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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19. 2024

책 : 관광객의 철학

2024. 3. 19.

"어느 시대에나 철학자는 아이를 싫어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예전에는 아이였다. 우리 모두 섬뜩한 존재였다. 우연의 아이였다. 우리는 분명 실존적으로 죽는다. 죽음은 필연이다. 하지만 탄생은 필연이 아니며 우리 중 누구도 태어났을 때는 실존이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는 필연에 도달하는 실존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연에 노출되어 다음 세대를 만드는 부모가 되어야 삶을 완수할 수 있다.(......)

아이로 죽는 데 그치지 말고 부모로서도 살아가라. 2부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한마디로 이것이다. 물론 여기서 부모는 생물학적 부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징적 또는 문화적 부모로 존재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부모가 내가 말하는 부모 개념에 가깝다. 왜냐하면 부모가 된다는 것은 오배(誤配,잘못된 배달-필자)를 일으킨다는 것이고 우연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도 가능한 한 많은 우연의 아이를 만들어 미래의 철학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317~8쪽)


"참신하고 기발했다"라고 시작되는 이권우의 책 소개도 있고, 관광객의 철학이라는 책 제목에 혹하여 - 내가 관광지에 근무하고 있으니 - 구입한 책이다. 비닐로 덮여서 배달되었다. 구매하기 전에는 들쳐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패션이나 여행잡지의 표지처럼 모던하다. 가벼운 여행 에세이라고 생각하며 구입한 사람들은 큰코다치는 책이다. 철학책이다. 그것도 쉽지 않은 문제를 다룬다. 내셔널리즘(국가주의)과 글로벌리즘(제국주의), 공동체주의와 자유지상주의, 자살과 테러, 사디즘과 마조히즘, 우연과 필연, 국민과 세계 시민, 루소와 칸트와 헤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쓴 체르니솁스키와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쓴 도스토옙스키가 주제어로 등장하고 철학부터 과학, 정치학, 문학비평 등 깊이와 넓이에 있어 타에 추종을 불허하는 책이 바로 아즈마 히로키라는 철학자가 쓴 관광객의 철학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어려운 개념어를 설명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눈을 떼기 힘든 매력을 가진다. 특히 개념의 쌍을 뚫고, 새롭고도 참신한 개념인 '관광객'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저력에 박수를 치고 싶은 작품이다.


관광객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저자의 입을 빌어 말해보자면, "세계는 지금 전례 없이 많은 관광객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20세기가 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관광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철학은 관광을 고찰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런 당연한 감각에서 출발한다."(21쪽)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관광객의 철학을 사유하는 것은 대안적인 정치사상을 사유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특정 국가에 속해 그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회로가 아닌 다른 회로를 통해 보편성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길을 통해서인가? 익명이며 동물적 욕구에 충실하고 누구의 친구도 누구의 적도 되지 않는, 들뜬 기분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관광객. 이들이 만약 공공성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공공성은 어떤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의 물음이다."(119쪽)라고 말함으로 이 책의 궁극적 물음을 던진다.

그가 따르는 길은 "제국 체제와 국민 국가 체제, 글로벌리즘의 층과 내셔널리즘의 층이 공존하는 세계란 한마디로 보편적 세계 시민이 되는 길이 사라진 세계다. 나는 그런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책에서 다시 한번 세계 시민이 되는 길을 만들고 싶다. 그것도 개인에서 국민을 거쳐 세계 시민으로 향하는 헤겔 이후의 변증법적 상승과는 다른 길을. 그것이 관광객의 길이다." (161쪽)


1부에서 관광객에 대하여 천착하고 있다면, 2부는 가족과 아이에 대하여 다룬다. 1부가 철학이라면 2부는 문예비평에 가깝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작가는 <지하생활자의 수기>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도스토옙스키다. 소설가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유형을 분석하면서, 1부에서 문제제기한 양극단의 인물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고 있다. 새로운 가족과 새로운 아이를!


처음에 인용한 대목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권우는 여기서 유교의 가족주의를 떠올리는데, 그에 대해서 이권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진다. 적어도 저자의 생각은 유교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랜만에 짜릿한 지적 자극을 받은 책이다. 이어 읽기로 저자가 쓴 두 권의 책과 저자에 대해 정리한 책을 따로 주문했다. 책구입을 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려고 했는데, 내가 원하는 책 대부분은 도서관에  없다. 구입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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