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루틴의 시작
밥보다 걷는 일이 중요했다.
하루를 버티는데 필요한 건 말보다 걸음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걷기 시작했다.
점심도 거르고, 회사 주변을 걷기만 했다.
걸어야만 했다.
회사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나만의 루틴이 새로 생겼다.
저녁이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그동안 내 시선에 들어오지 않았던 풍경들이 보인다.
어느새 피어있는 장미들,
길가에 따라 서 있는 나무들,
늦은 시간에도 운동하는 사람들.
살아내고 있었다.
한 시간 넘게 걷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걸으면서 무언가 더 생각할 힘도,
침잠할 여유도 사라졌다.
크로스핏을 했던 선배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몸이 피곤하니까 정말 감정이 멈췄다.
나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한 달 전 모습과는 달랐다.
그땐 그냥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슬픔이 기본값이었다.
버스에서도,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하다못해 길가에서도,
후회의 연속이었다.
아프다는 말 들었을 때 산책이라도 같이 자주 나갈 걸,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봐도 엄마 편 들어주면서 말해줄 걸,
평상시에 표현 많이 안 했는데 더 많이 할 걸,
좋은 순간들이 단 하나도 없었다.
감정의 기복도 기쁜 순간이 있어야 생기는 거였다.
지금은 달라졌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웃고, 피식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퇴근길에 엄마와 연락했던 생각이 나서 슬퍼지기도 한다.
감정의 진폭은 오히려 커졌지만,
전보다 짧게 스쳐갔다.
하루에 5분만, 행복하자고 생각했다.
모든 순간이 행복할 필요는 없다고.
5분만 괜찮았다면, 나머지 시간도 견딜 수 있다고.
한 달은 그렇게 지나갔다.
며칠 전부터 다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사실 계속 미루고 싶었다.
시작일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날이었다.
돌아가신 날,
엄마만을 생각하고 싶은데,
장례식에 있는 동안 굳이 그런 일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 장소가, 그 시기가, 당일의 기억을 다시 꺼내는 것 같아 짜증 났다.
평소 하던 것과는 다른 운동을 하고 싶었다.
이전과는 환경 속에서의 나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냥 가기로 했다.
정지 신청을 하려다 말았다.
굳이 애써서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도 가끔씩 떠올리는 것도 괜찮았다.
슬픔의 기억보다는 한 번씩 떠올리는 추억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지워내고 싶진 않았다.
요즘은 식물을 키워보고 싶다.
예전에는 키울 때마다 죽어서 키우기 싫었다.
하루 이틀 물을 주는 걸 깜빡하면 시들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다시 키우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게 느껴진다.
잘 키우고 싶다기보다는, 같이 잘 자라나고 싶다.
물을 주고 햇빛이 잘 드는 자리를 찾아주고,
그런 과정을 통해 식물과 함께 나도 자라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시들더라도 살아 내려고 하는 거니까.
바로 회복되지 않아도 괜찮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익숙했지만,
지금은 나를 돌보는 연습부터 다시 하고 싶다.
엄마는 종종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무심코, “나도 그래”라고 말했다.
엄마도, 나도
서로가 지쳐있던 시기였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꺼내셨던 걸까.
나는 엄마를 챙겨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가 오히려 엄마에게 기대고 있었다.
나만 엄마를 챙긴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함께 버티는 거였다.
서로 기대면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매일 식물에 물을 주며
자라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오히려 살아나는 관계였다.
식물이 조금씩 자라듯,
나도 그렇게 회복되기를 바랐다.
식물을 들여다보다가,
그동안 스쳐간 소중한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소품샵에서 엄마가 좋아하던 미니언즈 굿즈를 봤었다.
작은 피규어와 키링이 나를 붙잡았다.
내 눈은 그곳에 한참을 머물렀다.
미니언즈를 보며 항상 귀엽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났다.
어느날, 미니언즈 물병을 받고 귀엽다고
책장 한 켠에 고이 간직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집하는 거 좋아하셨는데, 그 마음을 채워드릴 생각을 못했다.
다시 눈물이 나올까 봐 시선을 피했다.
기억하려 해도,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슬펐다.
익숙한 후회가 스쳐갔지만, 이번에는 멈출 수 있었다.
자책보다는, 그래도 반가움이 먼저였다.
이제는 쌓일 추억이 없어서...
그나마 존재하는 추억이라도 붙들고 싶었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 추억이 있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걸 많이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생각난 김에 하나 살까 했지만, 더 미련 갖지 말자고 생각했다.
엄마 생각 한번 하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작은 케이크 상자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하루를 버틴 나에게 주는 격려이자, 나에게 보내는 작은 의식이었다.
누군가가 건네는 위로는 아니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돌보는 방식이 되어 있었다.
잘 버텼다고. 오늘도 살아냈다고.
이제는 케이크를 꺼내는 이 순간이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 잘 살아내고 있다고 말해주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