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버린 마지막 연결
주말 오후.
커피를 마시며 거실에 앉아있던 시간이었다.
동생이 전화를 받더니,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바꿔 받은 휴대폰 너머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내려와..”
“왜? 엄마 다쳤어?”
“……엄마 죽었어. 집으로 와.”
말문이 막혔다.
“무슨 말이야... 진짜야? 왜...”
“........ 천천히 와도 돼.”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아빠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톤이었다.
하루 전만 해도 야구 이야기로 웃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낯설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어제 전화했어야 했는데.’
처음 든 생각.
그날 밤, 아빠와 통화한 뒤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까 망설이다 그냥 넘겼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퇴근길이나 마트를 갈 때면 습관처럼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 괜히 전화를 걸던 딸이었다.
그런 내가,
마지막 일주일 동안은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계속 떠밀렸다.
일은 쏟아졌고,
도움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건 또 다른 일들이었다.
조금만 더 힘내보자고, 잘하고 있다고,
그런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하지만 듣지 못했다.
점점 나는 무력해졌고,
사람들과 엄마에게서도 멀어지고 싶었다.
그 시기, 엄마는 우리 집에 계셨다.
어깨 쪽이 아프다고 파스를 찾아 어깨에 붙여드렸다.
몸을 가누지 못하셔서
넘어지시면서 다친 상처들이 새파랗고 빨갛게 가득했다.
무수했다.
그때는 흉지는 것만 걱정했는데...
많이 아팠겠다.
엄마의 아픔도 들여다볼걸.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엄마는 매시간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나를 깨우셨다.
한밤중에도 반복됐다.
깊은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나마 있던 기운마저 빼앗겼다.
출근하기 직전에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부르셨고,
나는 짜증을 내며 엄마를 일으키곤 했다.
일과 간병이 겹치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망치고 싶다’
회사에서, 사람들한테서, 엄마에게서.
그러다 엄마가 본가로 내려가신 이후, 매일 밤 울었다.
그리고, 돌아가셨다.
왜 하필, 이 날이었을까.
왜 하필, 이 타이밍이었을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해서 돌아가신 건가.
당일이라도 연락했으면 살았을 텐데.
“너라도 연락하지 왜 그랬어… 이번 주에 왜 연락을 안 했어....”
동생을 원망했다.
상처가 될 걸 알면서도,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동생에게 했던 말이 사실은 내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매일같이 한 시간 넘어 전화를 걸던 나이기에
그 일주일은 나를 더 무너뜨렸다.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으면 되었을 텐데.
뭐가 그리 힘들었다고, 전화 한 번을 못했을까.
내가 싫었다.
그 마저도, 최근에 연락했던 통화 녹음을 지웠다.
자주 연락하니까 금방 녹음 파일 생기겠지.
수많은 녹음 파일 속 가장 최근 기록만 선택하며 휴지통에 넣었다.
완전 삭제.
통화가 길기만 하고 의미 있는 대화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 통화들은 남겨두었는데,
최근 기억들만 지워냈다.
녹음 파일 날짜에 5월만 비어 있었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을 줄 몰랐다.
정말 몰랐다.
엄마와의 마지막 추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데,
이제는 기억이 흐려져서 다시 한번 듣고 싶은데,
그 파일을 찾을 수 없었다.
나에게 화가 났다.
후회가 남아서일까,
다른 녹음 파일은 미처 다시 들을 수 없었다.
너무 쉽게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회사 출근이 걱정돼 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본가에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왜 그렇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꺼냈는지 모르겠다.
돌아가신 날에도 나는, 일을 먼저 떠올렸다.
나 자신이 질리도록 싫었다.
팀장님은 옷 잘 챙겨서 내려가라고 하셨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동생이 짐을 싸는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제야 그 문자의 의미를 이해했다.
카톡 알림이 울렸다.
배송이 도착 예정이라는 메시지였다.
짜증부터 났다. 타이밍도 최악이었다.
배송기사님에게 취소가 가능하냐고 결국 전화를 걸었다.
“........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먹지 못할 것 같은데.......
환불 안 해도 되니까... 배송하지 말아 주세요.”
기사분은 자기 일처럼, 빠르게 처리를 해주셨다.
남 모르는 타인에게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따뜻했다.
동시에 이런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동생은 훨씬 어른스러웠다.
설거지를 하고, 옷가지를 챙기고, 본가로 갈 준비를 마쳤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겨우겨우 정신을 붙들며, 버스표를 예매했다.
동생에게 예매 시간을 물어보고, 동생의 말대로 움직였다.
몇십 번을 다녔던 터미널인데도,
그 길조차 헤맸다.
몸이 기억할 줄 알았지만 힘겨운지 찾아가질 못했다.
그냥 동생이 가는 방향을 따라갔다.
그리고 전화가 울렸다.
그날 처음으로 울린, 기다렸던 전화였다.
하지만 받을 수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눈물만 흘렸다.
“날씨 좋다. 뭐 하고 있었어?”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맑은 하늘에 구름.
날씨가 좋았다.
하지만 더는 날씨가 보이지 않았다.
눈물은 차오르고,
대화를 이어나갈 힘이 없었다.
다음날 전화가 왔다면,
날씨가 좋다고 맞장구치며
가족들이랑 쉬고 있다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텐데.
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날은 유난히 전화가 많았다.
죽음을 전한 건 아버지였고,
출근을 걱정하며 연락을 했던 건 팀장님이었다.
배송을 취소하려 연락했던 기사님은 낯선 타인이었지만,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온 연락.
가장 기다렸던 전화였다.
하지만,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날에 울렸다.
그 모든 순간들 중
내가 끝내 걸지 못한 전화 하나.
그 전화만 다시는 연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