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와 재택근무
넷플릭스를 늦게까지 보다 선잠을 자던 새벽, 택배박스를 놓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전날 저녁에 주문한 닭가슴살과 현미밥을 놓는 소리였다. 와 정말 몇시간 후에 배송이 되다니. 신기한 마음으로 택배를 들이려 문을 여니 복도에 로켓 프레시와 마켓컬리 박스가 몇 보였다. 아이스박스들도. 코로나19스러운 풍경이구나 싶다가 문득 얼마 전 했던 게임이 생각났다. 끝장난 세상에서 택배기사가 되어, 전역에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배송하고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이야기. 그냥 택배를 배송하는 이야기가 뭐 그리 재미있을까 싶지만, 그게 또 엄청나게 감동이었다. 물류가 인간 사회의 기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고, 인간과 인간의 연결이 그 자체로 감동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
2주째 재택근무를 하고, 헬스장도 휴업을 하다보니 인간과의 물리적 연결은 택배박스가 고작이다. 닭가슴살과 현미 햇반, 프로틴바, 영양제. 집 안에만 틀어박혀 그렇게 배달된 박스를 뜯었다.
사실 태어나서 먹는 것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본 적은 없다. 천성이 둔하고 게으르며, 워낙 왠만한 건 다 맛있게 먹는 터라 끼니는 항상 대충 때웠다. 트레이너가 다이어트를 시킨 이후로 먹는 것들을 하나하나 따져먹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 육체에 온전히 집중하는 느낌이 들었다. 묘하게 기분이 좋은 느낌이라 그런 스스로의 간섭을 즐겼다.
오늘 새벽은 조금 달랐다. 택배가 쌓인 굳게 닫힌 문들을 보고, 박스를 뜯어 찬장에 식량들을 채워넣는 나를 보며 문득 점점 나를 향해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내가 먹어치우는 것들로 내가 줄어드는구나. 코로나19 사태로 내 삶이 내 방으로 줄어들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난 생각보다 많이 좁아져 있었다. 분당에서 살아가는 90년생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게이. 때론 어떤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이 스스로를 좁게 만든다. 단호하게 나뉘어진 내 방의 안과 밖처럼 난 나에게 집중하며 동시에 내가 아닌 것들을 지칭했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읽은 잡지에선, 확실히 세상도 스스로를 향해 가라앉고 있다. 세계지도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국경으로, 여자대학교는 여성으로, 우리 모두는 방 안으로 좁아지고 있다. 한 기사는 흑인과 여성, 성소수자로 원을 스스로 좁히는 정체성 정치는 어떻게 실패했는지 말한다. 인류는 얼마나 유구하게 나와 너, 우리와 너희를 구분지어왔는지 말한다. 재미있는 기사다.
마스크는 어디서 사야하나 찾다 결국 50장을 주문했다. 택배를 기다리며 인스타그램을 킨다. 마스크를 공짜로 나눠주는 사람과, 의료봉사를 위해 떠나는 페북 이웃분을 보았다. 원이 넓어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결국 냉동 닭가슴살을 해동시키며 하는 생각에 불과하지만, 난 어떻게 더 넓어져야할까 고민해보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