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자녀처럼 양육해보고 싶은 마음에.
함께 사는 아이는 이른 아침 운동 연습 시간에 맞추어 오전 6시 50분에 이미 집을 나섰다. 아침 도시락 소시지와 점심 도시락 돈가스를 가방에 구겨 넣고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서 아침 선선한 공기를 흡!! 하고 들이마셨다. 12월, 1월 베트남도 나름 겨울이라 바람이 가을바람처럼 냉랭한 공기가 아침저녁으로 나불나불 거리며 살결에 와 닿는다. 팔을 꼬고 몸을 한껏 웅크렸다. 희미한 꼬맹이 수다 소리가 들린다. 또 아랫집인가 보다.
아랫집 꼬맹이 여자 아이 둘은 왕왕 이른 아침 잔디밭에 블랭킷 하나 깔고 간단히 아침밥을 먹는다. 2층에서 난 고개를 쏙 내밀어 보았다. 마침 오늘이 그날 인가 보다. 요플레, 야채(당근, 오이, 토마토 등), 빵 한 조각, 시리얼 등을 옴싹 옴싹 먹으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눈다. 학교 유니폼을 입은 채 아침잠이 들 깬 부스스한 얼굴. 오늘 유달리 아이들 금발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다. 잔디밭에 앉아 너울 거리는 아침 햇살을 그대로 온전히 받는다. 그러다 놀이터 쪽을 향해 맨발로 잔디를 꾹 꾹 밟으며 걸어간다. 놀이터에서 모래를 밟거나 나무 타기를 한다. 그들은 작년에 미국에서 왔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동생과 한 번에 달려온다. 맨발로 밟았던 모래를 툭툭 털어내고 가방을 울러 맨다. 한 명은 6살 한 명은 8살. 학교 가기 전 여유다.
그사이 피온(뉴질랜드 친구)은 한 손은 조그마한 검정개 목줄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개똥을 치울 비닐을 들고서 잔디밭과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돌고 있다. 피온 역시 유니폼을 입고서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며 개와 산책을 하고 있다. 지나치게 풍겨져 나오는 여유로움. 무엇일까.
자연을 벗 삼아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이다. 이 친구들이 보여주는 아침에 편안함이 지나치게 부러워 가끔 질투가 날 지경이다. 학교 등교시간은 오전 8:00시. 이들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아침에 종종 자주 보인다. 느긋함이 몸에 배어 있는 그들의 한가로움을 보고 있자면, 나도 미국 인이라면, 외국인이라면, 저렇게 아이를 키워도 될까. 과연 괜찮을까 라는 메아리가 머릿속에 도돌이 표처럼 윙윙 돌고 돈다.
아랫집 부부는 두 딸을 위해 아파트 나무에 로프 끈을 매달아 나무 타기를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주말이면 강가에서 아이들과 카약을 즐긴다. 자연을 느낄 수 있고 자연이 있는 곳이라면 매주마다 배낭을 들처 매고 항상 떠난다. 막내 꼬맹이는 주말 이른 아침 새벽 6시 때때로 노래를 부른다. 자기가 작사 작곡한 노래인 듯하다. 갑자기 아래층 복도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서툰 오페라 가수가 배에 힘을 잔뜩 주어 나오는 굵직한 목소리와 흡사하다. 꼬맹이 노래 가사는 대충 이러하다.
“엄마~ 나~ 준~비 다 됐어요?”
“엄~~ 마~ 언제 나가~~나요?”
“오~~늘은 자전거를 타나요 ~~오토바이를 ~~타나요?”
저 노래를 이른 아침부터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실실 헛웃음이 나온다.
아침에 단어 문제 집을 풀고, 유튜브로 CNN 강의를 듣고, 수학 연산을 풀고, 구구단을 외우는 집과는 다른 풍경이다. 분명 그들의 자녀와 우리 자녀는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과 그들의 자녀는 너무나도 다른 유년기를 보낸다.
손에 쥐고 있던 잡지를 펼쳤다. 신짜오 베트남 2021년 1월 호다. 베트남 교민들을 위해 무료로 배부되는 잡지다. 식당과 마트 등 곳곳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나 장소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어제 고깃집에서 돼지갈비를 먹고 나오는 길에 아무 생각 없이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보통 잘 읽지 않는데, 가끔 궁금할 때도 있다. 지금 한국 교민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을 하고,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 경제는 어떻게 돌아 가는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잡지 이기도 하고, 이곳에 정착을 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기도 하다. 나도 한때는 이 잡지에 의존해 삶을 산 적이 있다.
쭉 넘겨 사진과 이것저것 보다 "한국 의대 3곳 동시 합격" 기사가 멈칫하게 만들었다.
모든 한국인이 열광하는 국제학교 B** 타이틀을 내세운 학생 인터뷰 기사가 신짜오 베트남에 대문짝 만하게 내걸렸다. 제목에 12년 특례라는 말은 없었다. 기사를 읽다 “베트남 내 교민사회에서 12년 특례 전형으로 메이저 의대에 합격한 학생은 지금까지 2명밖에 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읽었다. 4페이지 분량의 기사가 실렸다. 영국 대학도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 한국 의대를 택했다고 한다. 사실 이 친구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다. 꽤 유명했던 친구이다. 똑똑하고 공부 잘하기로. 초등학교 때 이미 4개 국어를 부모가 시켰다고 한다.
특례의 가치와 고귀함이 시장통처럼 젊은 엄마들 사이에 시끌벅적 한 이유가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최근 베트남에서 3년 특례, 12년 특례로 학생들이 한국 스카이 대학에 입학을 꽤 많이 했다. 덩달아 최근 주재원 가족들은 발령 나는 첫날부터 다시 한국 귀국 발령을 대비해 미리 기러기 생활을 고려하고 준비하는 가족들 도 꽤 많아졌다.
미국에 미대 3곳이나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 허가받은 친구 기사는 없다. 한국을 포기하고 호치민 대학에 진로를 결정한 아이들이 왜 호치민 대학을 선택했는지, 어떻게 베트남어 랭귀지 코스를 밟고서 입학하는지 등의 기사는 없다. 뭐 이전 몇 년 전에 기사를 찾아보면 있겠지만, 베트남도 해마다 바뀌는 교육 정책이 있기에 새로운 기사를 함께 담아 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교민 잡지에 실린 기사는 언제나 그렇듯 한국인들 정서와 문화에 맞는 기사를 내보낸다.
기사를 끝까지 읽지 않았다.
첫 두 단락과 소재목만 읽고서 조용히 덮었다.
커피 한잔이 먹고 싶어 졌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오랜 맛에 타야를 만났다.
"타야, 애들 학교 안다녀? 한동안 안보이던데 어디 다녀왔어?"
"애들 학교 안다녀.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온라인으로 학교 다녔잖아. 그리고 하다 보니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고 싶어 졌어. 그래서 홈스쿨링을 할 거야. 그리고 우리는 2주는 무이네에서 살고 2주는 호치민에서 생활할까 해. 우선 아이들이 바다를 너무 좋아해. 자연과 함께 한 몸이 된 기분이야. 아이들이 행복해해. 나도 행복해. 행복해야 애. 그게 제일 중요해. 아이들이잖아."
타야는 소아과 물리 치료사다. 이전에 패밀리 메디컬에서 일을 했었다. 그녀에게는 4명의 자녀가 있다. 두 명의 아들과 2명의 딸. 이스라엘에서 왔다.
어느 날 그녀는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동안 물병 위에 꽃을 놓고 갔다. 그 모습은 나의 머릿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잔상으로 남아있다. 소름 끼칠 만큼, 닭살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쭈뼛쭈뼛 돋아 올라 올 정도로, 그토록 아름다웠다. 그 어떤 말도 없이 ‘평화’와 ‘차분함’의 의미로 꽃을 물병 옆에 그냥 두고 만 갔고, 아이들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물을 들이 키는 동안 붉그스레한 두 아이의 볼은 가라앉았고, 엄마의 든든함이 얼굴에 비추어졌다. 나도 언젠간 꼭 해보고 싶고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홈스쿨링을 선택한 그녀, 엄마로서의 자존감과 그녀만의 교육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도대체 그녀와 난 어디서부터 너무나도 다른 인간으로 자랐을까? 환경? 국적? 문화? 나라? 인종? 그들의 삶과 나의 삶 사이에 마치 영원히 메꿀 수 없는 한줄기의 긴 강이 고요한 침묵 속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의 외국인들이 유달리 유별난 것일까?
그녀는 그렇게 떠나 버렸다. 아이 넷을 데리고. 그리고 2주에서 3주마다 한 번씩만 호치민 집을 방문한다.
신짜오 대학에 관한 기사는 현실적이고, 지금 내가 보고 마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삶과 교육법은 나의 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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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한번 반항 해보 싶은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