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2024년 작
우울할 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가끔은 혼자 이겨내야만 하는 몫의 우울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그 어떤 약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나는 분명 약을 먹고 있는데.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행복한 생각을 하고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데. 물건도 (자주) 사고 또 나를 지지해줄 사람도 있는데. 그런데도 왜 난 이런 기분을 느껴야만 하는 거지, 대체 뭐가 날 이렇게 만들었나. 만약 우울함이 컵에 담긴다면, 그래서 넘쳐나는 부분은 약과 다른 사람이 해결해주고 있다면. 그래, 그 바닥에 남은 소량은 내가 혼자 감해내야 하는 부분일 게 분명하다. 약발이 닿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차마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오직 내 몫의 우울.
잠이 오지 않는다. 스마트 텔레비전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웹소설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나오려면 한참 남았다. 뭐 그런 시시한 것들이 어떤 우울컵 바닥을 대부분 이루고 있다면, 이유를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테니 또 다행이고. 하지만 만약 알 수 없는 이유로 가득 채워 진 우울 컵을 쥐게 된다면, 그래서 마음이 갑갑하고 답답하다면. 머리를 부여잡고 긴 시간 동안 마음을 헤쳐나가면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 만약 그 시간도 컵 속에 포함된다면 컵 깊이는 수 십 미터일 게 분명하다. 162센티미터의 내가 허우적거리며 한참을 헤매야 할 정도로.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정말 이상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웃기기 그지 없다. 차마 셀 수 없는 세포 수 억개와 호르몬 몇 줄기(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호르몬을 액체라고 인식하고 있다. 진짜 액체로 되어 있으려나?)가 날 이렇게 만든 걸까? 하지만 기본 메커니즘은 다른 사람이랑 똑같을텐데, 혹시 DNA가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결정을 내린 걸까? 그렇다면 또 무지막지하게 이상하고 신기하다. 내 손톱보다 작은 무언가가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발휘한다는 게. 심장이 전기 신호를 받고 펌프질을 해서 발 끝까지 피를 밀어낸다는 것 만큼, 침에 섞여있는 아주 아주 적은 양의 오피오르핀이 모르핀보다 6배나 강한 마취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입 속 통증을 완화해준다는 것 만큼, 간이 1/3만 남아도 원래 크기까지 재생할 수 있다는 것 만큼.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된 걸까?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모두 우울 컵을 가지고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크기는 얼마쯤 되려나.
어쩌면 그날 밤 나를 찾아왔던 우울에는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찾아가던 길목에 잠깐 들렀던 거일 수도 있지. 하지만 이유 없는 방문이라 하더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 컵을 쥐면 나는 한없이 슬퍼하면서 울지 못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 자지도 못하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도 없이 두서없이 엉망 진창인 글이나 써내려가며 어느 순간 우울이 모두 바닥 나기를, 가장 밑에 있는 우울이 모두 말라버리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그 시간이 때로는 견딜 만하지만 때로는 힘들어서 소주 잔에서도 헤엄칠 수 있을 정도로 나를 작게 만든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쩌겠어. 그 어느 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데. 뭐라도 하며 우울을 이기려고 노력하든 가만히 있든 시간은 흐르고 밤은 짧아지고 아침은 다가오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의 이러한 우울은 어디서 오는 건지, 정말 너무 너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