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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03. 2024

책 :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2024. 5. 3.

순수주의자는 과거와 다른 사회의 의미 생산 전략을 차단하여 자신의 문화로부터 귀중한 자원을 빼앗는다. 문화는 다양한 표현 식과 의미 생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때 가능성과 실험을 통해서 번영한다. 문화 접촉으로 선택지가 증가하면 문화 생산과 발전은 자극을 받는다. 반대로 순수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대안을 차단하고 가능성을 제한하며 문화 융합 실험을 감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편협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과거를 무시하고 파괴를 용인하거나 장려함으로써 스스로 가난해진다.(424쪽)


오늘날 이러한 교사와 매개자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문화 보존을 담당하는 기관 중 하나인 대학이 근래에는 기술과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과목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부 국가에서 일어나는 인문학 쇠퇴 현상을 남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일정 부분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문학자들이 다양한 문화사를 장려하는 역할에 항상 충실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일반 대중을, 즉 우리의 주요 청중이 되어야 할 독자, 부모, 학생을 잃었다(내가 재직 중인 대학에서는 2021년 신입생 중 8퍼센트만이 예술과 인문학에 제일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나는 예술과 인문학이 번창하려면 우리가 더욱 폭넓은 대중을 되찾고,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과 즐거움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조상들이 만들어 준 귀중한 문화를 잘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429쪽)


드디어 책을 끝까지 읽었다. 15개의 에피소드를 문화적으로 풀어서 설명한 이 책은 매 편이 흥미진진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소재도 다양하여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왕비, 아테네의 플라톤, 인도의 아소카왕, 폼페이의 여신, 일본의 <베갯머리 서책>, 바그다드의 지혜 창고, 계약의 궤를 약탈한 에티오피아, 기독교 신비론자, 아즈텍의 수도, 신화를 쓴 포르투갈의 선원, 프랑스 파리 살롱과 계몽주의, 새로운 과학과 역사 소설, 일본 예술의 확산, 나이지리아 독립과 셰익스피어 등 어느 것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떻게 작가는 이 많은 지식을 직조해 낼 수 있을까? 이렇게 직조한 기술의 정신은 무엇일까? 유적과 유물, 문화와 예술(더 넓게는 인문학)에 대한 해박함을 넘어서 "문화의 소유자는 없다"는 개방적 태도로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문화의 교류와 변형(왜곡), 재탄생(재활용)을 실천하는 문화보급자들을 탐구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통한 탐구는 단순한 지식 축적과 유통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문화를 대해야 하는지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베객머리 서책>을 쓴 세이 쇼나곤

그중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에피소드는 일본의 <베갯머리 서책>과 <후지산 36경>을 다룬 6장과 14장이었다. 가까이 있는 나라지만,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일본의 문화 예술이 어떻게 세계로 펼쳐나가 서양의 모더니즘 예술에 영향을 끼쳤는지 일말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분석한 것도 꽤나 흥미로웠다. 그중 일부만 인용하자.


"한류가 이토록 많은 청중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록, 재즈, 레게, 아프로비트 등이 뒤섞인 스타일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음악적 특징은 주로 묵직한 비트, 듣기 좋은 브리지 부분, '부드러운' 랩이 중간에 들어간 R&B 댄스 트랙이며, ( <강남 스타일>처럼) 대부분 한국어로 부르고 가끔 영어가 들어간다. 뮤직비디오에 딱딱 맞는 군무를 종종 끼워 넣는데 이는 발리우드 같은 문화권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미국 대중문화에서는 그다지 흔하지 않다. 또한 미국과 영국의 팝과 랩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폭력과 외설이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깨끗한 재미'라는 케이팝의 이미지 때문에 케이팝 가수들은 도덕성에 대한 팬들의 높은 기대가 무너졌을 때 격렬한 반응을 감수해야 한다.)" (426~427)


에필로그의 많은 부분을 한류와 케이팝을 분석하는 데 투자하는데, 서양의 문화연구자가 이렇게 현대 한국의 음악에 대해 평론하는 것에 대해 낯설고 신기했다. 그리고 그 분석이 적확하여 놀랐다. 특히 한국의 연예인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고 있다는 그의 평가는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그 알량한 도덕성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연예인을 잃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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