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대신 기록으로 남은, 엄마의 하루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와 마지막 통화도 없이, 그 시기를 보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우리 가족은 함께 고모댁에 다녀왔다.
아빠가 운전하셨고, 엄마는 뒷좌석에서 나와 함께 있었다.
그날따라 엄마는
평소보다 고모와 고모부랑 대화를 많이 하셨다.
“사람이 너무 많이 달라졌어. 저러면 위험해 보이는데...”
우리가 떠나기 전, 고모부가 말씀하셨다.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달라진다며,
우리 엄마의 건강 상태를 많이 걱정하셨다.
떠나기 직전,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하품 때문이라고 하셨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본인의 감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마지막 외출이었다.
지금도 한 번씩 이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와 주변 사람들의 시그널들을 놓치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자꾸
엄마가 계셨던 날들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
어떤 표정이었는지,
무슨 행동을 하셨는지.
기억을 아무리 떠올려봐도
엄마와 함께 있었던 날들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기억 대신
기록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연락하지 않은 동안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어떤 하루를 보내셨는지.
기억이 아니라, 기록으로라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엄마의 휴대폰을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쌓여있는 문자였다.
스팸, 광고, 읽지 않은 안부 인사들.
엄마는 평소에도 문자를 잘 확인하지 않으셨다.
세밀하게 근육을 사용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하나하나 입력하는 일이 버거우셨다.
6년 전 병원 예약일이 마지막 메모였다.
그 이전과 이후의 시간들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쌓여있는 알림들과 아무도 읽지 않은 메시지들.
한 번씩 엄마의 핸드폰을 살펴보며,
안부 인사들에 답을 해드렸다면,
엄마와 연락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텐데.
하지만 그 누구도 그 기록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나 역시도.
문득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
넷플릭스 기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함께 보자고 했던 예능이 10화까지 재생되어 있었다.
서울에 계셨을 때 같이 볼 수 있었는데, 시간이 늦어 보지 못했었다.
그 시리즈를 혼자 본 걸 확인하는 순간, 자꾸 후회가 밀려왔다.
그 시기에라도 봤으면 연락을 더 자주 했을 텐데.
지금까지도 나는, 그 프로그램을 못 보고 있다.
그 시기에 엄마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더 알 수 있을까 싶어,
배터리 사용 기록을 열었다.
게임 사용 시간이 가장 많았다.
퍼즐, 블록 게임.
매번 옆에서 보면 항상 게임을 하고 계셨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한데,
이젠 볼 수 없다는 게 더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엄마는 그 시기,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계셨다.
살고 있는 사람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날의 기록도 열었다.
화면이 마지막으로 꺼진 시간.
엄마가 깨어 있었던 마지막 흔적.
그 시각, 나는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연락만 했더라도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하루를 시작하셨고,
나는 그것도 모른 채 하루를 흘려보냈다.
그 데이터가 정확하다고 볼 순 없었다.
주로 태블릿을 사용하셨기에, 확신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정말 평범한 하루였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말았다.
사실 그날,
태블릿 기록과 함께 행적을 더 맞춰보려고 했다.
일어나서는 어떤 행동을 하셨는지,
점심에는 어떤 걸 보고 계셨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은 얼마나 되었는지를.
내가 모르는 엄마의 하루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더는 들여다볼 수 없었다.
지금 봤던 기록들조차 언젠가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록들이 말하는 엄마의 마지막을 감당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로 했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혼자서 궁금해하고, 혼자서 멈췄다.
엄마는 그 시기,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하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살아있는 두 사람이 서로 닿지 못한 하루였다.
그 하루는 지나갔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그날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