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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11. 2024

오늘 : 음식물 쓰레기

2024. 3. 11.

쉬는 날이면 1시 20분 배를 타고 모슬포로 나가 장을 본다.  장을 볼 때는 2주일치를 보는데, 다음 주에 일기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규모있게 장을 보기 위해서는 메모장에 장을 볼 것들을 기록한다. 그리고 기록한 것을 중심으로 사는데, 이 규칙이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다. 마트에 갔더니 갑자기 먹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도 하고,  식재료가 워낙 싸게 나와서 충동적으로 구매하기도 한다.


구매한 식재료 중 상하기 쉬운 것들은 일단 냉장고에 쟁여넣는다. 장을 본 날은 냉장실과 냉동실이 가득 찬다.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식재료들은 밖에 차곡차곡 정리해 둔다. 그런 날이면 기분이 뿌듯해져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부를 정도다. 문제는 사다 놓은 재료를 소비할 때 발생한다. 음식을 만들면 다 먹어서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데, 냉장고에 구석에 처박혀 있어서 발견하지 못하거나, 대량으로 구매하여 다 소비하지 못하는 재료들은 상해버리거나 냉장고에 있어도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다. 냉장고라고 무한히 보관할 수 없다는 당연한 상식을 매번 까먹는다.


먹어치우지 못하고, 아예 손도 대지 못한 상태로 버린 음식 재료 쓰레기가 생긴다. 어제만 하더라도 꽈리고추 한 봉지와 버섯 반 봉지, 콩나물 한 봉지, 당근 2개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렸거나 상해버렸기 때문이다. 사다 놓고 아예 음식으로 만들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음식 재료들이 많지는 않지만, 버리면서 가슴이 아려온다. 오래도록 농사를 지어온 경험이 있어서, 작물들이 어떤 정성으로 키워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 재료 쓰레기 - 음식물로 만들어지면 모두 먹어치우기 때문에 쓰레기가 생기지 않는다. - 를 버리며, 나는 나의 소비생활을 반성한다. 싸다고 많이 사고, 먹고 싶다고 사고, 다 쓰지도 못할 것을 1+1이라 사는 나의 구매욕망을 반성한다. 음식물 쓰레기 만들지 않으려면, 먹고 싶은 것보다 덜, 싸더라도 안 사는 습관을 가져야 하는데, 매번 실패한다.


메모장을 열어, 당장 필요한 것들이 아닌 것을 지우기 시작한다. 먹고 싶은 것도 지운다. 먹어야 할 것만, 먹을 수 있는 만큼 만, 될 수 있으면 적게 구입하리라 다짐한다. 그깟 게 얼마나 한다고 따위의 생각을 지운다.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의 문제다. 소비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 문제다. 우리는 어차피 지구상의 생명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 아무리 작은 생명일지라도, 우리의 뱃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생명이 된다. 태어나 그냥 버려지면 안 된다. 음식물을 먹을 때, 나는 생명을 생각하겠다고 다짐한다.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은 생명이다. 생명 덕분에 내가 산다. 나는 기도한다. "이 생명을 먹고, 아름답고 친절한 생명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에게 사죄한다. 미안하다. 생명의 사슬이 잘못 꼬여 생명이 버려졌구나. 다음번에 태어날 때에는 멋진 생명으로 태어나 멋진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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