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Jul 07. 2023

무계획 여행이 가져다준 선물

나는 보통 여행을 할 때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대신 자기 전에 누워 구글 맵으로 이리저리 가상 여행을 떠난다. 내 여행에서 맛있는 커피와 크로와상은 필수이니 카페와 베이커리를 좀 찾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로컬 브런치 가게도 찾아본다. 또 쇼핑을 위해 편집샵도 좀 찾아보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을 위한 피크닉 장소도 찾아본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곳에 조용히 하트를 눌러 둔다.


이렇게 눌러둔 하트는 다음날 아침을 정할 때 도움이 된다. 그날 기분에 따라먹고 싶은 음식 종류를 정하기만 하면, 내가 저장해 놓은 곳들 중 하나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무계획 여행이 시작된다.

나는 여행을 가면 최소 2만보를 걷는다. 목적지가 없어 우선 걷기 시작하는 것인데, 그렇게 걷다 보면 항상 예상치 못한 즐거움들을 발견하곤 한다. 바다가 보이는 브런치 가게를 찾아 헤매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인생 아사이볼을 만났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조용하고 잔잔한 분위기의 카페를 찾다가 취향이 비슷한 친구를 만났다. 자전거를 대여하러 갔다가 비슷한 이유로 여행을 왔다는 친구를 만나기도 했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가 가장 멋있는 선셋 포인트를 찾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무계획으로 떠나온 곳에는 항상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존재했다. 어쩌면 이건 내가 운이 좋았다기보다 무계획의 시간이 내 취향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게 도와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 기분이다. 내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순간적으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해야 한다.

‘What makes you happy?’

‘What do you want?’​


나의 행복과 즐거움을 이리도 중요하게 여기는 순간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의 마지막에는 항상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렇게 발견하게 된 것들이 오래도록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니까.

무계획이 이렇게나 완벽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무계획 여행은 내가 나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면서, 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들을 찾았다. 또 사진만 봐도 어떤 크로와상이 맛있는지 알 수 있는 안목이 생겼고, 리뷰만 읽어도 이곳이 내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장소인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무엇보다 나와 비슷한 흐름을 거쳐 이곳에 도착했을, 나의 특정 모습을 아주 많이 닮은 친구들이 생겼다.


그렇게 계획이 차지하던 공간의 부재는 나로 채워졌다

이전 15화 혼자 보내는 시간이 궁금해지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