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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화일 Mar 06. 2024

그렇게 됐다

프롤로그

결국 런던에 남기로 했다.



런던에 처음 오자마자부터 쉴 새 없는 변동의 삶을 살고 있기는 했지만 지난여름부터 올해 초는 특히나 큰 변화의 연속이었다.

몇 년 만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생활을 다시 시작하고도 여기가 좋아 더 머무르고 싶다는 말에 한번은 현실도피성 해외 이주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정곡을 찔렀죠?


구색 좋게 영어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달리기를 멈추어버린 생활. 잠시 숨만 돌려도 뒤처지는 것 같고 매일 또 다른 배워야 할 것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다급했던 한국을 잠시 떠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사실 편하지 않다. 미래가 더 이상 불투명해서는 안 될 것 같고 노후 준비는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나이에 기껏 모은 통장을 축내면서 1년을 보내겠다니. 가끔 뒤돌아볼 때마다 미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여전히 현실을 외면하고 외딴 나라에 발을 비비며 버티고 있는 건 더 이상 퇴근을 한 후 빈둥거리는 저녁 시간이 죄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바깥을 나가 한낱 카페 하나를 가더라도 새로운 문화에 부딪히는 삶, 내가 굳이 공들여 배울 걸 찾고 공부하지 않아도 피부로 새로움이 매번 와닿는 삶이 게으르다는 자책을 덜어주었다.


차고 넘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해외살이가 좋아진 건 여기서는 한국에서 흔히 칭하는 소위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이곳 노동자들의 아등바등한 삶을 이방인인 나는 모른다. 물가 비싸고 정신머리 빼곤 모든 게 구식인 이 나라에서 터를 잡은 그 애환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기에 이들의 느긋한 태도와 넘치는 대영제국의 자기애가 더 질투 나는 건지도.


하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남의 눈치가 보이지 않고 어디에나 산책을 나갈 공원이 있는 문화가 주는 여유는 말로만 설명하기가 어렵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과 눈치가 보이는 것은 아주 다르다는 것을 다른 사회에 발을 담그고 나서야 체감했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런던의 강렬한 첫 이미지였다.

사람에게 거는 기대를 처참하게 깨트린 첫 직장생활만큼이나 단기간에 가치관과 성격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중에서도 해외살이의 특별한 장점을 꼽자면 여태 내가 소속한 구역을 벗어나 이방인이 됨으로써 모든 장면이 보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펼쳐진다는 것.

지금 눌러앉아 있는 영국을 비롯해 태어나 지금까지 나의 기준이었던 내 나라까지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된다. 마치 극장에 두 대의 영사기를 돌려놓고 관객석에 앉아 있는 관찰자가 된 시점(그리 태평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매사가 촘촘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에서는 멀어지고 변할 듯 안 변할 듯 결국 변주만 약간 주고 마는 영국에는 스며들어 있다 보니 이 차이가 더 크게 보인다.


영국에 잠시 소속된 이방인으로서 또 다른 타국을 가면 할 말이 더 많아진다. 여행지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뜨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라 자부했지만 해외살이 이후에 떠났던 여행은 모양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끝없이 한국에서 온 나와 영국에서 온 나의 시선을 비교하게 되고 스스로 느끼는 관점도 더 풍부해졌다.



이제는 정말 너무 많은 문화가 섞이고 융화되어 버린 런던에서 여전히 언젠가 떠날 이방인으로서 머무르고 있는 해외살이와 런던을 거점으로 두고 떠돌아다니는 작고 큰 여행들의 여정을 어설픈 기억에 의존해 풀어보려는 이번 여행기.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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