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를 들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셨다
한 달이라는 시간.
사람들에게서 위로도, 상처도 많이 받은 시기였다.
“이젠 한 달 지났으니까, 다들 네 상황 잊었을 거야.”
친구가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이 맞았다.
나 역시도 주변 사람들 보고 괜찮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겪지 않았기에, 그냥 스쳐 지나갔다.
위로 뒤에도 따라오는 또 다른 말들은 내 마음을 다시 가라앉게 했다.
철없는 결정을 내린 걸까 하고 자책도 들었다.
그래도, 그런 말들 사이에서도 위로는 분명히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대화하려 노력했다.
별 다른 이야기 아니어도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를 진짜로 일으켜 세우진 못했다.
사람들과 웃고 약속을 잡아도,
나는 왜인지 여전히 멈춰 있는 느낌이었다.
회사에서는 나는 기능하지 못했다.
여러 웹사이트 창과 엑셀 파일들.
시선은 모니터를 향했지만, 생각은 마비되었다.
파일을 열면 글자를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무엇을 쓰는지도 모르고 문구를 쓰기 바빴다.
다시 읽으면 말이 되지 않는 표현이었다.
그마저도 작업하던 엑셀 파일이 저장되지 않았다.
임시 저장된 파일 목록을 클릭해도,
내가 쓴 글들은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완성되지 않은 파일들이 늘어가듯,
제대로 끝내지 못한 하루가 지나갔다.
미완성에 익숙해졌다.
가족보다 먼저였던 일.
돌아가신 날에도 업무 공백을 먼저 생각했었다.
하지만 복귀 후에 나는, 제대로 일할 수 없었다.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집중하려 노력해도 집중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실수는 잦아졌다.
내 세계에서 나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게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이 정도 시간이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기능하지 못했다.
그렇게 망가진 하루를 반복하던 어느 날,
문득, 잊고 있던 엄마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차 안에서 엄마가 좋아하던 가수의 노래가 들렸다.
평상시라면 익숙한 노래라고 넘겼을 텐데,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는지 끄고 싶었다.
그 가수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었다.
그날 엄마는 기운이 없어 말을 많이 하지 않으셨다.
그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대화를 더 이어가지 않았던 내가
지금에서야 후회가 됐다.
또 한 번은, 산불 뉴스로 가득했던 날이었다.
서울에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었는데,
그날 엄마는 서울로 올라오지 않으셨다.
“마음 불편해서 집에 있으려고.”
그때도 통화 속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눈물이 맺혀 있었던 것 같았다.
엄마는 감정을 숨기지 않던 사람이었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슬픔에도 마음을 내어주는 분이었다.
슬픔을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며칠 전, 외할머니의 다리가 부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는 요양원과 가깝다는 이유로 막내를 데리고 곧장 가셨다.
장례식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본인이 챙김 받아야 하는 시기에, 누군가를 또다시 챙기고 계셨다.
이모들은 내려오지 않았다.
아빠는 주변에 이야기 않고 바로 행동하신 듯했다.
기력이 없어 더는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하던 역할을 아빠가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아빠는 사망 관련 서류를 잔뜩 들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이모에게 전달해줘야 한다며 말씀하셨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지점에 방문해 추가 서류 여부까지 확인하셨다.
그래서일까.
이모와 이모부로부터 술을 잔뜩 얻어마셨다.
다음날에도, 이모는 안부를 건네며
아빠에게 자세한 보험 처리 관련 질문을 하셨다.
누구보다 챙김 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아빠는 계속 누군가를 챙기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답답함이 먼저 들었다.
왜 아빠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건지,
왜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지.
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은 만큼,
목 안 쪽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빠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아빠의 부은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아빠는 기운이 없어 식사도 거의 못 하셨다.
엄마의 죽음이 본인 탓일 수 있다고 자책하고 계셨다.
그 이후, 아빠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셨다.
엄마를 향한 마음을,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행동으로 표현하고 계셨다.
아빠의 애도 방식이었다.
그 마음이 느껴져서, 더 말할 수 없었다.
그 감정들을 조금씩 따라가려 애쓰는 와중에도
일상은 여전히 벅찼다.
회의에 앉아 있어도,
데이터를 봐도,
아무것도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나는,
그저 존재하는 사람이기만 했다.
그게 괴로웠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직장인으로서의 의무조차 수행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감정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아빠는 그 속에서도 나아가고 있었다.
언제쯤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나도 누군가를 위해 움직일 수 있을까.
아빠와 엄마 사이 어딘가에서 멈춰 있었다.
몸도 멈췄고 감정마저 멈췄다.
무기력했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게 나였다.
이런 나인데, 그날은 참 이상했다.
아빠를 닮아서일까.
이모에게 직접 방문해야 하는 지점들을 알려주며
주소가 적혀 있는 사진을 보냈다.
답답했던 아빠의 행동이
나에게서도 보였다.
싫어해야 했을까.
어쩌면 다시 행동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빠의 방식으로,
엄마의 마음으로.
그게 내 모습이었다.
아직은 서툴지만, 나도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