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상해일지 22화

[상해일지] 기다림의 미덕

by zunrong

[2024-09-22]

난징동루 편에서 간단하게 끝내려고 했던 글의 후속 편을 써보려고 한다. 와이탄의 밤 야경을 이대로 그냥 넘길 수가 없기 때문.


'The press'카페에서 나와 곧바로 'FIVE GUYS'로 향했다. 카운터에 가서 메뉴를 보고 치즈버거라고 입을 떼었을 때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 뒤로도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신다. 이미 얼타기 시작한 나는 손가락으로 엄한 메뉴판만 계속 가리켰다. 뇌에서 보내는 뉴런 신호를 받기에는 뇌에도 물음표만 가득 차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에는 늦은 상태. SUBWAY에 처음 갔을 때 어떻게 주문하는지 몰라 어버버 했던 기억, 지하철을 처음 탈 때 타는 법을 몰라 표를 넣고 그대로 다른 출구로 나왔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네??”(이제 그만 해답을 내려 주세요. 제발.)


다행히 눈치 빠른 아르바이트생은 주문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첫 'FIVE GUYS' 영접!! 미국으로 출장을 갔을 적에 맥도날드, 치플레, 인 앤 아웃, 동네 수제버거까지 다 접수했었는데 'FIVE GUYS'만 스킵했었다. 아마도 이제 와서 새롭게 경험해 보라는 과거의 나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이런 배려까지는 필요 없는데 눈치 없는 것. 평소라면 치즈버거는 쳐다보지도 않지만, 사악한 가격 때문인 건지 허기가 져서인 건지 육즙과 적당히 녹아내린 치즈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IMG_9380.jpg?type=w966 사진 스킬이 날로 죽어간다.

주문하는데 상당한 노동력을 투자한 덕에 햄버거는 맛깔나게 해치울 수 있었다. 아! 감자튀김도 맛있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먹지는 못했다.

output_743618792.jpg?type=w966 이 정도면 사진에 정성이 부족한 게 맞다.

창피함은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무거워진 몸을 꾸역꾸역 이끌며 다시 와이탄으로 향했다. 와이탄에서 한참을 걷다가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 재빨리 눈여겨뒀던 1등석에 자리를 잡았다.

IMG_9397.jpg?type=w966 한 장 겨우 건졌다.

10분,,, 20분,,,30분,,,,,,1시간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어둑어둑 해졌고, 하나 둘 건물들이 발광체가 되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감성에 젖어 난간에서 지나가는 유람선을 구경하며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리니 모든 건물이 한순간에 빛을 내기 시작했다.

IMG_9416.jpg?type=w966 빠밤

‘와’


야경을 보기 위해 기다렸던 수많은 사람들도 짧은 환호성을 내뱉었다


모든 불이 켜진 와이탄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몇 번을 봐도 너무나 만족스러운 장면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면 보통 기대감이 커진다. 그리고 기대감이 너무 커지면 결과물에 실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두 시간 동안의 기다림 한순간 순간이 너무 아름다웠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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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클라이맥스를 보기 위해 기다린 것도 맞지만 그 과정을 모두 보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미덕이란 게 이런 과정을 말하는 것이었나 싶다.


IMG_9423.jpg?type=w966 보너스 컷: 난징동루, 장인은 아니니까 카메라를 탓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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