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애니메이션 준비작업
러프 보드를 만들다 보니, 머릿속에 질문이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
“정말 전하고 싶은 건 뭐였더라?”
글로 읽을 때와, 그림 컷으로 옮겨 보았을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동화 속에서 놓친 부분이 있다면, 지금 다시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몽땅이 스토리’가 처음 태어난 순간을 돌아보고,
이 이야기가 품어야 할 주제를 다시 한번 또렷하게 붙들어 보려 합니다.
그림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저는, 일할 때마다 커다란 장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미술 전공도 아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림 못 그리는 사람’으로 통했으니까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끝에,
“기초부터 다시!”
를 외치며, 4B 연필 한 다스를 사 들고 왔고, 그날부터 매일 데생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연필을 깎다가 한 자루가 어느새 ‘몽당’ 해진 걸 발견했습니다.
짧아져 잡기조차 불편한 그 연필을 연필꽂이에 꽂으며 중얼거렸죠.
“이상하지? 몽당연필은 도무지 버릴 수가 없네…”
언제나 그랬습니다.
날 위해 열심히 일해 준 몽당연필을 차마 버리지 못해,
연필꽂이가 가득 차면 그제야 한꺼번에 정리하곤 했으니까요.
그 순간 문득, 짧아진 연필이 우리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깎이고..
또 힘내고, 다시 깎이고...
겨우 숨 돌리면, 어느새 또 깎여 나가고.
‘언젠가 나도 몽당연필처럼 짧아질까?’
그 생각에 마음이 서늘해졌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연습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죠.
“길이만 다를 뿐, 연필심은 똑같잖아.
선을 그리는 본질은 속의 ‘심’에 있고,
길이는 단지 겉모습일 뿐이야.
지금 새로 꺼낸 이 연필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몽땅이가 될 거야.
연필꽂이 속 몽당 이들은 ‘버려진 연필’이 아니라,
앞서 더 많은 선을 경험한, 짧아진 친구들일 뿐이야."
사람을 살펴보면—
누군가는 일찍 철이 들고,
누군가는 뒤늦게 깨닫고,
또 누군가는 철이 든 줄만 알고 여전히 철없이 살아갑니다.
시간과 경험을 갖은 몽당해진 연필은 이미 “철”이 들어 버렸겠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새 연필은 언젠가 자신도 몽땅 이가 되리란 사실조차 모른 채 기세등등할 테고…
그럼,
어릴 적 책상에서 “툭” 떨어져 반 토막이 난 연필은.....
‘그 부러진 몽땅이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퍼즐처럼 이어진 기억 끝에 번쩍,
“이걸 동화로 써야겠다!”
란 생각을 했습니다.
부러진 몽땅이는,
이미 많은 선을 그어 본 경험 많은 몽당연필과도,
기세등등한 새 연필과도 전혀 다른 길을 걷겠지요.
새 연필이 느끼는 자신감도, 그 기세가 꺾일 때의 상실감도 모르는 채.
시간이 주는 여유와 어린 날의 생기, 어느 쪽도 충분히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러진 몽땅이는 행복할 수 없는 걸까?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출발선에서 삶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복은 공평하지 않죠.
제가 말하고 싶은 행복은 ‘마음속의 행복’입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록 소박할지라도 마음 가득 행복을 채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이란, 각자가 마음속에서 그려내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의 캔버스 위에,
내 안에 깃든 고유한 색채로
진심으로 그리고 싶은 무언가를 찾아내고,
나만의 방식으로 그려나가는 것—
그 하나하나의 순간이,
결국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요.
조각조각 적어둔 메모들을 다시 읽어보며 깨달았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우리 모두는 특별한 존재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자주, 타인의 기준이나 세상의 평가에 흔들립니다. 나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덜 가치 있게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자신의 가치는 밖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것이라는 걸요.
우리는 같은 색을 찾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저마다 자신만의 색을 지닌 존재로서,
스스로의 빛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이야기는 출발했습니다. (저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유이자, 행복의 완성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