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우선 적자 -1일 차.
컴컴한 하늘이다. 오후 4시에 갑작스러운 하늘의 변화다. 거무튀튀하고 시커먼 구름이 파란 하늘을 단숨에 이불처럼 덮어 버렸다. '쾅' 큰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흔들거린다. 부엌에서 두부를 지지다 말고 베란다로 뛰쳐나갔다. 빨래건조대를 통째로 들고 거실로 밀어 넣었다. 우두두둑 왕방울 빗방울이 떨어진다. 제대로 된 비바람이 날린다. 번쩌적 번쩌쩍 불빛이 진회색 구름을 찢고서 새어 나온다. 곧 다시 한번, 큰 산 꼭대기에서 바위가 아래로 한 번에 떨어진 것과 흡사한 큰 소리가 들린다. 밖으로 나가기 무서울 정도의 소리다. 벼락 맞아 죽는다는 말이 진심으로 와 닿는 날이다. 기다랗고 꺽다리처럼 긴 야자수 나무가 흔들흔들거린다. 코코넛이 툭 하고 떨어진다. 저러다 지나가는 사람 머리 위로 떨어지면 큰일일 텐데. 아이는 무섭지만 신기하다는 듯이 한참 동안 밖을 주시한다.
도로는 물로 넘쳐났고 카카오톡 한국 교민 방에서는 응위엔 후깐 (Nguyrn Huu Canh) 도로가 물에 잠겼다며 사진과 정보가 함께 올라온다. 우리 집 아저씨는 분명 저곳에 갇혀 있으리라. 저 도로는 10년 동안 비가 오면 무조건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항상 잠기는 도로다.
오래전 추억이 하나 있다. 저녁 외식 후 갑자기 퍼붓는 비 때문에 힘들게 잡은 마티즈 택시 기사 아저씨가 더 이상은 갈 수 없다며 길 한가운데서 우리를 버렸다. 그 도로가 응위엔 후깐이다!! 차가 낮아 엔진에 물이 들어가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30분 동안 기다리다 잡은 택시였는데. 택시는 야속했다. 물은 나의 허벅지까지 찼다. 우산은 포기를 했다. 하수구가 막혀 허벅지까지 차 올라온 물속을 20분 동안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걷는 도중 움푹 파인 도로에 발에 빠지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보이지 않는 검정 물이 두려웠다. 우산으로 앞을 더듬듯 찍어가며 물속을 걸었다.
그날 난 자꾸 똥물이 생각나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굵직한 빗줄기는 맞으면 아플 만큼 세차게 쏟아졌다. 남편은 40분이나 늦게 귀가를 했고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한차례 날리 법석을 치던 하늘과 비는 서늘한 저녁 향기를 선물해 주었고 우리 가족은 오랫만에 늦은 저녁 산책을 하고 싶어 졌다. 대충 그릇을 치우고 밤마실 겸 아파트 주변을 걷기 위해 내려갔다.
서늘한 공기가 좋았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은 떨어진 나뭇잎과 야자수 잎사귀를 옮기느라 분주했다. 이상했다. 불안했다. 우리 차 옆이었다. 핸드폰 후레시를 켜서 차 옆으로 가보았다. 유리 플라스틱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번져 있었고 기다란 야자수 나무가 꺾여 쓰러져 있었다. 매서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대각선으로 쓰러지면서 나의 붕붕이 애마 백라이트를 초전박살 낸 것이다. 앗 뿔사!!! 다행히 사람이 아니라서,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남편과 난 핸드폰 플래시에 의존한 채 큰 조각과 작은 조각들을 모았다. 트렁크에서 장바구니를 꺼내어 고스란히 담았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 둘은 스카치 유리 테이프로 부서진 조각을 대충 맞춘뒤 형태를 만들고 차에 다시 붙였다. 퍼즐을 맞추듯 초 집중을 했고 작은 조각까지 빠지지 않고 맞추었다. 성공했다. 우리 둘 다리는 어두운밤 후레쉬 빛 때문에 모기떼 밥이 되었다.
다음날 아파트 매니저를 만났고 적당히 협상을 했다. 10일 동안 그 상태로 차를 몰고 다녔다. 백라이트와 트렁크가 맞물려 트렁크 문은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트렁크 문을 열면 스카치테이프로 붙인 백 라이터가 그대로 찌지직 하고 통째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유리테이프를 붙인 채 운전해보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수치심과 불안함 보단 열흘 동안 이렇게라도 차를 몰고 다닐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앞섰고 다른 곳을 긁거나 찌그러 트리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에 우쭐했다. 차가 공장에 들어가 며칠씩 고생 하는 것보단 양호했다. 그리고 더욱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일. 아파트 기사 아저씨들과 정감이 오고 간 순간들이 생겼다. 그들의 배려는 따뜻했고 감사했다. 스카치테이프로 백라이트를 붙인 채 즐거운 마음으로 동네를 휘졌고 다녔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나의 차와 난 유명 인사가 되었고 아저씨들 사이에 특별 관리 보호 대상 차라도 된듯 대접을 받았다. 파킹 장소까지 웃으며 양보를 해주셨다. 후진을 할 때는 차에서 직접 내려 뒤를 바 주셨다. 무엇이었을까? 10일 동안 그 특권을 난 누릴수 있었다.
아파트에서 섭회 한 자동차 정비 회사에서 출장을 와 주었다. 백 라이트를 교체하는 날 얼굴도 모르는 기사 아저씨 3명은 구경을 한뒤 이젠 괜찮다는 듯 웃었다. 처음 혼자 운전을 할 때 느꼈던 아저씨들의 시선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난 고개를 들어 아저씨들 얼굴을 한번 처다 보았다. 크게 웃지는 않았지만 똘똘해 보이기 위해 미소만 살짝 보였다. 만만해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눈에 힘을 살짝 주고선 집으로 빠른 발걸음으로 향했다.
경비 아저씨들도 손을 흔들어 주셨다. 조심히 안전 운행을 하고 돌아오라는 의미이다. 아파트 입구를 나갈 때 들어올 때 항상 히틀러처럼 손을 번쩍 들어 경래 인사를 한다. 커피 사탕을 한봉 사다 경비 아저씨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사탕 한 봉지에 어찌나 좋아들 하시는지. 그들과 난 그렇게 관계를 맺어 가고 있다.
시시 콜콜한 이야기.
나에게만 일어나는 이야기.
3일 연달아 일일 연재 시작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