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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l 04. 2023

혼자 보내는 시간이 궁금해지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친구 소이가 한국에서 호주로 왔다. 소이를 만나는 일은 항상 설레는 일이기에, 어린 왕자처럼 며칠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소이를 기다렸다.

소이는 인천에서 시드니로 오는 비행기를 탔고, 나는 브리즈번에서 소이를 만나러 시드니로 향했다. 그런데 젠장 내가 탄 비행기가 결항되는 바람에 공항에서 하루 노숙을 해야 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하기로 하고 아무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소이를 만났다. 그리고 소이와의 여행은 생각보다 더 행복했다.

나는 소이를 ‘박박사’라고 부른다. 석사생이라 곧 박사 과정을 시작할 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뜻은 <쟤는 어떻게 저렇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소이의 지식은 더 빛이 났다. 지나가는 차를 볼 때면 ‘어 저거 새로 나온 차인데, 한국에서는 없는 기종이고 성능이 어쩌고저쩌고.’ 또 공동묘지를 지날 때면 ‘외국에서는 공동묘지 근처 집이 기운이 좋다고 여겨진대. 우리 집도 공동묘지가 보이는데, 나는 그걸 볼 때마다 외국인 마인드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해.’, ‘이 동네는 미국 뉴저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나무 종류가 영향을 준 거 같아. 싱가포르가 나무가 잘 자라는 이유는 어쩌고 저쩌고.’ 소이랑 다니다 보면 정말 조승연 님과 여행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내가 소이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기만의 생활 루틴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생활루틴이 분명한 사람들은 자기를 기분 좋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매 하루를 행복하고 충실히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된 후로부터 생활 루틴이 분명한 사람들을 동경한다.

소이는 일어나면 가장 먼저 이불 정리를 착착하고, 유산균을 챙겨 먹는다. 1주에 한 번 마트에서 장을 봐서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들로 행복한 식사를 하고, 산책을 자주 나간다. 외출 후에 돌아와서는 샤워를 싹 하고, 짐 정리를 완벽하게 끝낸 다음 개인 시간을 보내다 스르르 잠이 든다.​


이렇게 자기에게 꼭 맞는 루틴을 찾는 동안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언제 행복한지 수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 분명해서 나는 종종 소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상상하게 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것들을 경험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간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의 일상들이 잔뜩 와닿는다.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들을 고민하는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뭘 하고 있는지. 그 모든 이야기에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과 삶의 태도가 느껴진다.

소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모든 사람은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성장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떨어져 있었던 시간 동안 잔뜩 자란 우리. 만날 때마다 자기의 색으로 다채로워지는 소이이기에 우리의 다음 만남이 기대된다.

켜켜이 쌓인 과거 이야기나 유치한 논쟁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는 사이, 깔깔 웃다가 서로를 위로하다가 결국은 인생이 그런 거지 뭐로 끝나는 패턴의 대화를 반복하는 사이.

우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서로에게 ‘떨어져 있어도 걱정되지 않는 친구’ 혹은 ‘다음 만남이 기대되는 친구’ 그리고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친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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