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땅

캘리포니아 그녀 14화

by 이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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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인간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거냐?"


김용덕은 잔뜩 뿔이 나 있었다.


"사람들이 교과서 범주 안에서 산다고?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


장욱진은 어이없다는 투로 비아냥거렸다. 복학생의 기세에 제압당하는 듯한 표정을 잠시 지었지만 조금도 물러설 뜻이 없는 후배들은 생전 만나보지 못한 낯선 생각에 대해 온몸으로 저항했다.


"한두 명쯤은 교과서 밖에서 살겠지요.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 울타리 안에서 잘 먹고 잘 자요. 넓게 보면 선배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아침이면 일어나 출근하거나 등교하거나 움직이죠. 점심땐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점심을 먹어요. 일하거나 수업을 듣거나 상관없이 저녁이면 다시 집으로 가죠. 물론 여러 소문은 들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대부분은 잘 짜인 생활 안에서 스스로 만족하면서 살아요. 일탈하고 싶은 용기가 왜 없겠어요? 하지만 일탈하지 않죠. 생활이 흔들릴 거라는 걸 빤히 알고 있으니까요. 국방부 시계도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나요?"


국방부 시계 얘기에 뒤통수 얻어맞아 할 말을 잃었다. 후배는 생활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생활 속에서 존재하기 위한 안간힘은 관심조차 없거나 알지 못했다. 생활과 생활 속에서 존재하기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그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을 인지하기에 경험도 부족하고 안목과 인식은 애당초 없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말로 설명하거나 촘촘한 논리로 풀어낼 수 없다는 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아무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고 해도 누가 믿는가. 부모가 자식을 이기는 경우가 있던가. 경험은 언제나 개체의 존재 앞에서 무릎 꿇을 수밖에 없고 후회와 자책은 판도라 상자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법, 팔각모자 김용덕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남자와 여자는 사람이지만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장욱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화성과 금성에서 각각 왔다니까 다르겠죠."


"맞아. 화성과 금성의 거리만큼 둘은 달라. 하지만 사람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지. 그것처럼 생활과 생활하기는 달라. 생활은 네가 방금 말한 것처럼 아침이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먹고 시간 되면 퇴근하고야. 그게 생활이야. 하지만 생활하기는 다르지. 5분 더 자고 싶은 욕망, 좀 더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욕구, 일찍 퇴근해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열망…. 요컨대 숲은 보지만 나무를 보지 못하는 격이야. 아니 나무가 없는 유령 숲을 보고 있다는 말이지. 시(詩)는 말이야, 저기 산이 있네요, 올라가니 숨이 차네요, 꼭대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개미처럼 살아요,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들어요, 오늘도 즐거운 등산이었어요, 이딴 식이 아니란 말이지."


"치열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생활이 삶의 껍데기라는 걸 몰라. 시는 생활하기에 관심이 있지."


김용덕은 거들었다.


"캘리포니아 편지가 생활을 얘기하고 있다며 읽었겠지? 아니야. 생활하기야. 그녀는 낯선 땅과 문화 속에서 연탄이 되는 사람들을 두 눈으로 비로소 확인한 거지. 얼마나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워? 물론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야. 그녀 탓이 아니라 그녀와 내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야. 태극기 휘날리며는 좋은 영화야. 아주 잘 만든 영화지, 시대의 욕구를 대단히 잘 표현한. 그녀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연탄이 되어버린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 불량품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야. 소위 말하는 삐딱한 연탄이 있지. 모든 시는 삐딱한 거야, 교과서에서 한참. 남과 같거나 비슷해지려고 삶을 살지 않지.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드는 스멀거림이 상징이라고? 아니야. 오히려 대령 출신 원장이 상징이지. 오독이 뭔지 알아?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오독이야, 스스로 자기 안에 갇히는. 그러면서 끊임없이 마취하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자신이 유일한 세계수(世界樹)야. 코미디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후배의 얼굴은 난공불락의 견고한 거대한 성이며 요새였다. 애당초 설득하거나 감동시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김용덕과 장욱진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잡이로 떠들었다. 기득권이 소낙비처럼 퍼붓는 교과서의 물량 공세를 견디며 삐딱이가 되려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쩍쩍 갈라지는 혓바닥 위로 둘은 소주를 힘껏 밀어 넣었다.


"저마다 입장이 있으니까 이해해라. 윽박지르는 게 아니니까. 알겠지?"


김선미는 후배들을 다독였다. 후배들은 강의실과 문창반이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뒤늦게 눈치채고서 난감해했다. 장학금 받으려면 강의실에 충실하고 충성해야 하는데 문창반은 완전히 생뚱맞은 것들을 풀어놓고 있으니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참 착해서 좋은데 나사 몇 개가 빠진 게 분명하다는 판단을 후배들은 주섬주섬 맞추었다. 장욱진은 그런 후배들 표정을 쓱 훑어보았다.


"맞아! 부모가 자식을 이겼으면 벌써 안드로메다까지 정복했을 거야! 마셔랏!"


장욱진은 잔 들어 내밀지만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소주잔 부딪치는 후배들은 복학생들이 서둘러 한 방울도 남김없이 혓바닥 너머로 소주 털어 넣을 때 슬그머니 술잔 물컵에 비워냈다. 사람들 사이에 거대한 강이 쉼 없이 꿈틀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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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어? 우리와 다른데?"


김선미가 복학생을 위로했다. 후배들은 저마다 약속이나 한 듯이 한 걸음 떨어져 자기들끼리 무리 지어 머리 맞대고 쑥덕거리고 있었다. 서너 사람 이상 되면 아무리 흥미진진한 얘깃거리에도 지방방송이 생기게 마련이라 김용덕은 덤덤했다. 더구나 통번역보다 어려운 마음속 얘기가 술술술 상대에게 닿으리라는 기대는 김선미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말들은 입장을 이해하거나 동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주장하기 위한 싸구려 액션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누구든 자신의 경험에 갇히니까 욕할 일도 아니지. 어쩌면 우리도 마찬가지야."


장욱진은 내려놓을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내려놓았다는 투로 말하면서도 힐끗힐끗 후배들을 훔쳐보았다. 후배들은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집중했다. 방탄소년단의 멋진 군무와 토박이 발음,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예사롭지 않은 기괴한 몸짓과 이날치의 새로운 음악, 꽃뱀으로 추락한 짝사랑하는 이쁜 연예인…, 프리미어리그의 마법 같은 멋진 중거리 슈팅…, 세상은 보고자 하는 것들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좀 수상하지 않아?"


김용덕은 골똘한 표정, 입가에 씁쓸함까지 남아 있었다.


"뭐가?"


"얼굴 맞대고 냄새 맡으면서 표정도 읽어가면서 몸짓도 눈여겨보면서 느끼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수상해졌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캘리포니아 땅이 원래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가보지 않은 땅에 대해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추론이야. 수상하다기보다는 변화? 누구나 변하잖아? 기억 속의 그녀를 붙잡아 두고 그것만이 그녀라고 믿는 건 엄청난 실수야. 그녀도 지금 우리를 만나면 엄청 변했다고 할 거야, 늙었다고 하거나."


"복학생은 원래 늙은이 아닌가? 형들은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해."


김선미는 후배들 무리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장욱진과 김용덕은 쓴 입맛을 다셨다. 무거운 침묵 사이로 후배들의 말들이 흘러들어왔다. 범이 산에서 내려올 때는 도둑처럼 슬금슬금 내려와. 그렇게 상큼한 여자애가 꽃뱀이라는 건 아무래도 언론 플레이야.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해도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소문을 어쩔 거야? 허벅지 두께가 장난 아니야. 축구 선수들은 원래 그런가?


"조셉이 수상해. 아주 대놓고 들이대잖아?"


김용덕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조셉을 질투하고 있었다. 편지가 아무리 진정성 있다고 하더라도 문장과 문장 사이, 단락과 단락 사이의 비어 있는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울 수밖에 없는 터라 팔각모자 김용덕은 멀쩡한 정신이면 드러내지 않을 질투를 풀어놓았다. 눈앞에 있다면 해병대 정신으로 가차 없이 두들겨 매운맛을 보여줄 태세였다. 장욱진은 피식 웃었다.


"네이비실인지도 모르잖아? 우리가 아는 거라곤 그녀가 캘리포니아에 있다는 것뿐이야."


"언니가 무얼 하든 형들이 신경 쓸 필요가 뭐 있어? 가만 보면 정말 웃겨!"


김선미는 버럭 화를 냈다. 애당초 여자는 남자의 부속품 출신이라는 갈비뼈 하나에 불과하다는 낡고 오래된 유구한 우월 인식이 역겹다는 투였다. 그랬다, 김선미는 돌싱이었다. 충분히 화낼 자격이 있고 결혼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복학생들에게 장광설 퍼부어도 딱히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다.


"야, 넌 왜 말이 없냐? 부처냐?"


"내가 뭘?"


"너도 짝사랑이었잖아? 너뿐이냐? 장욱진도 마찬가지고 김선미도 그렇잖아?"


김용덕은 억울한 누명이라도 뒤집어쓴 모양처럼 투덜거렸다. 김용덕의 말처럼 굳이 입 밖으로 밝힐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모두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명백하고 분명하고 또렷하고 움직일 수 없는 기억이고 아껴서 오래도록 간직할 과거이며 현재진행형이었다. 김용덕의 설레발이 우리 모두에게 오지랖이 아니라 애정의 표시이며 모른 척 손 놓을 수 없는 관심이며 캘리포니아의 모험이 무사히 안전하게 끝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유구무언이다. 그런데 조셉은 얘기하면서 샘 얘기는 왜 아끼는 걸까?"


장욱진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느긋한 엷은 웃음 머금은 김선미는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김용덕은 골치 아픈 숙제를 떠맡은 말단 회사원처럼 미간을 찡그렸다. 김선미가 나가면서 반쯤 열린 방문 밖으로 산정호수의 어둠이 얼음장처럼 단단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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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낮고 두껍게 내려앉은 구름층 아래로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었다. 문창반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행기는 체육관 지붕에 항상 불시착했다. 뒤포까지 날아갔던 적이 몇 번 있었나? 과연 있기나 했나? 쓰다만 시(詩)를 비행기로 접어 세상 향해 힘껏 던지는 짓거리도 지루해져 갈 무렵 문이 슬그머니 열렸다.


빠끔히 열린 문틈 사이로 고개 내민 박철수. 너 혼자냐? 상황을 파악하는 물음이라기보다 실망이 또렷한 말투. 오랜만에 왔더니 아무도 없어서 혹시나 하고…, 주섬주섬 늘어놓으며 문창반으로 들어왔다. 요즘 뭐 하고 살아? 졸업했다는 얘긴 들었는데? 손은 여전히 비행기 접으며 예전보다 훨씬 수척해진 박철수 얼굴을 다시금 확인했다. 녀석의 얼굴에서 갓 잡아 올린 고등어처럼 펄떡펄떡 생동감 넘치는 희망은 읽을 수 없었다.


오히려 못 보던 사이 폭삭 늙어버린 느낌이 앞서서 어색함마저 들었다. 한동안 침묵이 쌓였다. 어색함이 단단해지면서 몸을 옥죄었다. 김선미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작은 공장에 다녀. 노조 만들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 돌아왔어? 정작 묻고 싶은 것인지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누가? 장욱진? 비행기 접던 손이 멈칫했다. 귀국할 때가 지나지 않았어? 박철수는 뒤늦게 무심한 투로 말했다.


아직. 간혹 편지 오는데 돌아올 낌새는 전혀 없던데? 실망과 아쉬움이 박철수 얼굴에서 출렁거렸다. 사회생활에 치이다 보면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남자는 여자에게 위로받고 싶은 걸까? 막연한 기대가 완벽하게 무너진 박철수에게서 그런 느낌 들어 언짢은 기분에 휩싸였다.


캘리포니아 그녀와 박철수가 어떤 사이인지 알 수 없어도 교도소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위로와 격려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바닥나버린 그녀의 위로가 간절히 필요한지도 몰랐다. 박광호 부장이라고 있어. 느닷없이 사표 내더니 시를 써. 간혹 만나는데 처음엔 다들 돌았다고 생각했어. 멀쩡하게 회사 잘 다니다가 갑자기 시인이 되겠다고 했으니까.


나랑 수없이 부딪쳤어. 노조를 왜 만드냐고 회유도 했지. 그런데 회사 관두곤 오히려 도움 주려고 해. 물론 아직까진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사람 변하는 거 보니까 참 우습더라. 나도 변해야 하는데 그녀가 발목 잡고 놓아주지 않는 거 같아…, 나만 이러는 거 아니겠지? 제멋대로 냉정하게 가버린 시간만큼 흐릿해지고 막연해지는 그리움보다 더욱 절실한 현실적인 위로를 몸과 마음이 간절히 원하고 바라고 있는 눈빛을 감당할 수 없었다. 눈길 돌려 비행기를 힘껏 날렸다.


한층 두꺼워지는 구름 아래 이리저리 실핏줄처럼 이어진 좁은 골목들이 을씨년스러웠다. 한바탕 왁자지껄 소낙비라도 내렸으면! 사실인지 풍문인지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으나 중앙모텔과 인철수와 거울 안에 갇힌 그녀와 샤워하는 물소리…, 박철수는 그녀에게서 어떤 현실적인 위로를 받았을까…, 근거 없는 추측이 야생마처럼 제멋대로 상상으로 건너가 날뛰자 마음 안쪽에서 아린 통증이 밀려왔다. 자살이야.


충격이 어마어마했을 거야. 다 키운 딸이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 잠들 수 없었다고 하더라. 사내는 집행유예도 아니야. 무죄야. 인과관계가 없다는 거야.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거야. 유서도 없어. 그 흔한 일기조차도. 박광호 부장이 왜 시인이 되려고 했을까? 시인은 모두 그런 아픔이 있는 거야? 박철수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비록 생면부지 박광호 부장이지만 대단한 양심선언 하듯이 별안간 쏟아진 말을 듣게 머릿속이 마구 엉클어졌다. 넋이라도 위로하려고 시를 쓰는 걸까? 분노와 복수심을 다스리려고? 사실 문창반 사람들 맨날 술 퍼먹고 다닌다고 술꾼이라고 깔봤어. 정신 말똥말똥 차려도 이길까 말까인데 술 퍼먹고 취해서 해롱해롱하는 거 많이 봤잖아? 세상의 모든 재판은 연극이야. 정의나 올바름, 혹은 사람다움과 전혀 관계없어. 기득권들의 굿판이지. 그래서 노조가 필요해. 박광호 시인이 도와주고 있지만 사실 힘에 부쳐.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어, 애당초. 끝까지 가볼 거야.


박철수는 천천히 비행기를 접었다. 구름이 두꺼워질수록 날은 어두워져 갔다. 은밀하고 수상한 골목들이 하나씩 지워지고 있었다. 우린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도덕률에 갇혀서 살고 있었던 거야. 그들이 만든 정의로움과 인간답게 살기와 놓인 처지와 형편을 똑바로 보면서 살라고 강요받으면서 살고 있는 거야…, 박철수의 어깨가 들썩였다, 힘겨운 어깨로 날린 비행기는 체육관 지붕에 불시착했다.


고개를 빗장뼈 깊이 쑤셔 넣고 박철수는 울고 있었다.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무너지고 있는 걸까. 어린 젊은 날들의 패기와 세상 무서운 것 없는 당당함이 처참하고 잔인하게 무너지고 있을 걸까. 위로해 줄 캘리포니아 그녀의 부재를 확인하는 절망일까. 완성할 수 없었던 시를 접어 마지막 비행기로 힘껏 날렸다. 한층 딱딱해진 두꺼운 구름층과 낮은 지붕들 위 비좁은 공간으로 비행기는 재빠르게 달려가지만 이내 바람에 막혀 추락했다, 체육관 지붕 위로. 결코 학교 밖으로 벗어날 수 없는 비행기… 가 두레박 되어 깊은 슬픔을 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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