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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직장인 May 08. 2020

바보가 돈을 버는 법, 백만 원에 산 집을 2억에 팔다

나는 기본적으로 기민한 성격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행동이 굼뜨고 뭔가 일을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결심을 해서 실행하는데도 느긋한 편이라 어려서부터 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회생활 초기에 너무 둔하고 느려 바보 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펀드에 손실이 나자마자 팔고 청산했는데 나는 끝까지 버티며 추가 납입을 해서 결국 수익을 얻었다. 2020년 현재 코로나 위기로 주식 가격이 폭락했지만 나는 오히려 추가 매수해서 현재 시점에 포트폴리오는 약간의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내 성격이 어쩌면 투자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바보 같아서 시장의 충격에 빠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천천히 움직이지만 내가 움직이려는 시점에는 급격한 시장의 충격들이 조금씩 완화되곤 했다. 부동산이나 주식에 있어 내 목표는 골수까지 빨아먹는 것이다. 초기 상승 시 약간 오른 수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마지막 내가 파는 시점의 이익을 목표로 당장의 수익실현의 기대와 손절의 압박을 버티곤 했다.    



2012년의 이야기다. 한창 지방 부동산의 가격이 조금씩 상승하던 시기, 나는 우연히 마트 앞에서 한 아파트 분양 광고를 봤다.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두면  티슈를 준다고 해서 별생각 없이 연락처를 적었고 휴지를 받은 것을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돈도 없고 새 아파트는 엄감생심 기대도 못하던 때라 공짜로 얻은  티슈에 만족하며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미분양 나서 그러는데 지금 오시면 미분양 물건 계약하실 수 있습니다.   


청약통장도 없고 새 아파트 사는 것은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미분양이 났으니 계약하라고 하는 전화를 받고는 고민을 했다.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를 프리미엄 없이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갑자기 욕심이 생겨 와이프와 상의를 했다. '대출금 평생 갚는다는 생각으로 하나 지르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모델하우스를 갔다. 미분양 물건이 다 소진되고 3층 물건이 하나 남았다. 이 아파트에 관심 있던 분들이 좋은 미분양 물건들을 이미 다 계약했고 나는 마지막에 남은 떨거지 물건만 볼 수 있었다. 부동산에 관한 많은 지식은 없었지만 저층은 매력 없다는 생각에 고민했다. 모델하우스를 잠시 나와 커피를 마시려고 가는데 주변에 서 계신 부동산 관계자 분이 나에게 오셔서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프리미엄 백만 원짜리 물건이 있는데 중간층이라 괜찮다고, 수수료 싸게 해 줄 테니 계약하자고 한다.


내가 계약한 청약 당첨자는 초기 계약금을 처리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계약금 납입 시기가 지나고 독촉 전화를 견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분양권을 싸게 내놓았다. 비싼 물건은 프리미엄이 500만 원까지도 거래된다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을 듣고 계약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청약 당첨자가 나에게 100만 원을 받아도 부동산 복비와 미납 계약금에 대한 이자를 제외하면 별로 남는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그분의 소재지는 창원이었으니 교통비까지 생각하면 그분께 좋은 계약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파트를 계약하고 시간이 흘러 반대로 부동산에서 나에게 연락이 계속 왔다. '프리미엄 천만 원에 팔 생각이 없냐고?' 나는 실거주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몇 달 후 또 연락이 온다. '5천만 원에 팔 생각이 없냐고?' 입주 시기가 닥쳐오니 그 금액이 일억까지 올라갔다. 나는 처음부터 실 입주를 생각하고 산 집인데 부동산에서 자꾸 연락이 와서 분양권을 팔아라고 하며 가격을 올리는 것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사정이 생겨 세입자를 들이고 전세계약을 맺었고 전세금으로 아파트 잔금을 치르고도 약간의 돈이 남았다. 2년 후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이 되었을 때 시세차익 약 2억 원을 남기고 팔았다. 프리미엄 백만 원에 산 아파트를 2억을 남기고 팔았다.



내가 분양권을 들고 있던 시기에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분양권을 팔라고 했다. 수익 실현을 해서 현금을 눈으로 봐라는 충고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2년 거주 후 매도 시점의 기준으로 가격을 생각했고, 그 당시 파는 것은 손해를 보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끝까지 들고 갈 수 있었고 높은 가격을 받고 매도할 수 있었다.


물건이나 주식, 부동산을 바라보는 관점을 현재의 가격이 아니라 예상하는 미래 가격을 바탕으로 투자를 한다면 조금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바보 같아서 주식으로 단타를 치거나, 분양권을 빠르게 사고팔아서 수익을 얻을 자신은 없다. 다만 미래의 특정 시점의 자산(주식, 부동산) 가치와 현재 가치의 차이를 어렴풋이 계산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계산이 나 같은 사람도 재테크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방법인 것 같다.


이미지 출처: resplash.com

#재테크 #분양권 #아파트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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