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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pr 02. 2024

오늘 : 송도현 회장님

2024. 4. 1.

오늘은 만우절이자 4월이 시작되는 첫날. 거짓말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고양시에서 귀가쫑긋이라는 인문학모임을 만든 초대회장 송도현형이 가파도로 찾아온 것이다. 오전 근무를 끝내고 잠시 쉰 뒤, 오후 근무를 시작하는데 3시 배를 타고 송도현형이 가파도로 들어왔다.

원래는 내일 오려고 했는데, 내일은 날씨가 안 좋아 배편이 위험해서 하루 일찍 가파도로 온 것이다. 나는 근무 중이라 손님 접대를 할 수 없는 처지라, 근무가 끝나는 5시 반쯤에 부성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형은 그동안 섬 한 바퀴를 돌면 시간이 맞을 것이다. 근무가 끝나고 전화를 해보니, 이미 한 잔 하고 해안가에 누워(?) 쉬고 있다고 한다. 빠르기도 하시군.

부성식당에서 부시리회를 시키고, 해물라면을 시키고, 소라를 시켰다. 회가 많아 일찌누나에게도 전화를 했다. 저녁 식사를 든든히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형이 2차 할 곳은 없냐고 묻는다. 가게는 없고, 새로 이사 온 영진이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봄날에> 카페 앞마당에서 마을주민들과 삼겹살을 굽고 있단다. 염치 불구하고 합석하기로 했다. 가보니 반가운 분들이 많다. 나도 같이 술자리 한 번 못해본 주민들이라 인사를 나누고, 술을 기울이는 사이에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두 가파도 원주민이 아니라, 이주민이라는 것. 이주민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육지것'으로 대접받는다는 것. 그래서 오래도록 살아도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굴러다니는 기분이라는 것.

원주민/이주민의 오래된 이분법은 폐쇄된 사회일수록 더욱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친소의 유무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차별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가파도에 와서 5년이 지나야 주민 행세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이주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마을회에 참여해도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제한을 받는다. 도시라면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섬에서는 상식처럼 벌어진다. 마을재산과 이권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생활을 주로 하다가 가파도로 이주한 분들은 당혹스러워하기도 한다.


어차피 인간은 모두 이주민이다. 지구라는 별에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왔다가, 다시 우주로, 먼지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영원한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유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겨우 발붙여 살아가는 존재끼리, 조금 더 오래 살았다고 티를 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며 이주민들에게 잔을 내민다. 서로 돕고 살자고 외롭게 살지는 말자고.

도현이 형과 술에 취해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조금은 덜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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