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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의 자세

근무조와 업무분장

by 오늘살이 Feb 22. 2025


다음날, 예행연습으로 일찍 집을 나서서 스타벅스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시간..

작년부터 아침에 일찍 나와 카페에서 커피마시면서 책 읽고 출근하는 루틴을 만들어, 꾸준히 책도 읽고 에너지도 충전하고 참 좋았었는데.

이제 그런 여유는 없을 것 같아 아쉽다.

<제철행복> 읽으며, 이렇게 시절을 따라 알맞은 행복을 찾으며 살아야지, 또 사계절이 지나고 나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을  보았다.



오늘은 교직원 연수에서 인사만 하면 된다고 했다.

어제와 같이 8시 30분까지 가서, 휴게실에 앉아 인사하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순서에 따라 새로 오신 선생님들과 공무직 선생님들의 인사 시간이 있었다.

그냥 앞에 나가서 인사만 하는 줄 알았는데, 한 마디씩 하도록 마이크를 넘겨주셨다.

교무행정원, 사무행정원, 늘봄실무사, 조리실무사… 다 타학교에서 전근을 오셨는데, (완전)신규는 나 혼자였다.

얼마나 쭈뼛거리며 얼굴을 쓸어내렸는지..

인사를 마치고 나와서, 다시 휴게실로 돌아왔다. 오늘은 바로 집에 가면 되는 건가?

우선 조리사님이 바빠 보이시고 ‘이제 가라’는 확실한 말씀이 없으셔서, 그저 언니들의 재미나는 이야기를 듣고 앉아 있었다.

친절한 말투로 아이들은 있는지, 출근은 어떻게 하는지 이것저것 질문과 답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자기를 풀어놓 시간..

아이가 셋이고, 막내가 이제 초2라고 하니, 다들 아이고~ 웃음 반, 탄식(?) 반의 추임새가 나왔다.

언니들의 근무경력을 세어보면, 대부분 내 나이보다 더 적었을 때 이 일을 시작했고, 나처럼 어린아이들 키우면서 비슷한 경험들을 하셨지 않았나 싶다.


“나도 둘째 초등학교 입학할 때 일을 시작해서, 아침에 아이 머리를 묶어줄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애가 지 오빠한테 머리 묶어달라고 막 떼써서, 첫째가 머리를 묶어주고 학교를 가더라고”


나와 나이가 같지만, 6년 차인 선배님이 그러셨다. 아, 나도 지금 그게 고민인데..!

다들 맞벌이, 직장생활 시작하면서 겪는 일인 건데..

줄곧 해 온 아르바이트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낮 시간이라 그런 걱정이 없었다.

이렇게 이른 출근은 처음이라 아이들끼리 등교하는 그 시간이 걱정되고, 부쉐쉐한 모습으로 학교 가는 딸을 상상하니 마음이 에인다.

그나마 2학년에 올라가서 나을 거라고 스스로 불안을 잠재워보지만, 막내는 막내라 마음 한 구석이 짠하고 그렇다.

더 보듬어주고, 더 함께해주고 싶은 마음.. 요즘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된다.

해맑고 씩씩한 막내는 자기가 머리를 묶어본다고 매일 연습 아닌 연습을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애보다 내가 걱정이다.

당장 개학일부터 일에 투입되어야 하는데… 나야말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가 아닌가.




근 3달간의 근무조표를 나눠주셨다.

나 말고도 타학교에서 오신 선생님도 3분 계시니, 기존에 계신 분들과 짝지어서 조를 미리 정했다고 하셨다.

조편성은 공평하게 뽑기로 한다고.ㅋ 수습기간이 끝나면 나도 직접 조 추첨에 참여할 수 있단다.

2인 1조를 만들어, 2일씩 근무조가 로테이션되는데, 조는 - 밥, 국, 주찬, 부찬, 도우미, 기계 - 6개로 나뉘었다.

각 조마다, 그리고 실무사 1, 2로 나누어서 상세하게 업무가 기록되어 있는 업무분장표도 받았다.

출근 후 기본업무세팅부터 급식실 정리정돈, 마지막 청소와 요일별 청소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적혀있었다..


개학 첫날, 나는 ‘부찬’ 조.

아직은 물품이 어디에 있고,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도 잘 파악하지 못했으니 2를 맡되, 같은 조 언니를 따라서 1과 2의 업무 모두 배워갈 수 있다.

집에 가기 전에, 미리 같은 조 언니에게 첫날 해야 할 업무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하나하나 설명을 듣고, 궁금한 것들 물어보면서 메모도 하고, 기억하려고 애썼다.

어떻게 하루일과가 돌아가게 될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사실 급식시스템을 조금은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이 업무들의 연장 속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 예상되는 것들이 있다.

업무강도가 센 만큼, 서로 합이 맞지 않았을 때 예민해지기도 하고,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무슨 일이든 이구동성, 일이 힘든 것보다 사람이 힘든 게 더 견디기 힘든 것이라 하지 않던가.

매일 급식메뉴에 따라서 업무비중이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기본 자신의 업무를 끝내고 틈이 나면 다른 조의 일을 거들어주는 게 인지상정.

업무분장표에 일이 나눠져 있다고 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급식업무에서는 책임감과 협력이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자질이다.

일에 대한 설명은 아무리 들어도 당일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투성이일 것이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그려봐도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 때마다 질문하며 알아가야 하겠지.

그렇다고 스스로 숙지하지 않고, 매번 물어보면 업무상 브레이크가 걸리면 일이 안되니까, 전날 미리 알아둘 건 물어보고, 미리 익혀놔야 한다.


“ 처음이고, 아직 일을 잘 모르고, 당연히 속도가 빠를 수도 없다는 거 (우리도) 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해봅시다~”


집에 가는 길에 업무표를 보면서   바퀴씩 전체과정을 그려보, 정말 일과가 빠듯하다.

식수가 많으니, 1~ 3차 배식 틈에도 할 일이 많다. 집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이 노련한 언니들과 환상적인 팀워크로 매일을 헤쳐나가게 되겠지.

성실하게 배우려는 자세, 그리고 돕는 마음으로 시작하자 스스로 다짐한다.

나는 막내니까.  혼나고  실수하면 어때. 너무 떨지 말자고.. 너어무~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지 말자.

막내는 막내답게~!  실수도 좀 하고, 그러면서 웃음도 주고(?) 그런거지..

 못해도 괜찮아~~~안그래요?! (이건 너무 많이 갔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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