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른 즈음에

Am, Dm, Em

by 달게

하와이 우쿨렐레는 내게 너무 소(小)중했다.

프렛과 프렛 사이에 손가락 네 개가 들어가기에 벅차, 코드 C를 찾는 새끼손가락이 네 번째 프렛에서 헤매기 일쑤다.


작디작고 좁디좁은 나의 소중한 하와이 우쿨렐레를 누군가는 인정해 주겠지 싶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물건의 가치를 높이기도 하니까. 비슷한 제품이 흔하게 팔리고 있었다. 가격도 내가 하와이에서 샀을 때와 비슷했다.


말이 길어지는 이유는, 인터넷을 찾으면 찾을수록 9년이라는 세월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돼서다.

에릭 클랩튼이 사용한 블랙키로 불리는 전자기타가 자선경매에서 13억 원에 낙찰됐다는데, 손가락 네 개가 다 들어가지지 않아 심통이 나니까 애먼 생각이 들었다.


"스트랩 핀 달아드릴게요."

선생님이 내 우쿨렐레에 못을 박으려고 해서, 급하게 질문했다.

"못이 박히고, 구멍이 나면 소리에 영향이 없나요?"

"있을 수 있죠. 0.000001%? 그걸 들을 수 있는 분이라면요."

나는 일주일 동안 희망 고문했던 질문을 이어서 했다.

"제 우쿨렐레는 어디 경매에 내놓으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오만 원?"

내 우쿨렐레를 경매시장에 내놓을 일은 없겠구나. 당근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겠다.

스트랩핀 덕에 한 오만 삼천 원.


일주일 동안 연습한 C, F, G7을 자랑스럽게 둥당거렸다.

"빨라요. 빨라."

"속도는 뭐다? 쓰레기다. 천천히 치세요."

"오늘은 Am, Dm, Em 코드입니다."

"코드를 잡을 때 한꺼번에 자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차례로 이동하세요. 지금은 소리가 깨끗하길 바라지 마요."


서른 즈음에는 처음 배운 C, F, G7에 오늘 배운 Am, Dm, Em, 거기다 D까지.

나는 기호에 많이 약하다. 그래서 악보 보는 것이 어렵다. 코드 연주는 내게 어려운 기호에 근접할 수 있게 용기를 준다. 외우면 된다. 외우자! 몇 개 안 된다! 선생님도 용기를 주신다.

"코드만 외우면 노래 다 연주할 수 있어요."


-C---Am---Dm-F-

G7---Am-G7-F---Dm-F-G7--

천천히, 천천히, 노래가 이렇게 길었나? 서른 즈음에 다다르는게 이렇게 오래걸렸을까?

노래는 끝나지 않았지만, 점심시간이 끝났다.


내 우쿨렐레는 당분간 어디에도 보내지 않을 거다. 이베이에도, 당근에도.

이참에 이름을 지어 줘야겠다.

오늘부터 너는, 나의 '블랙키'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1화줄이 하나 없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