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으로 가는 길이 여기 맞나요?] 첫 입주

by zunrong

대한민국은 일론머스크가 인정한 저출산 사회이다. 작년 말까지, 아니 올해 초까지만 해도 출산, 혼인 비율은 계속해서 그 바닥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숫자들에 크게 연연하지도,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그냥 뭐 ~ 그렇구나 ~' 정도의 관심이랄까. 결혼은 막연하게 하고 싶었고 아이도 막연하게 가지고 싶었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딱 그 정도였다.


그러던 나에게 변화가 찾아온 건 상해를 다녀온 뒤 시작한 소개팅부터였다. 연애 휴식기를 가진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어가고 있었고, 결혼과 출산은 현실적인 문제였지만 연애만은 그 고민에서 빼내고 싶었나 보다. 소개팅이 들어오면 거절하기 바빴는데 오히려 적극적으로 소개팅을 해달라며 주변 사람들을 한참 귀찮게 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소개팅 경험이 많이 없다 보니 '책으로 공부했어요~'가 아닌 '유튜브로 공부했어요~'를 시전 했다. 소개팅 준비물부터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기본 에티켓과 센스등을 공부했고 감정이입하며 다른 사람들의 소개팅 영상을 돌려보곤 했다. 어느덧 경지에 다다라 초반에 대화하는 것만으로 커플 성사 여부를 예측하고 대부분 맞히는 경이로운 성과를 내보기도 했다.(쓰면 쓸수록 무언가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연습을 했다면, 이제는 실전에 적용할 때가 왔다. 때마침 소개팅이 하나 들어왔고 커플 성사 여부를 수없이 맞춰왔던 나였기에 호기롭게 도전장을 들이밀 수 있었다.


퇴근 후 초췌한 모습으로 방문한 잠실은 금요일 저녁을 알리듯 사람들의 발소리, 말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약속한 식당 앞에 가기 전 화장실에 들러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엘리베이터 탈때와 내릴 때가 다르다는 면세점에서 20만 원가량을 주고 산 조말론 향수를 몸에 덕지덕지 뿌려본다. 3월이 다가오는 아직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거울에 보이는 모습은 완벽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후...' 쉼 호흡을 한 번 하고 카카오톡을 보낸다. '가게 앞에 검은색 재킷 입고 있습니다!'. 이때부터는 상대방이 오기 전까지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소개팅 상대가 된다. '저분인가?, 설마 저분??, 아니 이분인가?? 누구지??' 괜스레 진동도 없는 핸드폰만 바라보며 바쁜 척도 해본다. 그렇게 이번에도 '저분인가?' 하며 지나가던 분이 무언가 멈칫함을 보이셨다. 써로 쭈뼛쭈뼛 눈치를 보다 내가 먼저 입을 떼었다. "혹시.. 00님 이실까요?". 상대방분(굉장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이지만, 지금의 여자친구가 맞다)의 맞다는 대답을 듣고 곧바로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아이엠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가 시작됐다. I들의 자기소개란 적당하게 어색한 미소와 사회생활로 단련된 리액션 정도라고 봐주면 된다. 유튜브에서 선행학습을 했던 모범생이었기에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를 리드해 갔다.


"서울 분이세요?" 당연히 서울 분이라고 생각했기에 했던 질문이었는데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요. 저 강원도 동해사람이에요!" 동해라니,, 동해는 나에게 인연이 깊다 못해 제3의 고향쯤으로 불리는 곳이었는데 그때부터 무장해제가 되기 시작했다. "홍대포 아세요?" "000은요?" "아 ~~ 000 저도 아는데 00은요??" 속사포로 질문을 쏟아냈고, 진중함은 개나 줘버린 듯 나 자신과 물아일체가 된 채 끊임없이 수다를 이어갈 뿐이었다. 시간은 어느샌가 두 시간이 지나가 있었고 그렇게 2호선과 8호선으로 나눠지는 지하철역 중간에서 각자의 길로 몸을 틀고 있었다. "연락드릴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마지막까지 수다를 놓지 못한 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 머리가 멍해지는 시간이랄까.


다행히도 수다스러운 나의 모습을 좋아해 주셨고, 그다음 만남에 첫 입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 이사를 갈 때면 항상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상태에서 입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나의 취향을 묻히고, 추억을 묻힌다.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은 오직 나만의 공간으로 재 탄생하여 꽤나 볼품 있어진다. 그리고 또다시 이사를 가야 할 때 다시 아무것도 없는 처음의 그 공간으로 돌아간다.


연애도, 사랑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으로, 그 사람과 취향을 공유하고 추억을 쌓는다.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은 어느샌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있고,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중요한 공간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떠날 때, 일면식이 없었던 사람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고 처음의 상태로 돌아간다.


매번 그 상황의 반복이었다면, 이번에는 자가(?)를 가져보려고 한다.(자가란 동시에 꿈이기도 하다.)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그 공간으로 입주를 해보려고 한다. 어려움도 있겠지만, 채우다 보면 넘치다 못해 버려야 할 것들이 생기겠지만, 그 모든 과정들 또한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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