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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pr 02. 2024

오늘 : 비바람

2024. 4. 2.

1.

아침에 일어나 보니 도현이 형이 안 보인다. 전화를 걸어봤더니 새벽에 일어나 마을 산책을 하고 있다. 부지런함은 습관이다. 전국을 누비며 가구톡세상을 운영하는 형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형을 위해 소고기장국을 끓이고 잡곡햇반을 데운다. 어제 술을 과하게 먹었으니 아침 해장국을 맛있게 만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아뿔싸, 도현이 형은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루틴이란다. 해장국 대신 블랙커피 한 잔을 타드리고, 나는 햇반에 소고기장국을 말아 든든하게 먹고 출근 준비를 한다.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아침 첫배를 타고 떠날 도현이 형과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해가 보이지 않지만, 걸으며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표소에 도착하여 나는 매표 준비를 하고, 형은 일찌누나가 운영하는 스낵바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왔다. 어쩌면 내가 지인과 스낵바를 인수하여 도서관과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할 수도 있어서 형에게 한 번 봐달라고 부탁드린 것이다. 스낵바 주변을 살펴보고 나서 형은 괜찮은 장소라고 한다. 세가 조금 비싸긴 하지만 - 도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 임대하려고 생각했는데, 형이 이야기에 한결 마음이 놓인다.

도현이 형이 스낵바 이곳저곳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줬다. 고맙습니다, 형님!

2.

형을 첫배로 보내고 나니 비가 추적주적 내리기 시작한다. 10시쯤 되자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거세진다. 어제는 하루종일 쾌청하여 관광하기 딱 좋은 날씨였는데, 오늘은 비바람이 몰아쳐 관광하기 정말 힘든 날씨다. 그런데도 30분마다 오는 페리호에는 관광객이 꽉 차서 들어온다.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서 비바람을 맞으며 관광하는 마음은 뭘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다면 비와 바람 따위는 절대적 조건이 아닌가 보다. 얼굴표정을 살펴보니 다들 환하게 웃고 있다. 뭐가 좋은지 서로 킬킬대고 깔깔댄다. 정말 좋은 거다.


이런 모습을 구경(?)하다가 관광은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그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 아무리 악천후라도 즐거운 마음이 있다면 즐거운 광경과 즐거운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괜찮은 거 아닐까.

3.

16차례 배를 맞이하고 보내는 사이 비가 더욱 거세진다. 그 와중에 김진현 핫도그집 주인이 핫도그 2개를 가져와 매표소에 놓고 간다. 점심시간도 없이 근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나 보다. 집에서 가지고 간 빵도 먹지 못하고 도로 집으로 가져가는데 퇴근길 배낭 속에서 핫도그의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진다. 비가 사선으로 쏟아져 우산을 써봤자 비를 피할 수는 없다. 바람과 싸우며 집으로 걸어가는데, 전망대식당 삼촌이 - 여기서는 어른을 삼촌이라 부른다. - 차를 몰고 가다 내 앞에 세우더니 이 비를 맞고 어떻게 걸어가냐며 타라고 하신다. 염치불구하고 얻어 타서 덕분에 편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와 고양이들에게 습식캔을 하나 따서 준다. 추운데 비 맞으며 고생했을 고양이를 보며 동병상련의 마음이 동했나 보다. 너희들도 나처럼 오늘 하루 고생했다. 든든하게 밥 먹고 책 좀 읽다가 일찍 푹 자자. 내일은 아마도 풍랑주의보가 떨어질 것이다. 그럼 하루를 쉴 수도 있겠구나. 마음이 조금은 느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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