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월 베트남 구정은 10년 전 과거세계 구정과 다른 모습이다.
2년 전 이맘때쯤이다. 집안일을 3년 정도 도와주었던 26살 쿠에. 어린 나이에 호치민으로 시집을 와서 일남 일녀를 키우고 있었다. 구정 연휴가 다가오면 대체로 마담들은 상여금 보너스 얼마를 챙겨 줄지가 큰 광 건이다. 공식적으로 공장이나 회사에서 ‘구정 뗏 보너스’ 혹은 ‘13개월 급여’ 라 부르기도 하며 100프로 상여금을 한번 더 지급하지만 메이드 입장은 회사나 공장과 는 다른 개인 파트타임 개념이라 마담들에게 항상 고민거리다. 노동 법이나 법률상으로 강제된 것은 아니지만 베트남 전통상 무언의 규정, 혹은 관행적으로 공장과 회사에서 그렇게들 많이 지급한다. 나 또한 우리 집에서 3년 넘게 일한 친구이기도 했고 하루에 2시간 정도만 일손을 도와주는 친구라 월급이 크지는 않았기 때문에 13개월 100프로 상여금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구정 연휴 전날 갑자기 그녀는 우리 집 아이에게 빨강 봉투를 내밀고 아래위 러닝셔츠와 팬티 한벌을 선물로 놓고 갔다. 빨강 봉투 안에는 10만 동 (5천~6천 원 사이)의 돈이 들어 있었다. 이 돈의 가치가 우리에게는 커피 한잔 값, 손 두부 한 모 값, 한국 아이스크림 2개 정도 값어치이지만 , 가사를 도와주는 베트남 친구들에게 이 10만 동은 그들이 일터를 바꿀 수 있을 만큼 힘을 가진 액수이다. 가끔 10만 동 차이로 일하던 집을 그만두고 다른 집으로 옮겨 가는 메이드도 있고 기사 아저씨 씨도 있다.
순간 깜짝 놀랐다.
"쿠에! 돈 너무 큰 거 아니야?"
고맙다는 말보단 토깽이처럼 큰 두 눈을 휘둥거리며 부엌에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 소리를 쳤다.
"아니에요. 마담. 구정 뗏 이잖아요."
언제나처럼 무뚝뚝하니 이렇게 한마디만 던지고선 달그닥 달그닥 프라이팬을 씻는다.
3년 동안 일하며 딱히 문제가 없었던 쿠에. 위궤양이 있어 자주 병원에 입원도 하고 결석을 많이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딱히 문제를 삼지 않았다. 아이가 어리지도 않았고 집안일이 많지도 않았기에 나름 괜찮았다. 구정 li xi 봉투 안에 3등분으로 꼭꼭 접힌 돈은 그녀가 하루에 3집 이상 돌아다니며 청소하고, 점심시간에 쪽잠을 자가며 그녀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악착같이 모은 돈의 일부였다. 베트남 사람들 자국민끼리는 주로 천동에서 오만동 정도 사이 예의상으로 주고받는다. 더 큰돈을 넣기도 하지만 아이도 학교에서 천동(5백 원 정도)을 빨강 봉투 안에 구정 li xi돈이랍시고 받아 왔었다. 그녀 방법대로 나를 생각 해준 따뜻한 마음이 순박하면서도 촌스러운 스파이더맨 그림이 프린트된 아이 속옷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시장통에서 이리저리 따져 가며 골랐을 그녀 모습이 나의 눈 안에서 생생한 한 폭의 사진처럼 그려졌다.
쿠에를 한번 꼭 안아 줬다. 남편이 속을 섞여, 가끔 퉁퉁 부은 얼굴로 이른 아침 일을 오기도 했던 그 어린것이 얼마나 큰 마음을 먹고서 구정이라며 마담을 생각해준 것을 알기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끄러운 듯 온몸을 베베 꼬며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웃으며 설거지를 계속 이어서 했다. 쿠에는 종종 시골에서 초란도 들고 왔으며 얇고 가늘한 아기 부추도 한 단씩 집에 들고 와선 ‘Madam, an di' '마담 먹어’라며 툭 놓고 가기도 했었다. 그 후 일 년을 더 함께 한 뒤 돈을 모아 동나이에 자그마한 땅을 샀다. 그때 땅을 산다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동나이에 계약하러 간다며, 아침 7시부터 우리 집일을 2시간 만에 후다닥 해치우고 갔었다. 그리고 1년 뒤 그녀는 동나이로 이사를 갔고 도우미 일을 그만두었다.
마지막 메이드였던 그녀가 떠나고 올해로 2년째 맞는 구정이다. 코로나가 지난주 2월 초 하노이서부터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와 상점 백화점은 분주하다. 어느 때와 마찬 가지로 구정 연휴가 시작이 될 쯔음 호치민은 보통 2주 전부터 눈 코 뜰세 없이 바빠진다. 거리는 꽃으로, 쇼핑몰은 세일 상품으로, 마트는 구정 선물 패키지 배달로, 생명이 다시 살아 꿈틀 거리는 도시로 돌변한다.
우리나라 설과 비슷하게 베트남 구정 뗏에는 '리씨(Li xi)' 세뱃돈이 있다. Li xi (리씨) 머니는 행운과 복을 상징한다. 슈퍼, 문구점, 선물가게 등 어디서나 본격적으로 빨간 봉투를 팔기 시작한다. 스타벅스나 유니클로 같은 브랜드 몰에서는 물건을 얼마 이상 구입을 하면 빨간 빈봉투를 무료로 나누어 준다. 그만큼 빨간 봉투에 돈을 넣어 주는 문화가 구정 때는 당연시되어있다. 물가가 오르고 경제가 급속도록 성장하면서 Li xi 리씨 머니 값어치도 함께 올랐다. 외국인들 거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아파트와 경비 아저씨, 가사를 도와주는 도우미, 매니지먼트 오피스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의 Li xi (리씨) 머니를 다 챙겨 주는 외국인이 있는가 하면 그냥 우리 집 가사 도우미와 기사 아저씨만 챙기는 집도 있다. 외국인으로 베트남에 거주하는 이상 그들의 문화를 따르고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을 하고 동의를 하지만 과한 빨강 봉투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돈을 챙겨 받는 베트남 근로자들을 보고 있다 보면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국제 학교에서 올해부터 학생들 전교생을 대상으로 빨강 봉투에 천동씩 넣어 주던 리씨 머니 규정을 없앴고, 학교 선생님들도 더 이상 리씨 머니 돈을 못 받도록 강력한 규제와 규정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나 외국인 단체에서는 여전히 구정 뗏 리씨 머니를 불우이웃 돕기처럼 모금함에 돈을 모으고 그 돈을 적당히 배분하여 경비 실과 메니져 먼트 사무실에 돈을 주기도 한다. 입주민으로 난 동참하지 않았다. 여전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난 빅씨에서 판매되고 있는 우리나라 '오리온 초코파이'와 '꽂데' 과자가 들어있는 과자 바구니를 사다 경비실에 가져다 줄 생각이다. 베트남 구정의 의미가 크기도 하지만, 24시간 근무하시는 아저씨들 추출할 때 간식으로 챙겨 드시라는 의미에서 이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과자 중 하나로써 구정 선물 패키지에 대표 과자라고 감히 말할 수도 있다.
축제 분위기다. 비록 코비드가 공존하고는 있지만 구정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워낙 큰 의미이므로 그 열기는 차마 꺾을 수 없나 보다. 뗏이 다가올수록 거리 곳곳에 꽃과 황금 귤나무를 내다 파는 곳을 골목골목에서 볼 수 있다. Cay qut (꺼이 꾸잇) 황금빛 열매가 달린 귤나무이다. 시내와 동네 곳곳 탁구공 만한 황금 열매가 달린 꺼이 꾸잇 나무가 집 앞을 장식한다. 이 나무의 의미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데 있어서 올 한 해도 좋은 결실을 맺게 해 달라는 염원이 녹아 있다. 이 뿐 아니라 분홍색의 호화 다오 (Hoa dao)와 노란색 호화 마이(Hoa Mai)가 호치민 도시를 꽃밭으로 채운다. 심지어 백화점 쇼핑몰 건물 안에도 이 꽃들로 꽉 채운다. 시내 일본 다카시마야 백화점에서 구정 맞이 50프로 세일을 했다. 필요한 생필품을 살 겸 다녀왔다. 백화점 일층부터 꽉 채운 화 마이는 또 다른 베트남 구정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호화다오와 호화마이는 설날 꽃나무로 지정된 나무이다. 이 꽃들은 거의 한 달 동안 꽃이 만개한 채 머물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베트남 상류층을 대표하는 보라색 ‘풍란’이 있다. 이 풍란은 꽃이 활짝 핀 채로 3달 이상 지속된다. 꽃의 생명력에 따라 집안에 복이 머문다는 베트남 사람들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상류층을 위한 꽃인 만큼 가격 또한 꽤 나간다.
'Tet Nguyen Dan’ 줄임말로 베트남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공식적인 연휴는 고작 3일에서 4일 정도이지만 거의 대부분 10일 에서 20일 정도 쉰다. 그리하여 구정 연휴 3일 전부터 무질서 호치민 도시는 고요한 도시로 탈바꿈을 한다. 빵빵 거리는 오토바이 경적소리, 먼저 가겠다고 울려 대는 자동차 크락션 소리는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과 함께 허공으로 떠났다. 베트남 전 민족 대 이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느 정도냐면, 시내에 바퀴벌레처럼 오골 거리는 오토바이 부대가 싹~ 사라지는 정도. 렌트 차량으로 가까운 곳을 놀러 가고 싶어도, 렌터카 차량 기사 아저씨들이 전부 고향을 내려가고 구정 연휴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랜트카 차량 회사가 문을 닫는 정도. 오롯이 대중교통이나 비행기밖에 이동 수단이 없다. 그만큼 큰 연휴이다.
가족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절을 돌아다니며 소원이 적힌 종이를 태우며 한해 금전운과 복을 갈구하는 소원을 빈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와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통 음식 반쯩이라는 떡을 먹고 덕담을 나누며 함께 잉어를 방생하기도 한다. '쭉 뭉 남 머이 Chuc muong nam moi'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애호하는 드립 커피를 마시고 복을 기원하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코비드 이전에 외국인들은 장기 10일 정도 되는 구정 뗏 연휴를 이용해 한국 방문 또는 가까운 동남아 혹은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경우도 많았지만 올해는 해외로 여행하는 가족은 단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최근에 베트남 국내 여행을 예약했다가 2주 전에 터져 버린 하노이 코로나 비상 상태로 베트남 국내 여행 계획을 취소하거나 금전적 피해를 입은 주변 인들이 꽤 많다. 환불 규정이 명시되어 돌려받은 가족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가족도 있다.
올 2021년 2월 구정은 한가하고 고요한 호치민이 아니라 복작 복작 거리는 호치민 구정이 될 것 같다. 베트남 국내 여행의 갑작스러운 취소와, 해외로 더 이상 자유롭게 나갔다 호치민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어우러져 고향으로 향하는 베트남 자국민을 제외하고선 아마도 대부분 집에 거주할 것 같다. 현재 상황이 하노이에 있는 음식점과 식당을 전부 락 다운시킨 만큼 어쩌면 자국민 이동도 이전만 못할 수도 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1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진행했던 새해 뗏 불꽃 구경을 위해 순박한 베트남 국민들이 모여들 수도 있지만 올해 우리 가족은 집 옥상에서 구경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