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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가계도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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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삼 Mar 02. 2024

밤잠

<가계도> 1일차 - 7

 아직 겨울이 도착하지 않은 경주의 대릉은 모두 초록빛을 띠고 있다. 

 무덤은 왜 초록빛일 때를 품고 사는 걸까? 초록은 본디 생명의 색이다. 표정 없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색들 가운데 그나마 살아있는 싱그러움을 최대치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색이다. 그 색이 오래전 죽은 자의 공간을 둘러싸고 있다. 고개를 내밀면 무덤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은 누워있는 망자의 곁을, 앞을, 또 뒤를 오직 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숨결과 웃음소리 따위를 흘리며 지나간다. 마치 약 올리듯이. 그것은 무덤이 칭칭 감고 있는 초록빛으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길 안쪽은 더욱 시끄럽다. 똑같이 생긴 소품들을 파는 가게들과 추억을 붙잡으라고 속삭이듯 줄지어 선 사진 부스들이 늘어져 있다. 능은 수많은 사진들 그 어느 것에서도 주인공이 아니다. 숨결과 웃음소리를 무기로 산 자의 자격을 얻은 사람들의 뒤편에 자리한 채로 고요히 누워있을 뿐이다. 

 대릉원으로 가보자. 거기엔 능 옆을 고요히 걸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어 찾아간 대릉원 안에 사람들은 많았다. 각기 다른 능의 곡선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사람들은 자신이 돋보일 곡선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나 역시 곡선 하나를 찾아두겠다는 일념으로 계속해서 걷고 있었지만, 나를 지나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유와는 달랐다. 나는 나를 찍어줄 동행을 데려가지 않은 참이었다. 나는 다르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곡선을 발견했을 때는 17시 17분이었다. 숫자마저도 운명인 것만 같다고 느끼는 우를 범하면서, 나는 황홀에 취해있었다. 두 개의 능이 이루는 완만한 곡선들 사이로 나무와 구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인간답게, 카메라를 들어 그 동석을 찍고 있었는데, 뒤에서 다른 일행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유모차에 탄 아기를 끌고 나온 어른들이었다. 내가 보고 있던 풍경을 똑같이 발견한 어른들은 아기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저기 좀 봐봐. 저것 봐. 예쁘지. 진짜 예쁘다. 

 그리고 아이도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무덤에 왕이 왜 있냐고. 응? 그러니까 무덤에 왕이 있는 이유가 뭐냐고. 내가 계속 묻잖아. 

 어른들은 끝까지, 그러니까 내가 그 자리를 벗어날 때까지, 아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자리를 벗어난 것은 그 아이의 말이 곡선에 취해 잊고 있던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놨기 때문이고, 내가 거기에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대릉원은 신라 천년의 위업을 달성하신 왕들께서 잠들어계신 신성한 곳입니다.” 

 안내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아무도 듣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린아이 말고는 아무도 능 안에 왕이 잠들어 있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공간.


 사람들은 계속 길을 걷는다. 휴대용 라디오로 영어 수업을 듣는 노인이 나를 스쳐가고, 은행나무 이야기를 하는 부부 역시 나를 스쳐간다. 그러다 두어 번 길 한 중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연인들을 마주쳐 발걸음을 멈춘다. 나는 그들의 순간을 침범한 방해꾼이 되고, 최대한 빨리 길을 지나친다. 그러느라 그 근처의 능이 누구의 잠자리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놓친다. 



 조금 더 걸으니 사람들이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눈에 닿는다. 그들이 걸어 들어가는 곳은 능이 아니라 능과 능 사이의 목련 나무 앞이다. 그 앞에서의 자신들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사람들은 일렬로 길게 주욱 서 있다. 그 모습이 꼭 왕을 알현하러 가는 사신들 같다고 느끼지만, 슬프게도 이곳에 왕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마저 걷고, 사람들은 나를 지나쳐간다. 어떤 가족이 지나가고 그 가족의 과거가 다시 지나간다. 놀라 돌아보니 아예 다른 사람들이다.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 남매 옆에서 웃던 부부가 지나가고, 그다음엔 어린 남매와 젊은 부부가 지나간 것이다. 이곳에 과거라고는 능 안의 잠든 사람들뿐이다. 


 그 이상한 공간에, 어느새 쓸쓸히 밤이 내려앉았다. 별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저 별이 어제도 뜨던 별이냐고, 오백 년 전에는 어땠냐고, 또 천년 전에는 어땠냐고 묻고 싶어진다.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누운 채로 오랜 잠에 빠져 있다. 나는 조용히 밤인사를 하고 무덤 사이를 빠져나와 빠르게 걷는다. 

  내 이어폰에서는 <소격동>의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그 옛날의 짙은 향기가 내 옆을 스치죠. 잠들면 안 돼요. 눈을 뜨면 사라지죠.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아이콘들이 만나 부른 노래는 공교롭게도 그리운 그 옛날이 사라지고 있는 슬픔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번엔 담장을 따라 걷는다. 바깥은 어느새 차도로 변해있다. 나는 달리는 차들의 소리가 바닷소리 같다고 느낀다. 고개를 돌리면, 낮과는 다르게 밤이 내려앉은  무덤들이 다시 보인다. 상관없이 그들은 내내 밤일까? 슬퍼진다. 왕릉의 위쪽엔 풀들이 바람에 살랑이는 생명 넘치는 장면이 얹혀있고 아래쪽엔 낙엽이 모여있을 뿐이다. 천년이 미리 묻힌 땅은 그렇게 또 하루치의 밤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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