 대답에, 갑자기 감정이 밀려왔다.

말없이 전해지는 이해였다.

위로받았다.


엄마가 떠난 이후,

혼자서 내린 첫 결정이었다.

복귀 이후 계속 흔들리기만 했던 내가,

처음으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퇴근 전, 팀장님에게 말했다.


“퇴사하려고 합니다.... 다니려고 했는데, 못 다니겠어요.”


팀장님은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말을 길게 잇지는 못했다.

감정을 숨기는 데도 연료가 필요했다.

그 연료마저도, 이제는 바닥이었다.


마지막으로 선임에게도 직접, 마지막으로 말을 건넸다.

그 사람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담담했다.

나는 오전에 화를 낸 이유에 대해 설명했고,

사과하려고 꺼낸 이야기였지만, 돌아온 답은 기대와 달랐다.


“주마다 하기 힘들면 한 달 치를 미리 작성하는 건 어때요?”


퇴사 의사를 밝힌 자리였고,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난 후였다.

마지막까지 일을 지시하는 행동을 보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기대가 꺼졌다.


“복귀 이후에... 무슨 배려를 하셨어요?”

돌이켜보면, 배려라 부를 만한 순간은 없었다.

연차를 내도 업무는 그대로였고, 일은 늘어만 갔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구조였다.


장례 기간, 내 업무를 잠시 맡았던 일을 두고 그는 배려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은 다른 이에게 넘겨졌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오늘 결심에 확신을 더했다.


사실, 복귀 전부터 이미 고장 나 있었다.

복귀 이후엔 관성으로조차 달릴 힘이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는 기능할 수 없었다.


그날의 일은, 작은 부탁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내가 붙잡고 있던 마지막 호흡기마저

떼어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무급휴가 대신, 떠나기로 했다.

그건 더는 내 마음을 미루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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